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월요일 오전
일어나서 거실 밖을 보니 노란 잎이 땅에 많이 깔렸다. 밤새 불던 가을바람이 만든 풍경일 테다. 내가 사는 빌라 뒤에는 작은 산이 있다. 그래서 내 방 거실에서는 숲이 보인다. 꽤 가파른 비탈길이라 사람은 다니지 않고, 풀과 나무만 있다. 풀과 나무가 창을 가득 채운다. 꼭 나 혼자만의 정원 같다. 게다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이라니, 정말 귀하잖아?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303호, 건물의 반장님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뜨끔거린다.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덕분에 잠에서 깼을지도.
"이사를 간다며? 아이고" 하셨다. 부동산에서 전해 들었다고.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그렇다, 어차피 같은 동네에서 움직이니 또 뵐 수 있을 것 같다, 뵈면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나의 이사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다시금 층간소음 걱정을 해야 할까 하는 우려에서 나왔든,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가씨 주민이 귀해서 그렇든, 별 관계없이 좋게 들렸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 창밖의 은행나무를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년이나 살았는데 거실 창문이란 프레임 안에 은행나무는 처음 봤다. 거실 창문만을 보고 이사를 왔는데, 살다 보니 무뎌졌다. 초반 1년은 베란다에 캠핑의자도 두고 데크와 자갈도 깔아보고 했다. 근데 그 사랑이 오래가지 않았다. 거실 창문은 집 밖의 벌레들이 출입하는 문이기도 하단걸 살다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환기를 시킬 때가 아니면 창문을 꼭 꼭 닫아 두었고, 커튼도 꽤 쳐두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떠나버리면 그만인 셋방, 떠나버리면 그만인 이웃주민. 피차 그럴 텐데. 새삼스레 집에서의 풍경이 소중하고, 이 집에 마음을 빼앗겼던 순간도 떠올려보게 되고, 한 번이라도 더 은행나무를 올려보려고 한다. 오늘의 아침은 이웃으로부터의 따뜻한 전화 한 통이 만들어냈다. 다음 집으로의 이사를 미룰 정도의 것은 아닐지라도. 지난 2년을 꽤 긍정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완벽한 집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그러니 오늘부터 이삿날 전까지 약 한 달 반 동안은 창 밖을 자주 봐야겠다. 처음 이사 왔을 때처럼. 이만한 집이 또 없을 거야, 해야겠다. 과거의 내가 내린 선택에 믿음과 확신을 갖고.
아무튼,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