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K군은 또래보다 덩치가 크다. 순수한 그의 얼굴은 늘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다. 가끔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게 되면 수줍어하거나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배우는 주제와 연관시키기 위해 질문을 던지면 그의 잦은 대답이 일괄적이다. '모릅네다'. 또는 '일 없습네다'라고 말하곤 한다.
K군은 중국에서 온 아이이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어린 그를 중국에 남겨두고 한국에 먼저 왔다가 2년 전에 한국에 와서 엄마와 살게 되었다. 몇년을 보낸 시간으로 이곳에 익숙해졌겠다 생각되지만 엄마와 달리 K군은 한국에 오기를 싫어했다. 그의 친구들이 있는 중국을 떠나기 싫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내성적이고 엄마와 깊은 유대가 덜 형성된 그에게는 이곳은 많이 낯선 곳이었다. 같이 놀 학교 친구들도 없고 마음을 터 놓을 대상은 더 없는 그는 집과 학교 외에는 거의 집안에서 생활했다. 더욱이 유튜브로 거의 중국방송만 듣고 있으니 그의 정신은 온전히 이곳에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엄마가 학원에 데리고 왔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며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K군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단한 단어 읽기를 하고 문장을 읽으며 의미를 물어보면 늘 '모릅네다'라고 답하곤 했다. 그의 낮은 에너지 수준과 닫힌 마음은 학습에 대한 부분보다는 그의 마음을 토닥거려 줄 누군가가 필요하는 듯했다
.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며 점차 K군은 가끔 속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아이도 무척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학습의 진전은 거의 없고 조금씩 여는 마음에 공감이 동감으로 이어져 내가 힘들기 시작했다.
K군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달랐다. 그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서 최대한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다 상대에게서 비웃음과 공격의 느낌을 받으면 매서운 말로 쏘아 대곤 했다. 그래서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늘 혼자였다. 그것이 더 편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때론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으로 그의 마음을 툭 표현하기도 했다. 과하다 싶은 과자나 음료수를 주는 그를 보면 그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K군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의 경험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추운 겨울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는 차가운 바람에 살결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체를 움츠리고 두 팔로 자신을 껴안고 맞바람을 맞으면서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혹 지나가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 낯선 사람들을 다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흩날리는 눈발로 그의 시야는 좁고 어두울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있는 곳이 정확이 어디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의 언어로 익숙한 이들과 가끔 통화하는 것이 그의 생존의 유일한 위안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양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서 만나게 된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른 시야와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의 환경에 대한 영향도 큰 몫을 한다. 그 과거가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발판이 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사는지는 그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안다면 자신을 잘 성찰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표현해 보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한다면 삶은 조금씩 성장되어 갈 것이다.
과거의 감정에 익숙해져서 그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한계를 둔다면 과거의 흐름을 전환할 수 없다. 그 방향성은 곧은 직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직선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경우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옆으로 나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으면 가능하다. 자신의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전체 상황을 둘러볼 수 있다면 그의 삶은 새로운 전환에 들어갈 것이다.
K군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의 모습이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질 기회는 많이 있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