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월요일 아침
갑자기 겨울바람이 코끝을 얼려버릴지라도 이상하진 않은 달이 되었다. 지난해 이맘때의 사진을 보니 11월 말에 아주 많은 양의 눈이 왔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꽤 따뜻한 초겨울일지도, 상냥하게 다가오고 있는 추위일지도 모르겠다.
기어코 도착해 버린 12월의 첫날 아침에 나는 이런저런 다짐을 하게 된다. 평소보다 더 오래 플래너를 붙잡고 있는다. 그런 내 뒤통수와 등허리에 햇살이 닿는다. 왜 새삼스럽게 볕이? 하고 광원을 올려다보니, 해와 우리 집 사이에 자리한 뒷산이 이제는 휑망해서 그런가 보다. 봄여름 초가을까지는 풀잎으로 뒤덮였던 산이었지만 이제는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멀찍해진 가지와 가지 사이, 기둥과 기둥 사이로 빛은 더 쉽게 새어 나올 수 있다. 이 집에서의 두 번째 가을은 여러모로 재밌다. 두 번째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 참 많다. 특히 자연의 변화에 대한 깨달음이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2월의 계획 그 대부분은 이사와 관련되어 있다. 숲을 끼고 살았던 2년을 정리할 때가 와버린 것이다. 이 사실은 100번 중 95번 정도 날 설레게 하지만, 남은 5번, 예를 들면 살짝 서리가 낀 숲을 힐끔힐끔 구경하며 글을 쓰는 아침, 즉 지금 같은 순간은 살짝의 서운함도 느낀다. 계절에 따라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삶은 즐거웠다. 가끔은 유튜브보다도 재밌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창밖의 숲을 두고 가는 건 꽤 아쉬운 상황인 거다.
낡고 넓은 집에 혼자 들어와 살 결심을 했던, 그저 창 밖 풍경이 결심의 전부였던 2년 전의 내가 이제는 낯설다. 그래도 용케 잘 버텼다, 짐도 꽤나 늘었다, 살짝 더 어른 같아졌다 싶지만은. 작은 미련은 더 작게 접어두고 이 집을 떠날 채비를 한다. 준비는 대부분이 처분이다. '버릴 것' 리스트를 플래너에 나열해 본다. 이곳저곳 함께 잘 옮겨다닌 나의 옷장, 알뜰하게도 알아보고 샀던 중고 가전들, 야심 차게 깔아 두었던 새빨간 카펫. 큼직한 물건들은 들일 때도 버릴 때도 결심이 필요하다.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은 퍽 내용이 기대되지 않는 표지를 가진 것 치고 꽤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체크리스트 뒷장에 마침 옮겨 적은 문장들 중 하나는 이렇다.
QUIT. 무언가를 버리거나 거부하는 것은 새로움이 들어올 빈자리를 만들어두는 일이다.
다가올 2026년, 내게 들어찰 새로움을 위해 12월에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버리겠다. 빈자리를 넉넉히 만들어두겠다. 오늘 아침 새삼스럽게 많이 들어왔던 햇볕처럼, 나의 미래가 더 밝아질 수 있도록.
아무튼,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