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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와 작가 사이에서

다양한 시야로 바라보는 책과 오늘의 이야기

by 김혜신

일기예보처럼 창 밖을 보니 땅이 젖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빗줄기는 물기를 머물고 있는 자동차로

또 확인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 나는 날씨를 확인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심하지 않으면 우산이라도 쓰고 산책길을 나서면 좋을 것 같았다. 어제 산책을 못해 심통 부린 강아지의 오줌을 걸레로 훔치며 맞주친 눈으로 우린 서로 이야기를 한다. '잠시라도 걸을까?'라는 나의 목소리에 벌써 반응을 보인다. 귀가 쫑긋 열리며 일어나 앉는다. 주인처럼 걷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는 벌써 산책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 5km로도 거뜬히 걷는 이 녀석은 이렇게 주인에게 단련이 되어 있었다. 경쾌하게 발걸음을 움직이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처럼 뒤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 이 작은 친구는 나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목줄을 걸고 배변 봉투를 챙기며 어깨에 두른 띠에 강아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가는 빗줄기 속에서 산책을 시키면 다 젖을 것 같아 안고 걷기 시작했다. 4월에 웬 겨울인가 싶더니 금세 여름을 향하는 기온이 오늘은 하루 종일 비로 땅을 젖게 할 모양이다. 편안한 자세로 내 팔뚝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는 강아지의 모습이 편해 보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에 소리도 나지 않는 빗줄기는 어제보다 깨끗한 길거리를 보여주었다.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녀석은 금세 제집에 가 앉는다.

곧 보이지 않는 빗방울이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한다.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 일주일간 새벽기도 후에 받은 간식으로 배를 채우니 8시도 안 돼서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호박과 양파 고추를 꺼내 잘게 채를 썰고 부침가루를 묻혀 전을 부쳤다. 전기밥솥의 밥은 아직도 15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그때까지 내 위장은 못 견디겠다고 보채기 시작한다. 따뜻한 호박전과 함께 접시에 올린 당근파레와 오이무침으로 첫끼를 시작했다. 소금을 치지 않아 조금 밍밍한 전을 오이무침으로 달래며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비가 내리는 토요일 아침의 조용한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생긴다. 아침 출근 시각에 막히는 도로가 간간이 지나가는 몇 대들의 차로 이어진다. 바삐 이어지는 평일 오전의 나의 모습과 달리 지금의 여유로운 나는 조용한 동네 거리처럼 한가롭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보고 싶은 드라마를 몰아보기 할 선택도 있었다. 조용히 하루를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그런다 벌떡 일어난다. 가고 싶은 걸 무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도서관을 가야 할 것 같았다. 잘 읽히지 않았던 빌린 책을 가방에 넣고 나갈 준비를 한다. 생수 한 병, 노트북, 노트와 빌린 책으로 채워진 배낭을 어깨에 거는데 녀석이 계속 날 쳐다본다. 늘 시선으로 나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강아지가 또 혼자 남겨지는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잘 갔가 올게'라는 나의 말과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에 조금 위안을 받는지 자기 집에 편히 눕는다.

나는 곧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김영하의 '말하다'라는 책을 다시 폈다. 여행의 이유를 정독하고 두 번째로 그의 글과 마주했다. 글을 쓰는 작가의 관점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극장의 문지기라고 자신을 표현한 부분이 와닿았다. 자신의 소설 인물들이 작가의 생각과 달리 무대에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극장의 문지기인 자신은 문을 열어 줬을 뿐 연기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에 쏟아 놓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 극장 밖을 나가니 곧 관객이 영화를 보러 온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작가는 극장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연 그의 역할이 끝났기에 작가는 돌아간다. 소설을 구상하지만 인물의 상호작용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다. 이야기의 해석은 독자와 연기자 작가 모두에게 다양한 시선을 제공한다. 자신의 관점으로 한 작품은 또 다시 다양한 이야기가 된다. 도서관에서 다시 읽기 시작한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 깊은 울림이 된다.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한 부분인 것이 된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작가라는 자신의 한 부분을 나에게 전하고 있다. 작가이자 여행가이고자 한 나에게 하나의 퍼즐이 퍼즐판에 맞춰진다.


도서관에서 나만의 아지터를 발견했다. 스터디 카페처럼 책상은 단순히 집중할 것을 제시한다. 책으로 둘러 쌓인 공간과 자신들의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 속에서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문지기라는 표현을 읽다 도서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코너의 책을 두리번 하다 두 권의 흥미로운 책을 뽑았다. 여행 소개하는 책들은 작가의 소신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독자에게 온다. 여행지를 세심하게 이야기와 사진으로 채운 책을 뒤적거렸다. 가는 방법과 구체적인 설명은 사진으로도 이미 시각적인 여행을 하게 했다. 하지만 다른 한 권의 책을 달랐다. 마치 종이 한 장에 적인 미션처럼 장소와 분위기만 적힌 종이는 달랑 주소지만 남겨져 있다. 마치 직접 가서 확인해 봐라는 것처럼 말이다. 전자가 돌이 갓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에게 이유식이며 놀아주는 정성을 쏟는 것 같다면 후자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 이미 저리 말해도 튕겨나가는 아이들에게 몇 가지 선택지에서 맘에 드는 것을 해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여행에 관련된 책이지만 색깔이 다르다. 그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여행작가의 다양한 의도 속에서 여행가인 나의 호기심이 당겨진다. 비가 오는 오늘 선택할 여행지로 어디를 고를까라는 선택이 내 손에 있었다. 흥미롭다. 갇힌 도서관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글을 써도 된다. 그럼에도 난 때론 내 눈으로 그곳에 가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여행가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와 여행가의 마음에서 잠시 갈등을 해 본다. 머무르고 작가의 세계를 더 만날 것인지 직접 가봐서 경험하는 여행가를 선택할 건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야가 생긴다. 간접경험은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호기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하지만 때론 직접 부닥쳐 경험할 수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의 그곳은 그가 아닌 나에게는 다른 경험을 전해 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문지기인 작가의 경험과 무대 위의 책의 인물의 이야기와 책을 읽은 독자의 이해가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오늘 하루를 작가의 관점일지, 인물일지, 독자일지 그 관점으로 풀어가는 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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