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목요일 아침
원체 산만한 사람의 아침이 유독 더 산만해질 때가 있다.
지금 내 눈앞에 깔린 것들만 보아도 꽤 너저분한데, 오늘 아침의 부산함이 그대로 묻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커피를 내려야만 했다. 아침에 커피를 굳이 찾지 않았던 시절은 이제 많이 멀어져 버렸다. 커피를 끊으면 두통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야가 개운해진다는데. 커피를 마시고 얻는 효과와 다를 게 있나? 한 잔, 두 잔의 커피를 참는 동안의 나는 꽤 괴로울 터. 디카페인과 친해져 보겠다. 디카페인 커피가 더더욱 맛있어질 미래가 기대된다. 커피 연구하시는 분들 아무쪼록 응원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동시에 빵을 데웠다. 얇은 반죽이 켜켜이 쌓인 빵은 에어프라이기에 돌리기가 까다롭다. 아니, 사실 잘 지켜보고서 알맞을 때 꺼내면 될 일인데 지옥불에 던져놓고 뒷전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빵은 씁쓸하다. 뺑오쇼콜라였던 것. 담양의 떡갈비를 닮았다. 맛은 고기맛이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다.
노트북 뒤에는 스프레이와 가위가 있다. 커피가 내려지는 틈새 시간을 활용해 식물을 돌봤다. 가을이 되자 베란다의 식물들은 성장을 멈췄다. 고요하다. 대신 물을 게을리 줘도 살아있다. 가지를 다 솎아버린 바질트리는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새로 뻗어낸 가지들로 포텐셜을 어필한다. 이름에 홀려서 들였던 아메리칸블루는 처음 집에 왔을 때와 그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 파란 꽃을 피워주는 아이였는데, 신중하지 못했던 여러 번의 가지치기로 삐뚤어져버렸다. 커피나무와 바나나크로톤은 어찌어찌 살아있다. 이번엔 좀 오래가려나 싶었던 테이블 야자는 바싹 말랐다. 스파티필룸은 동생들을 많이 키워냈다. 그래도 큰 형들에게 좀 더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별 양해 절차 없이 가위질을 강행했다. 여린 잎줄기는 쉽게도 잘렸다. 내가 잘 키워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당장은 잎이 초록색이고 새 잎도 나니까 문제없겠지.
무정히 잘라버린 잎들을 대충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보니 커피의 추출 온도가 애매해졌다. 흠, 어쩔 수 없었겠지. 얼음 사이사이로 부어버렸다. 자리 잡고 앉아 마셔보니 맛은 나쁘지 않다. 씁쓸한 뺑오쇼콜라와 과추출된 드립커피. 필히 위장 건강엔 좋지 않을 조합이다.
속이 쓰리다. 식물들보다 물이 더 절실한 건 나일지도.
모두 핑계다. 그러니까, 맛없는 커피와 탄 빵과 시들한 식물은 핑계다. 오른쪽 대각선에는 핑계 뒤에 숨어있던 서류뭉치가 가득이다. 어떤 서류냐하면, 내 과거를 담고 있고 내 미래를 결정할 서류. 앙큼한 비유와 의미부여로 이루어진 유혹과 설득의 말들. 되게 진심일 수도, 엄청 거짓일 수도 있는 생각과 비전. 서류는 내일 있을 면접을 위한 대본이다. 이틀에 걸쳐 다듬은. AI와 협작한. (돌이켜보니 AI 없는 시대에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한 과거는 정말 끔찍했더군요! 아침마다 미국을 방향으로 감사의 절을 올려야겠습니다. 물론 합격하면은 말이지만.) 내일 이 시간에 나는 미끈하고 신축성 없는 검정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있을 것이다. 입에 문장을 붙이고 또 붙이면서. 귀걸이를 하고 있으려나? 머리를 묶었으려나? 이건 오늘 저녁즈음 알 수 있다.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게 도가 지나쳤는지 면접 준비 외의 것들이 다 별 것 같다. 설거지가 재밌고 요리를 하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더니 오늘 아침엔 식물에 빠졌고 지금도 별 내용도 없는 글을 쓰기에 바빠. 긴장이 낳은 산만함. 웃기다. 제법 귀여울지도?
후회 없이 후련할 내일의 나를 위해서라도, 9시 이후는 꼼짝없이 면접 준비다.
아무튼,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