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렁… 컥!”
사무실을 요란하게 울리는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사내 메신저 창이 깜박인다.
“방금 코 고는 소리 맞죠?”
“우리 팀은 아니지?”
“에이, 설마요.”
키보드 대화가 끝나기도 무섭게 다시 한번 들리는 그르렁 소리. 범인은 파티션 너머 꿀잠을 자고 있는 우리 팀 막내 보람 씨다.
“보람 씨, 지금 회사에 놀러 왔어요? 이야기 좀 합시다. 따라오세요.”
그동안 보람 씨 OJT와 사수 역할을 맡았던 박 과장은 단단히 화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보람 씨의 반복되는 실수로 박 과장이 처음부터 재작업을 한 프로젝트가 한 두 건이 아니었다.
"그 팀 일 없나 봐. 회사를 놀면서 다니는 팀원도 있고."
파티션 위로 고개를 쭉 내민 옆 팀 부서장은 입가를 훔치며 박 과장을 따라 나가는 보람 씨를 보며 혀를 찬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난밤 과음이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야근, 육아로 인한 수면 부족 등 밀려드는 피로로 사무실에서 졸음을 참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럴 때, 점심시간 등 잠깐의 시간을 활용하여 눈을 붙이면 그만한 꿀잠도 없다. 보람 씨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혹시 집안에 무슨 일 있나? 퇴근 후에 알바를 더 한다거나 간병을 한다거나.
오 과장이 같은 여자니까 박 과장 면담 끝나면 보람 씨한테 이야기 좀 들어 봐요.”
보람 씨와의 두 번째 면담을 맡게 된 나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을 몇 가지 상황과 해결책을 머릿속에 그린 후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막상 면담은 싱겁게 끝났다.
“보람 씨, 어디 아프거나 힘든 점 있어요?”
“아니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혼내려는 게 아니라, 일에 집중도 못 하고 근무 시간에 자는 것도 그렇고...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묻는 거예요. 편하게 말해봐요, 해결할 수 있는 거면 도울게요.”
“음... 솔직히 박 과장님이 왜 저렇게 화내시는지 모르겠어요.
이전 회사에서는 자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었거든요.”
아차, 나는 그제야 보람 씨의 이전 회사 경력들이, 3개월 미만으로 매우 짧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오랜 기간 일할 수 없었던 어떤 이유가 있나 보다 짐작은 했지만, 급하게 인력 충원을 해야 했던 우리 팀은 대기업 인턴 경력과 서글서글한 인상의 보람 씨를 별도의 레퍼런스 체크를 하지 않고 채용했다. 이전 회사들에서도 열정과 재능을 보이지 못했던 보람 씨는 수습기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계약이 해지되어 왔던 것이다.
무엇이 동기부여를 시키는가?
팀원들의 배려와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업무 태도가 달라지지 않은 보람 씨는 아쉽게도 우리 팀에서도 권고사직을 받게 되었다.
‘어? 내가 아는 건데? 아니다, 괜히 나서서 일 더 받지 말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 가자.’
‘하루면 끝낼 업무량이네. 빨리 끝내 봤자 새로운 일 맡게 될 텐데, 최대한 천천히 하자.’
어느 조직이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구성원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든 끌고 나가야 하는 리더도 존재한다.
구성원의 동기부여를 위해, 리더가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을 중요하게 다룬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리더십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야기하며 리더는 동기부여자(Motivato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업무 동기 요인 분석’과 관련한 조지 메이슨 대학(George Mason University)의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당신의 직원은 현재 무엇에 만족하여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CEO가 회사에서 주는 높은 급여, 승진과 같은 물질적인 보상일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실제 많은 수의 직원들은, ‘인사이더로 참여하고 있다는 소속감’과 같은 정서적인 요인을 꼽았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있었는데, 직원들은 회사 내에서 대인관계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감정적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자신이 속한 조직에 만족하며 정서적으로 강한 몰입감을 갖는다고 한다(신인용, 이기현, 대한경영학회지, 2015).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통해, 우리는 조직구성원들이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로 다닐 때, 일할 맛 나는 직장으로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에게 반응해 주고, 소통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동기부여의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고 재미를 느끼도록 만들자
2025년 전 세계 인구의 75%가 밀레니얼이 된다고 한다. 밀레니얼은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로자다. 단순히 "우리 조직의 비전은 이러하다.", "주인 의식을 가져라."와 같은 기존의 교육으로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없다. 리더는 고민이 많다.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실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면, 난감하다. 예전에는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주말 산행이나 사내 동호회에서 땀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다음 달 열심히 좀 해야겠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 52시간, 칼퇴 문화가 정착된 지금, 면담 시간을 가져 보려 해도 "저녁 같이 먹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이들이 업무와 회사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밀레니얼 세대에게 ‘일의 의미’를 전달하려면,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목표를 연결한 로드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를 넘어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와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임을 알려 주는 것도 필요하다. 비록 지금 하는 일이 소소할지라도, 전체 목표를 달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단계임을 설명해 주면 일의 가치를 알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실제 조직 내 제도나 제품에 반영한다면, 회사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일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자기 일을 사랑하게 하려면 가치 있는 일을 맡겨야 한다. 그동안 직급별로 일의 중요도를 나누어 배분했다면, 모든 일을 프로젝트화 하고 신입사원이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를 제공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부품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강한 몰입도 이끌어낼 수 있다.
어느 세대보다도 많은 교육을 받아왔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는, 지식량이 많고 자존감이 높으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많지 않은 형제, 자매들과 성장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의 칭찬에 익숙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높은 성취욕을 보인다.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성과를 냈을 때, 그 지점을 구체적으로 칭찬함으로써,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자. 성과를 요구하기 이전에, 작은 일이라도 격려하고 칭찬을 해서 일에 재미를 느끼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 제공하기
사실 동기부여는 개인적인 문제이다. 성향상 성취 욕구가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같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흥미를 유발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는 "회사와 내가 이 정도까지 물질적 보상을 해 주는데, 왜 이것밖에 해내지 못하는가."라며 직원을 다그치고 폭언과 막말 등 극단적 성과주의로 밀어붙인다.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직원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으로 '강한 푸시'가 아닌, '포용의 부드러운 당김'의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당사자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찾아 주고, 작은 것부터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주 진행하는 회의의 형태를 바꾸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회의는 의사결정권자가 회의 소집을 지시하면, 사원, 대리급이 리더 및 참가자들의 일정 확인 및 회의실을 예약하는 것을 담당하고, 해당 회의에서는 업무 진척 상황에 대해 실무진들이 리더에게 보고를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은 직원은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팀 내에 긴급한 아젠다가 없다면, 팀원 각각에게 직접 회의를 주관하고 논의 주제도 정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보자. 굳이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 아니어도 괜찮다. 자신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팀원들에게 소개해 보는 발표형 미팅도 좋다.
어떤 업종이나 최신 트렌드가 반영되는 포럼이나 컨퍼런스, 학회가 열린다. 산업 및 고객의 동향에 대해 조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직원에게 외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한 내용에 대해 팀원들에게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자. 직원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칭찬과 함께 업무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자.
일상적이고 단조로웠던 회의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직원의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력해도 변화되기 어려운 상황,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에 열정적으로 임할 사람은 없다. 어떤 팀원이 매번 문제 해결에 시큰둥하다면, 항상 당신의 스타일대로 업무의 방향성을 결정하지는 않았는지, 그 팀원에게 맡긴 일이 지극히 단순한 업무만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치 있는 일을 맡기고,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될까요?”라고 질문을 던져 보자.
별다른 의견이 없더라도, 팀원이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기다려 주자. 이러한 신뢰가 반복되면, 직원은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행한 프로젝트에 대해서 애정을 갖게 된다.
이때, 보고서 양식, 문제 해결의 범위, 마감 기한과 같은 기대 수준은 미리 전달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 있어 보고서의 심미적인 부분보다는 궁극적인 해결안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가이드를 주는 것이 좋다.
누구나 시키는 일만 하는 팀원보다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능동적인 팀원과 함께 일 하고 싶다. 하지만 어떤 노력도 없이 한 개인의 성향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개인이 조직 내에서 본인의 특성 및 능력에 맞는 직무를 부여받았는지, 얼마나 본인과 적합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의 정도는 조직에서 구성원의 만족과 성과를 극대화하고 주어진 직무에 헌신과 책임을 다하는 열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성공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제안을 수용하는 유연함을 가져라
밀레니얼 세대는 일의 추진 단계에서 합리성을 중시한다. 상사가 부하 사원보다는 동료로서 대하길 원하고, 긍정적인 피드백과 인정을 원한다. 형식적인 보고 문화, 일이 없는데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키는 야근 등 과거의 조직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상명하달식의 일방적인 업무 지시나 리더의 명령조와 같은 언어 습관도 고쳐져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며, 개인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회사에서 일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더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는 능숙하지만, 칭찬과 인정에는 인색하다. 예상치 못했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갑작스러움과 뿌듯함의 기억이 오래간다는 것을 말이다. ‘도대체 우리 신입사원은 칭찬할만한 일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가끔씩이라도 신입사원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자.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을 경우, 밀레니얼 신입사원은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당신은 그들의 의견과 제안을 적극적으로 듣고 수용하는가? 아니면 무시하고 당신 의견을 고집하는가? ‘내가 해 오던 이 방법이 진리’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정답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들이 제안하는 방법을 수용할 줄 아는 리더의 유연함을 보여주자. 사고를 자유롭게 하게 두면 회사에 기여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온다.
기존의 관습과 편견을 깬 새로운 시도는 멘토링과 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잭 웰치는 GE의 최고경영자 재임 시절, 일반사원이 선배나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도입한 바 있다. 최신 트렌드와 젊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 이러한 리버스 멘토링은, Microsoft, IBM, 구찌 등 많은 글로벌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신입사원 교육도 바뀌고 있다. 단합력 키우기로 포장되었던 얼차려와 회사 임원진에게 보여 줄 장기자랑 연습은 없어졌고, 신입사원이 임원을 대상으로 ‘밀레니얼 세대와의 행복한 동행’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대였던 밀레니얼 신입사원이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며 성장해 온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저성장 시대, 고용이 불안정한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그들만의 행복 전략을 찾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조직도 자신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대 사회에 최적화되어 있는 밀레니얼 세대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찮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의미를 알고 싶은 밀레니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보상해 주는 만큼 기여하고, 남은 에너지는 자신에게 쏟으려는 밀레니얼.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바뀌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현 조직의 리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