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신 Jul 11. 2024

저녁 9시

시간이 주는 의미와 가치

 요가를 끝내고 집에 오니 8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집안 정리를 잠시 하고 바삐 산책 준비를 했다. 하루종일 혼자 집에서 잠만 잤을 강아지를 생각하니 미안해서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해가 늦게 지는 요즘에도 9시에 가까운 시간은 환한 등이 반가울 정도로 어두워 있었다. 낮에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 대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내 걸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강아지는 뒤도 쳐다보지 않고 낮에 비축한 힘을 온통 쏟아붓고 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음식점과 카페는 마감을 준비하느라 문을 닫고 그런 가게 안의 불빛을 향해 나는 시선을 준다. 하루를 꼬박 장사하느라 힘들었을 사장님들의 하루 마감시간은 어떨지라는 생각과 함께.


 학원에서 늘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에게 저녁 8시는 이른 시간이다. 예전에는 거의 9시쯤 수업이 끝나고 때론 10시에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도 있었기에 집에 도착해 소파에 앉게 되는 시간은 넉넉히 11시를 넘기기가 일수였다. 그러기에 당연히 12시를 넘겨 자게 되고 다행히 아침잠이 많지 않아 아이들이 깨기 전에 아침 준비를 하곤 했었다. 그러니 오전의 여유 있는 시간은 늘 나에게 익숙했지만 저녁의 자유시간은 흔히 얻기 쉬운 여유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은 일찍 정리되는 편이지만 이렇게 9시 산책을 나오는 것은 흔치 않았다. 시간이 되더라도 피곤해서 집 밖을 나가도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오전 오후 온통 한 공간에서 일을 해내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 비싼 임대료에 순이익을 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모습과 사무직에 근무하는 이들의 성실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살짝 기울어진 나의 시간표는 오후에서 밤으로 맞춰져 일반적 시간 개념과는 다르지만 오전의 시간적 여유는 나에게 많은 일탈의 경험을 허용한다. 오전 조리사의 일도 글을 쓰는 일도 하게 하니 말이다. 몸이 피곤해 눈꺼풀을 잡아 내리고 소파에 몸을 축 늘어진 몇 달 동안의 적응기간을 거친 뒤 나의 몸은 이중적 삶의 양식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거뜬히 오전일을 끝내도 잠시 휴식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오후 가르치는 본업에서 요가로 몸을 단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9시는 나에게 긴 하루의 움직임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일상이 있듯 나에게는 9시가 가르치는 시간이 의미가 있다. 마치 신데렐라가 12시를 넘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촘촘하게 짜인 나의 네트와 같은 하루가 저녁 9시 이후의 시간으로 무장해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단위로 사는 것이 익숙한 내가 하루의 각 시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삶이 더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잘게 나눈 시간이 나에게 여러 일에 대한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오전 오후가 아닌 각 시간의 옷이 나에게 색깔이 되고 맛이 된다. 그러기에 새벽 5시의 기상이 힘들지 않다. 그 시간에 하는 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하루를 잘 지내고 저녁 9시를 맞이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고맙게 느껴진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에게 감사가 나온다. 


나의 저녁 9시는 그렇다.

수고하고 열심히 산 내가 쉼의 장소도 돌아가는 시간이다.

입에서 느껴진 맛이 위로 내려가 잘게 부서진 뒤 몸의 각 부분으로 영양이 전달되는 그런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최소와 최대의 간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