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8일 저녁의 글
이사를 했다. ‘서울’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건물, 누구나 알법한 회사들의 로고가 스카이라인 곳곳에 뿌려진 풍경을 담은 집. 그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기 좋은 동네’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거실 창문 앞 큰 벚나무가 포클레인에 사정없이 뽑혀 쓰러지던 날, 그 자리에 몇 백 세대의 청년들을 수용할 호텔형 오피스텔이 세워진다던 소식을 들은 날부터였다.
‘살기 좋은 동네’란 어떤 곳일까. 내게 그곳은 작고 늙은 강아지와 별 근심 없이 집 밖을 나설 수 있는 환경, 불량한 사람조차도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단지, 플라타너스 나무의 넓은 잎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거리. 세상의 바퀴들이 바삐 굴러가는 소리보다도 풀이 부딪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을 의미했다. 그렇게 나는 조용하고 자연이 많은 동네를 찾아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의 지도를 몇 번이고 당기고 밀었다. 특히 창문에 초록이 보이는 집이라면 놓치지 않고 하트를 눌러두었다.
초록에 대한 목마름이 강하던 그 시절, 나는 집 안에라도 그 색을 끌어다 놓고 싶었다. 모종을 한가득 주문해 퍼석한 흙과 함께 화분에 담는 수고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내 집 안에 머물게 된 식물들은 물을 주면 자랐고 영양제를 주면 다음날 빳빳한 새 줄기를 뻗어냈다. 밖에는 회색 풍경만이 가득한 집일지라도 안에서만큼은 생동력이 넘쳤다. 그러면 그만이었다. 다음 집을 찾기 전까지는 버틸만하겠다 생각했다.
나는 키 높은 나무가 거실로 쏟아질듯한 집을 구했다. 무럭무럭 자란 집 안 식물을 비닐과 종이로 고이 둘러싸서 새 집에 옮겨두었다. 집 안팎이 초록으로 가득 찰 어느 날이 기대되었다. 소망을 이뤄낸 순간이라 믿었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렸듯,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날이 땨뜻해지고 창 너머 앙상한 나무로 가득했던 숲에 연두색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마치 계곡물이 불어나듯 초록이 금세 울창히 불어나던 시간 늦봄과 초여름. 나와 일 년 이상을 동거한 크고 작은 생명들은 점차 시들어갔다. 언제나 짙을 것만 같던 초록은 노랗게 변했고 바삭하게 그을려졌다. 밖은 새 생명이 바람에 넘실대는데, 내 식물들은 죽음에 가까운 모양새로 수그러들었다.
이상하다. 집 밖의 풀과 나무는 그 누가 물을 주지 않아도, 영양제를 꽂아주고 자외선램프를 쐬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꿋꿋이 커나가는데. 왜 집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리 세심하게 챙겨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아도 뚜렷한 이유 없이 토라져버리는지. 나약한 생명이 되어버리는지. 하지만 나라도 작은 그릇에 억지로 욱여넣어진다면 쑥쑥 자랄 자신이 없다, 생각하니 이해가 안 되지도 않았다.
초록이 덜한 집 안의 풍경은 건조했다. 이를 체념하고서 날이 지날수록 무르익는 여름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때론 허탈했다. 밖은 황망할지라도 집 안만은 푸르르던 과거의 날들이 오히려 행복했을까? 깊고 복잡한 생각으로 뻗어나가길 멈추고 나는 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오늘도 집 앞의 나무는 한 뼘이 더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