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수요일 아침
일주일 중 며칠이나 살고 싶은 대로 살아지나? 나의 경우는 느슨하게 통제한다면 3일 정도는 맘에 들게 보낸다. 선호의 기준은 모두 계획표에 있다. 계획표대로 보냈으면 100점, 계획한 것을 다 지키지는 못했으면 80~40점, 계획표를 아예 쓰지도 않았다면 0점에서 40점 사이의 하루를 보낸다. 이제 햇수로 6년째 나를 봐오신 선생님은 55점짜리 하루를 살아보라 권하신다.
[0점~40점]
스케줄러를 펼치지 않는 아침에 나는 아침을 아침으로 보내지 못하고 침대에 있다. 아이패드와 이불이 있다면 24시간이 반나절 지나듯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별로 하는 일 없이 보내버리는 하루도 있다. 별로 있고 싶지 않더라도 항상 있다. 그럼 나는 그런 하루에 0점이라는 점수를 매긴다. 이불속에서 인생의 귀감이 될만한 명사의 말을 들었을지라도, 살면서 꼭 봐야 한다는 그 영화를 봤어도, 밀린 빨래를 하고 끼니를 제대로 챙겼어도 그런다. 종이에 무언갈 끄적이거나 컴퓨터를 쳐다보거나 나들이라도 나간 시간이 없었다면 딱히 가치를 두지 않네. 그렇다면 나는 펜을 들거나 타자를 치거나 밖을 걷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워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100점]
뻔하니까 미리 적는다. 아침에 세운 계획을 그 이행 시간까지도 정확히 지켜 살아낸 하루다. 느슨한 계획을 세우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100점짜리 인생을 살지만, 운동에 명상에 이것저것 토핑 잔뜩 쳐진 예전의 계획표였다면 100점짜리 하루는 1년에 이틀이 있을까 말까 했고 그마저도 그다음 날엔 몸살이 나 총점을 해쳤다.
[40점~80점]
하루계획표는 아침에 하는 인생 스케치다. 하루짜리 인생. 머리가 제일 밝은 시간에 오늘 무얼 해야 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적는다. 고등학생 때부터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절반 남짓 계획표를 적었는데 아직까지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40점 이하짜리 하루를 살고 싶지가 않은데, 이왕이면 매일매일 계획표와 살고 싶은데, 어쩌면 가치 있었을 하루에 0점을 주는 일이 적었으면 하는데, 맘처럼 되지가 않는다. 난 우선순위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그 순위를 애써 매겼을지라도 뒤돌면 까먹고서 (방금 생겨나버린) 당장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루의 끝 나의 계획표는 X와 ▵로 난도질이 되어있다. 그럼 내 마음에도 같은 모양의 생채기가 난다. 빨간 징표를 달게 된 일들은 내일로, 모레로 차일피일 옮겨가고 불어나고.
계획 이행의 정도에 따라 점수는 40점도 되고 80점도 되는 식이다. 각박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나처럼 수첩 없이는 제 모양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꽤 되는 모양이니까.
[*선생님의 추천* 55점]
한 때는 나의 "계획대로생활"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계획 자체도 잘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성 있는 계획을 절대 세우지 않고서 그를 매일 지키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스케줄러를 펼치고는 있어야 하는 게 신물이 났다. 보통 아래의 순환고리.
지켜보려 노력한다 ‣ 지킨다 ‣ 지친다 ‣ 작심二일의 삶을 산다.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운다 ‣ 나름대로 굉장한 타협을 한다 ‣ 그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자책이 심해진다.
계획이 없는 삶을 산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기분이 든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보았다.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하는 날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지킬 수 있을만하게 세운다고 세우는데도 매일 지키지는 못한다고. 매일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내가 나약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그만하고 싶고, 정도를 몰라서 지치고 싶지도 않다고.
그때 나온 해답이 55점이었다. 매일을 55점으로 살아보라는 말. 계획은 세우고 싶은 대로 세우되, 그걸 100이라고 치면 딱 반절보다 손톱만큼만 더 하는 거다. 그럼 그걸 55점 만점에 55점짜리 하루로 치고.
명쾌한 답이었다. 이렇게라면 지속이 가능할지도?
곧이곧대로 삶에 적용시키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는 나의 하루가 44점이든 55점이든 80점이든 다 괜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게 만점은 55점이니까. 대충 내 삶의 전체 평균도 이제껏 55점쯤 되었을 듯싶으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터. 나는 로봇이 아니니까, 매일이 같을 수는 없겠고. 어떤 55점이든 55점이면 그만이다. 내 나름대로의 성실함이 있었다면 그만이다.
날 달래는 말의 종류도 실력도 점점 늘어간다. 자주 까먹으니까 더 자주 되새기고 새로 또 배우고 어김없이 글로 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결국 세상에 다스릴 수 있는 거라곤 스스로가 전부일거란 생각을 한다. 지금의 시간이 내게 이로운 부메랑이 된다면 좋겠다.
아무튼,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