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에게 썼지만 보여주지 않을 편지
할아버지는 언제나 무언가를 심는 사람이었다. 집 마당에는 빈자리가 없었지. 한평생 나무와 잔디와 꽃을 심어두는 주인이 있었으니까. 나는 어느 땅에나 앵두나무와 상사화,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겠거니, 아무리 무심한 주인의 땅일지라도 잔디는 결이 곱고 보드랍게 자라겠거니 알고 자랐어. 계절마다 마당엔 각기 다른 꽃이 피었다. 한 꽃이 피면 다른 꽃이 저물고 그럼 또 다른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어느 봄날 밤, 마당에서 갑자기 내 손바닥보다도 크게 핀 목단을 한 송이 꺾어주시던 할아버지. 굵은 줄기가 끊어질 때 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집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잖아. 어릴 적 나의 마음은 유독 연한 살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할아버지는 의도를 불문하고 가시 여럿 박았지. 그치만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면은 꼭꼭 숨겨둔 사랑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먹어 삼킬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난 사랑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확인하는 사람으로 컸어. 그래서 두둑-하는 소리는 내게 사랑의 소리로 들렸다. 목단에겐 좀 매정했을지라도 말이야.
아파 누워계시기 전, 아주 직전만 해도 할아버지는 뒷밭에 나무를 가득 심으셨다. 꽤 넓은 밭을 비잉 둘러 어린 나무가 서있었고, 그 행렬 중 어드매에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거름을 뿌리고 계셨어. 나는 그 뒷모습에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고 소리치는 임무를 맡으러 밭으로 갔지. 귀가 침침한 할아버지는 내 외침을 듣지 못하셨다. 나는 그냥 그 곁으로 걸어가서 얼굴을 뵙고, 인사를 하고, 가만히 밭을 구경했다. 곧이어 임무를 수행하러 온 사람은 아빠 그리고 엄마. 밭을 둘러싼 나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키 높은 나무(그새 자랐겠지-하는 가정)에 둘러싸인 아담한 집 한 채를 그렸어. 여기 앞으로 길이 뚫리면 어떨까? 그럴 일은 없으려나? 이왕이면 2층으로 올려야지, 하는 실 없는 수다를 재료로.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할아버지의 나무 심기 작업도 끝이 났고.
나는 할아버지가 뒷밭에 심은 나무가 꼭 할아버지의 편지 같았다.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적힌 빼곡한 할아버지의 글과 마당에 심어진 빽빽한 나무가 닮아 보였어. 바로 읽고 의미를 알아챌 수는 없을지라도. 할아버지는 뭘 쓰고 심었을까. 당신의 존재, 혹은 성격상 말로 다 못 전하는 애정이려나. 뭐가 되었든, 우리는 밭이 잘 관리가 되는 한, 어린 나무들이 땅에 죽죽 뿌리를 내려주는 한, '심는 사람'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가 있어.
할아버지 집 마당 앞 상사화로부터 약 180km 떨어진 서울의 한 공원. 이곳에도 상사화가 가득 피어 있네. 나는 다홍빛의 수염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떠올려. 내 머릿속에도 무언갈 심어두신 게 분명하지. 그것에도 또한 사랑이 있다. 쑥쑥 솟아오른 다홍색의 사랑, 멀리서도 알아차릴 섬세한 모양의 사랑이.
할아버지가 좀만 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치?
동생 상은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