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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hi Apr 01. 2020

서울 여자

조직구성원의 자존감 높이기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나는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낯설 법도 하건만, 서울 사람들의 세련된 말투와 서울 식당의 새콤한 김치 맛은 금세 나를 매료시켰다. 당장 사투리부터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무렵에는 '서울 여자'가 다 되어 있었다.
 
입학 후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 첫 전공 수업, 나는 광주 출신이 나 혼자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다.

교수에게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우리 과 친구들 80%가 서울에 위치한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에 놀란 데다, “미영이 나랑 같은 동네 사네?”, “김지숙 선생님 잘 있지? 내 후배야.” 등 학생들과의 연결고리를 꺼내놓는 전공 교수의 언행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강의장 안에,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결고리가 켜켜이 쌓여갔지만, 나는 그 공간 안에서 외딴섬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숙명여고에서 온 5명이 같은 대학, 그것도 같은 전공이라, 우르르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무 살 어린 마음에 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까. 어쩌다 주변 사람과 중고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면, 제발 아무도 나에게 출신 지역을 묻지 않기를 바랐다. 지방 출신임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면, '서울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괜스레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서울=주류=세련됨’, ‘광주=비주류=촌스러움’이라는 인식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짭조름한 젓갈로 맛을 낸 김치와 꼬막 무침, 고소한 굴비 반찬이 나에겐 익숙했지만,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내 취향으로 메뉴를 통일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는 신촌, 강남, 종로 등 번화가가 많아, ‘시내에 나가서 놀자’는 표현이 지방에만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재밌는 에피소드이나, 그 당시에는 ‘내가 참 좁은 곳에서 자란 소수파구나.’라는 생각에 위축되곤 했다.


대학교 4학년, 인턴을 했던 회사의 팀장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회식 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하면 늘 정치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전라도를 기반으로 한 정당 출신이라 싫고 ‘기본적으로 전라도 사람들은 무식하다.’고 말하는 그와 흥분하는 상사에 동조하는 팀원들을 보면서, 나는 그 팀장에게 전라도 출신임을 절대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 혹시라도 인턴근무평가서에 안 좋은 내용이 기재될까 걱정되었고 팀 내에서 비주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후 나는 왜 이러한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인지 곱씹어 본 적이 있다.

순간순간 상처를 준 주변 사람들 때문일까? 영화, 드라마 속 조폭이나 건달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으로 그려 온 대중매체 때문일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권의 문제일까?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낮은 자존감이었다. 


자신감과 자존감의 구분


초중고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매 학년 전과목 수를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고등학교 때는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앞에 나설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가장 먼저 손을 드는 학생이었고, 그런 나를 선생님들은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며, 때로는 교무실로 따로 불러 과자나 음료수, 출판사로부터 받은 문제집을 챙겨 주시기도 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나를 외향적인 아이로 만들었다.

 

서울에 와서 일명 소수파가 된 나는, 성적이 뛰어난 것도, 눈에 띌 정도로 예쁜 것도, 좌중을 휘어잡을 만큼 언변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공동체 안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앞에 나서기보다는 숨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에 의해 자신감이 있었을 뿐, 성숙된 사고와 가치관, 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환경의 변화에 쉽게 무너지는 것은 자존감이라 할 수 없음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당신은 구성원을 인정하고 자신감을 부여하는가? 아니면 상대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가? 

당신은 구성원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는가? 아니면 내 개인적인 이해 때문에 상대를 질책하는가? 

당신은 구성원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가? 아니면 단순히 복종하도록 강요하는가?




조직구성원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이 낮은 후배를 볼 때면,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다.

함께 컨설팅 업무를 했던 소영 씨는 자신의 아이디어, 성취물을 낮게 평가하곤 했다. 평소 담소를 나눌 때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다가도, 팀원들 앞에서 의견을 제안해야 할 때는 고개부터 숙였다.


한 번은 회사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지 고민을 물어보니, 지켜보는 눈이 많을 때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걱정되고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꺼내 놓았다. 실수와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그녀 자신의 뜻은 다르다 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에 맞추어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렇게 주변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나면,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감도 든다고 했다.

반대 입장도 그러한 상황이 익숙하다. 어느 조직이나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다수의 의견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의식하지도 못한 채, 소수자의 입장을 무시하곤 한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을 채용한다 할지라도, 개개인의 자존감이 낮다면, 그들의 독특한 강점과 색다른 경험을 노출시키기 어렵다. 불안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팀원은 어떠한 방법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리더는 자존감이 낮은 구성원에게
‘나다움’은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보도록 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한 모습과 에너지를 잃지 않는 것, 외적 그리고 내적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과 보폭으로 살아나가는 용기를 갖는 것,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자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자. 


내성적인 팀원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 놓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한 두 가지는 있다. 매일 뿌리는 특정 향수, 하루종일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달콤쌉싸름한 아이스카페모카, 아끼는 운동화, 커스터마이징된 고급스러운 핸드백, 컬러 이니셜 자수가 특별함을 더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셔츠 등 개성을 드러내는 이러한 아이템들은 자존감이 낮은 직원과 소통을 시작하기에도 쓰임새가 좋다. 


무언가를 할 때 완전함과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좋다. 요리든 운동이든 SNS 공간에서의 활동이든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대화의 소재로 적합하다.

 

개성이 굳이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필요는 없다. 내가 자주 선택하는 것, 선호하는 것도 개성이 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직원과의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는 그 사람에게서 자주 보이는 물건, 행동, 개성부터 알아간다는 생각을 갖고 말문을 열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터지면, 회사 생활 이야기도 해 볼 수 있다.


다른 팀원을 포함한 일대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소수자의 입장에 처할 때 경험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팀원 전체와 이야기 나누어 보자. 다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새로운 관점을 가져보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더불어, 초기에는 인정받지 못한 아이디어였거나 정형화되지 않은 사례였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회사 내 큰 성과를 가져 온 케이스를 찾아 이를 공유하자.

영향력 있고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다양성 높은 팀을 찾아 롤 모델로 삼는 것도 좋고, 보다 전문적인 상담, 코칭, 교육의 방법을 써 보는 것도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해 주는 태도로 소통할 때, 자존감이 낮은 직원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 출신으로 겪었던 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조언을 해 주신 분이 있다. 사투리가 갖고 있는 꼰조 혹은 나이브함이 너무 멋있어서 따라하기도 해봤다는 서울 출신인 그 분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고향, 정주성, 지역성, 정체성, 한편으로는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부럽다고 말했다. 

“광주는 오래도록 우리나라 역사에서 탄압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고집으로 버텨온 미안하고 또 멋진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만난 대학교의 말도 안되는 상황과 직장 상사의 말들은 지연, 학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일뿐입니다. 이러한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 보셔도 됩니다.”

관심과 위로, 본인의 경험에 대한 솔직한 공유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언은 한 사람의 품격을 높인다. 리더는 이러해야 한다.


대기만성형 인재가 있기 마련이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대기만성형 인재’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출중한 능력으로 주목받았던 피카소는 청소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화단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을 생산한다. 이러한 인재들은 자신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실현한 사례이다. 이에 비해 폴 세잔 같은 화가는 50대에 이르러서야 화단의 주목을 받는 대작을 낸다. 소설 [톰소여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도 50대에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조직에서도 재능이 뒤늦게 발현되는 인재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인내심과 지속적인 지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평가는 단기간의 성과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신입사원 그룹에서부터 핵심 인재를 선별하고 지도 사원, 지역전문가 과정, 학술연수 과정, 주재원 파견 등 커리어 단계별로 특화된 기회와 보상을 제공한다. 핵심 인재 관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단기간내 성과 향상 부분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조직 문화는 점점 더 경쟁으로 치닫게 되고, 뒤처졌다고 느끼게 되는 사원들의 패배감은 쉽사리 극복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원들을 격려할 수 있는 ‘장기적 관점의 인사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리 승진 시점에 리더십 항목에 대한 점수가 저조했다고 할지라도, 과장 승진 시점에 동일 항목에 대한 점수가 상향되었다면, 이 사람은 4년여의 기간동안 서서히 역량이 개발된 것이라 볼 수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보상과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해 준다면, 분명 직원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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