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홍범석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넷플릭스에 ‘피지컬 100’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유명 체육인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대결을 하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1인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첫 번째 라운드가 바로 ‘무동력 트레드밀’이었다. 크로스핏과 러닝을 결합한 하이록스 혼성 릴레이 아시아 챔피언으로 유명한 ‘홍범석’이 이 라운드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우와, 저 근육질 몸으로 뛰기도 잘 뛰네!’라고 감탄했었다.
이 전에도 러닝 관련 유튜브를 보다 보면, 무동력 트레드밀에서 훈련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잘 뛴다는 사람들인데도 무동력 트레드밀에서는 유독 헉헉거리는 유튜버들을 보며 ‘저건 어떤 머신이길레 저런 걸까’ 궁금했다.
다람쥐 챗바퀴처럼 내가 굴리는 힘으로 지면을 차고 뛰어야 하는 거니까, 일반 트레드밀이나 야외 달리기보다는 좀 더 힘들긴 하겠지 생각했었다. '남의 일'인 양.
어느 날, 센터 유산소존에 ‘무동력 트레드밀‘이 새로 들어왔다. 이걸 타다가 워낙 다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진작에 들었었어서 ‘쫄보’ 답게 ‘저건 나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운동을 마치고 트레드밀을 뛰려고 유산소존에 갔다가 트레이너 선생님을 만났다. 그저 눈앞에 있길래 아는 척을 하며 ”무동력 트레드밀이 들어왔네요? “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 보세요.
… 피할 수 있는 시련은 피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오늘은 그러질 못했네?
달리는 면이 편편한 일반 트레드밀과는 다르게 무동력 트레드밀은 앞쪽이 썰매처럼 들려 있다. 곡선으로 꺾인 앞쪽에서 달리면 속도가 빨라지고, 뒤로 밀려나면 느려졌다. 무게를 올리면 지면을 밀어내기가 더 힘들어져 정말 다리에 납덩이를 단 것처럼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다가 부주의하게 앞쪽으로 발을 구르면 미끄덩하고 넘어질 것 같아서 처음에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좀 타다 보니 발을 구르는 것은 익숙해졌는데 지면을 밀어내며 달리는 것이다 보니 일반 트레드밀을 뛸 때보다 심박수가 더 빠르게 오르고 숨이 금세 가빠졌다.
헉헉…
이래서 선생님께서 일단 10분만
타보라고 하셨구나…
이후 몇 번 더 뛰며 기록을 확인해 보니 같은 3km를 20분에 뛰어도 일반 트레드밀은 평균 심박수가 130 이내였는데, 무동력 트레드밀은 140 후반대가 나왔다. 이것은 유산소의 탈을 쓴, 하체 머신인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무동력 트레드밀이 일반 트레드밀보다 (더 힘들지만)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정해진 세팅대로 수동적으로 달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은 내가 기꺼이 빠른 속도로 타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힘이 들어서 스르르 뒤로 밀려버려도 숨을 고르며 천천히 뛸 수 있으니 좀 더 달리기가 다채로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일반 트레드밀처럼 같은 속도, 같은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달리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영상을 보거나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달리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속도, 위치, 케이던스… 그리고, 나의 기분과 컨디션-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쫄보’가 무동력 트레드밀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라면, 케이던스를 유지해 줄 수 있는 180 bmp의 음악?! …그러나 사실은 힘이 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속도를 체크하느라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
삶은 마치 ‘무동력 트레드밀‘ 위에서의
달리기 같네!
주어진 속도와 위치에서 계속 똑같이 이어지지 않고 다양한 변주가 있는 것이 꼭 그러하다. 다만 내가 어느 부분에서 달리고 있는지를 알아채기는 어렵겠지.
그렇지만 힘들 때는 ‘아, 내가 너무 앞쪽에서 타고 있나? 좀 더 뒤로 가볼까? 아니면, 내가 좀 무거운 무게로 타고 있나 보다?’라고 무동력 트레드밀을 타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적어도 그 상황에 매몰되어 계속 페이스에 맞지 않는 달리기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냐’의 문제이다. 외부 동력으로 움직일 것인지, 나의 의지와 신념에 따라 내 삶을 원하는 속도로 끌고 나갈 것인지.
그나저나 말로만 듣던, 무동력 트레드밀에서 직접 달려보니 ‘홍범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게 됐다. 무동력 트레드밀에서 전력으로 10분, 7분, 5분 3세트 연달아 질주라니… 웬만한 근력과 지구력이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을 일이다.
‘무동력 트레드밀 초보’로서, 그가 무동력 트레드밀 라운드에서 ’ 우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제는 그의 몸에 새겨진 ’ 노력들과 시간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동력 트레드밀, 진짜 이건 보통일이 아닌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