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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hi Jul 16. 2021

어느 날 갑자기 장애가 찾아왔다

[다양성과 포용의 사회] 그 누가 정상을 정할 수 있을까

그날은 내 인생 중 선명하게 기억되는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다.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시어머니가 되실 분께 초대를 받은 날, 나는 이른 아침부터 '행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 어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한 채, 수 차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머님과의 첫 만남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편안했다. 거실 가득 들어오는 밝은 햇살 함께 어머님은 나를 두 팔 벌려 꼭 안으신 후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으셨다. 내 긴장은 금세 풀렸고, 나는 사람에게서 선한 아우라가 풍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반가워요, 오랫동안 기도 했어요.

 이렇게 좋은 사람이 우리 집에 오다니!

 감사합니다.”


그 어떤 환영의 말보다 어머님의 표정을 통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사랑받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거라는 걸.


한 가족이 된 후, 우리는 매주 만났는데, 어딜 가든 내 손을 꼭 잡으셨던 어머님은 몸에 좋은 재료들을 골라 요리해 주시곤 했다. 어머님 댁 주방은 소박하며 정갈했지만 나에겐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좋은 곳이었다. 어머님은 떡갈비 한 점도 가장 잘 구워진 것을 내 접시에 올려 주셨고, 딸기 한 개도 제일 예쁘고 빨갛게 익은 것을 건네주셨다. 나는 아기새처럼 받아먹으며 어머니 주변에서 조잘조잘 한 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는데, 별 이야기가 아님에도 지긋이 바라보며 한참을 들어주셨고 대화의 말미에는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실에 나란히 앉아 꽃 이야기며 강아지 이야기며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요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해졌고 신랑과 나는 한 주간 먹을거리를 한아름 싸들고 귀가하곤 했다.


어머님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었다. 환갑이 되던 해, 신랑과 나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돈을 축하 선물로 드리게 되었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금액에다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부담 없이 사시길 바라는 마음을 았으니, 액수로 치자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고민 한 번 없이 전액을 기부하셨고, 그 돈은 아프리카 어딘가에 우물을 만드는 데 쓰였다.


최근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나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어머님이 떠오른다. 어머님을 통해, 나는 왜 신랑의 어릴 적 꿈이 아프리카 봉사활동이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소위 물질만능주의였던 나는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어머님은 마음만 고우신 게 아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비싸지 않은 옷도 우아하게 소화해 내셨다. 한 번은 어머님과 종로의 어느 상가를 지나가는데, 아름다운 외모에 특유의 우아한 기품이 풍겨서인지, 여배우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옆에 있던 나는 괜히 으쓱한 마음이 들었다. 여배우를 바라보는 소녀 팬의 마음이 이럴까, 나는 나이가 든다면 어머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들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나갔.


어머님의 말이 조금 어눌 때쯤이었을까. 어머님은 음식을 삼키는 걸 힘들어고 서 있기 어려워 어디든 기대셔야 했. 함께 간 1박 2일 여행을 통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풀썩 주저앉 일이 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 소화가 어려우시거나 피곤하신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음식을 잘게 잘라 내어 드리거나 집안 정리를 돕곤 했다.


그런데 한 주 뒤에 뵈러 가니,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을 수가 없어 포크를 사용하셔야만 했고, 또 몇 주가 지나니 아예 삼킬 수가 없어 위에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병마는 빠르게 어머님을 덮쳤다.


나의 우상이었던 젊고 아름다운 어머님은
 어느 날 갑자기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를 가진 루게릭 환자가 되었다.




하루아침 장애인의 가족이 된 후, 평생 겪을 일 없다고 여겼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는 찾아.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내일 당장 의 일이 될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약조차 없는 무서운 병 앞에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선하디 선한 어머님께 왔으니, 별한 선행 없이 살아온 나에게 그 녀석이 들이닥친다 해도 울해 할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일 만큼, 나는 강하지 못하다.

과연 나장애인이 되었을 때, 상처 받지 않고 내 목소리 수 있을까?

다수가 정한 ‘정상’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배척당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 하더라도 ‘신체의 다름’을 이유로 내 아이디어와 의지 제한받 상황이 생길 것이다.


세대를 건너 장애는 아이게 올  있다. 아이의 미래 생각하면 새벽녘의 호수처럼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미운 아기 오리처럼 이리저리 쪼이고 밀리고 놀림을 당한 채, 날개 속에 고개를 파묻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두렵기만 하다. 나는 겪어낸다 하더라도, 이 가혹한 상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회 만어야 할까?

나는 지금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몇 번을 질문해 보아도 답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없는 세상,
우리에게는 다양성이 인정되고
따뜻한 포용이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부족하고 낯선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지금껏 우리는, 장애는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것이니 숨겨야 하고, 안 좋은 기운이 옮을 것만 같다며 리를 뒀다.


하지만 겪어 보니, 다르지 않다.
치열하지만 평범하게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나가는 존재,
내 가족이자 사회의 구성원,
그리고 미래의 나의 모습이다.

다수라는 이유를 제외한다면,
과연 그 누가 정상을 정할 수 있을까?

누구나 지금의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와 이유는 충분하다.




10년 가까운 병환으로 마르고 딱딱해진 몸은 남들이 보기에는 더 이상 자유롭고 우아한 백조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백조의 모습이든 미운 아기 오리의 모습이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맑은 영혼과 본질의 아름다움은 어떤 어려움 에서도 빛을 발다.


“ㄱ ㅓ ㄴ ㄱ ㅏ ㅇ”

“ㅅ ㅏ ㄹ ㅏ ㅇ”


오늘도 어머님은 온 힘을 다해 눈을 깜박이시며 말씀하신다. 비록 그것이 한 두 단어일지라도, 나는 어머님의 눈빛에서 천만 가지의 말과 따뜻한 포옹, 애정 어린 쓰다듬을 느낀다.


그리고 혹여 못 들으실까 큰 목소리로 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머님, 저희 모두 건강해요!

 그리고 어머님, 저도 너무너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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