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몸에 어떤 기록들을 남기고 있나요?
애초에 ‘체중 감량’은 내 목표에 없던 일이었다. 그저 ‘근육량’을 늘리는 것만 생각하고 PT 수업을 등록했었더랬다.
아랫배나 허벅지에 군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 이런 군살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딱히 빼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살’ 같은 아이들이랄까나…
수업을 몇 번 하고 나서 드디어 체성분검사, 인바디 측정을 하게 되었다. 체중 55.9kg, 체지방률 25.2%, 골격근량 22.7kg. 뭐 달리기만 슬슬 하다가 그 달리기 마저도 쉬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숫자들이었다.
체중을 52-53kg 정도로 낮춰보시죠.
왜요? 왜죠?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한걸요?!!!
저는 단지 근육 몇 kg이 갖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입니다.(은전 한 닢 ver.) 왜 체중을 줄여야 하나요???
미국에서 건장한 언니들을 하도 많이 보고 온 탓인지, 살집이 좀 있지만 거기에 근육이 있는 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후를 위한 ‘근육 저축’이 유일한 목표이었을 뿐 ‘어떤 몸을 가지고 싶다’든지, ‘어떤 기능이 나아지길 바란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체중 감량’은 단순히 ‘미용’에만 치중된 것이라 생각했기에, 선생님께 열심히 ‘체중 감량의 불필요함‘을 피력하며 저항했…으나 실패했다.
몸이 좀 더 가벼워지면 웨이트 트레이닝뿐 아니라 달리기나 기타 다른 운동의 퍼포먼스도 함께 월등하게 좋아질 거라 하셨다. 좀 더 다양한 운동을 질 좋게,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목적의 ’ 체중 감량‘이고, 곧 다가올 ’ 갱년기‘를 대비해서라도 미리 털 수 있는 지방은 털고 가자는 말씀이셨다.
…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 어찌 더 안 하겠다 하겠나요. 따를 수밖에요.
A4 종이 한 장을 벽에 붙여두고 일주일 단위로 아침, 점심, 저녁 체중과 먹은 것들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이건 왠지 ‘다이어트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누군가가 하다가 망했다더라…’ 류의 이야기로 많이 들어봤지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잔뜩 의구심이 들었다.
… 뭐, 해본다 치고, 먹지 말아야 할 거나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나요? 여쭤보니 또 이런 AI 머신처럼 틀린 말 하나도 없는 대답이…
기록하게 되면,
저절로 신경 쓰시게 될 거예요.
…네, 맞네요. 한 줄 한 줄 먹은 것들을 적을 때마다 나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것들은 분명 있었다. 예를 들면, 크림빵, 초콜릿케이크, 복호두… 같은 달달구리 간식들이었다. 가끔씩인 줄 알았는데 적으면서 먹으려고 보니, 생각보다 내가 자주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먹는 것만 쓰다가, 거기에 운동하는 것도 기록하다가, 잠도 잘 자야 살도 잘 빠진다기에 수면 기록까지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의 타임라인-하루에 몇 시간을 자고, 뭘 먹고, 어떤 운동을 했는지-가 한눈에 보이는 기록지가 되었다.
아침 공복 체중이 유달리 떨어진 날에는 전날 내가 무얼 먹었나 들여다보게 되고, 체중 변화가 유독 없을 때는 뭐가 문제인지 기록들을 천천히 보며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만가만 보다 보니, 그 이유들을 어렴풋하게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호르몬의 노예‘인지라 체중이 잘 내려가다가도 생리주기를 만나면 몸이 부으면서 체중이 올라간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다. 3개월 정도 데이터가 쌓이니 나의 체중과 컨디션이 생리주기와 맞물려 어떤 패턴으로 변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정보들을 기록하는 것이 너무 ‘마이크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매크로’를 보려면 ‘마이크로’부터 봐야 했었던 것이었다!!
가끔씩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진다. MBTI 검사나, 사주팔자 풀이, 주변 사람들의 “넌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라는 코멘트까지 싹싹 모아 ‘나’라는 사람의 생각, 성향, 행동패턴, 회피방법 등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마음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왠지 ‘현재의 나’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콩알만큼이라도 더 나은 ‘미래의 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랄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무한하니 그렇게 그려내기란 불가능할 테고, 설사 완성하는 동안 또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컴퓨터 Software가 자기 스스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보안 설정도 한 번씩 체크하고, 용량이 가득 차면 비우라고 알람을 보내는 것처럼.
하지만 ‘몸’은 좀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는 ‘동물’이기에 조물주가 세팅해 둔, 어느 정도의 정해진 규칙과 범위 안에서 대사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 몸이 움직이게 된다.
호르몬까지 흔들리게 할 만한 외부의 충격도 간혹 받지만, 그래도 한번 세팅된 컴퓨터의 Hardware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몸도 매크로한 측면에서 보면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 대사 시스템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지도를 그려낼 수는 없지만, ‘나의 몸’이 어떠한지는 이 기록들과 관찰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최소한 ’ 나의 몸‘ 상태를 알고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저절로 ‘마음’도 반발짝 정도 뒤쳐지더라도 꾸역꾸역 같은 방향으로는 따라오겠지.
‘물아일체’라는 멋진 말도 있듯이!
마음은 마음대로 안되지만, 내 몸은 그래도 보이기에 변화를 알아챌 수 있고 스스로를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휴식이 필요한지 아니면 운동 강도를 높여도 무리가 없을지, 오늘 조금은 불편하지만 예쁜 신발을 신어도 될 컨디션인지, 몸이 부었으니 오늘 저녁은 조금 덜 짜게 먹어야 할지 등등… 어느 정도 스스로 아껴주고 보살펴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피다 보면 그 돌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 몸에 드러나게 된다. 허리가 곧은 자세, 정갈한 손끝, 단정한 헤어스타일, 단단한 팔과 다리…
‘몸’처럼 이렇게 정직하게 내가 한 행동의 결과들을 이렇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며칠 전, ‘아비투스’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을 덧붙여본다.
우리가 동의하든 안 하든 몸은 못된 고자질쟁이다. 신체에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다 적혀 있다. 신체를 보면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지, 돈과 취향, 더 나아가 권력을 얼마나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체가 이렇듯 대단한 표현력을 갖는 데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웬만해선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여러 차원에서 신체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아비투스> P.211
나의 몸에는 어떤 흔적들과 결과들이 새겨져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나의 몸에 어떤 기록들을 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