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역할답게’를 벗고 ‘나답게’를 입을 시간이 필요하다.
'너는 옷이 그게 뭐니, 선생님이면 좀 선생님답게 입어야지'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언니의 말에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생각하는 ‘선생님답게’는 내가 입은 검정 가죽 통바지에 목 파인 금색 니트보다는 단정하고 얌전한 옷이었을 것이다.
사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에게는 역할이 주어진다.
교사로, 샐러리맨으로, 간호사로, 요리사로, 세상은 이름을 붙여주고 걸맞은 역할을 기대한다. 생 떼쓰는 아이를 너그럽게 지도하고, 상사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고 씻는다. 우리는 기꺼이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몸에 맞는 옷이라 해도 24시간 입고 살 수는 없다. 직업인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소중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때 나는 학교가 아니라 사촌 결혼식장에 있었고, 교사가 아니라 하객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교사답게’ 보여야 할까?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여름이 되면 공무원의 품위 유지 어쩌고 하는 옷차림을 단속하는 공문이 내려오곤 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런 공문이 아니더라도 눈에 띌만한 옷차림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마주치는 동료교사들은 나의 옷차림에 관심을 가졌다.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으면 어디서 샀는지, 민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으면 여름에 청바지가 덥지 않은지,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 여행 가는지 물어왔다. 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차림이 다른 사람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는 조금씩 ‘선생답게’ 입기 시작했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일도 없어졌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어느 주말 아침, 옷장을 열어보니 입을 옷이 없었다.
무채색 포멀한 재킷, 벨트가 달린 얌전한 원피스, 정장 바지와 블라우스, 그 많은 옷들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옷장 안에 원래의 자유로웠던 나는 없고 성실한 교사만 가득했다.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뉴욕을 갈망한 것도.
처음 뉴욕 JFK 공항에서 내쉬던 그 편한 숨을 잊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브레인 워시(Brain Wash)가 일어났다.
자유인으로 그곳에 서서 온갖 역할을 벗어버린 나를 느꼈다.
마약을 하거나 대단한 일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입든 상관하지 않는 땅에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옷을 입은 것은 아니다.
끈 원피스를 입고 목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다리를 드러내고 미니팬츠를 입었다. 그렇게 입고 구게하임 미술관을 가고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즐겼다. 불빛이 쏟아지는 맨해튼의 밤을 누비며 자유로움을 한껏 들이켰다.
뉴욕에서의 2주는 금방 지나갔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고작 그런 옷을 입고 그렇게 행복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대단한 옷을 입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교사답게’의 틀을 벗고 '나답게'입어서 행복한 것이었다. 옷은 내 자유의 표상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명상과 요가마니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스탠드 조명 하나로 불을 밝힌 어둡고 텅 빈 실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진을 보았다. 검정 터틀넥과 리바이스 501을 벗고 편안한 요가복을 입은 그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충실한 자연인으로 보였다. 아무리 무거운 역할을 지고 산다 해도 역할의 옷을 벗고 자연인인 나로 돌아오는 시간은 필요하고 그것을 방해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의사가 의사 가운을 벗듯이, 노동자가 작업복을 벗듯이,
퇴근과 동시에 역할의 옷을 벗어두고 나오자.
오래 입다 보니 역할이 문신처럼 몸에 새겨져 벗겨지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역할답게’를 벗고 ‘나답게’를 입을 시간이 필요하다.
‘나답게’를 입고 살 때만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