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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Mar 01. 2024

엄마는 밤마다 시체 같았다

변해버린 엄마를

그러니까 말도 못 하게 예뻤던 ○○씨였다. 그 시절의 스타  ○씨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60대가 되었다.  엄마는 TV를 보며 혀를 차신다. "○○나이 니 별 수 없네." 그 말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서글퍼진 것은 ○○씨가 아니라 바로 엄마 자신이서 하는 말인 것이다. '누구나 늙는구나. 그래도 저이는 곱게 나이 드는구나.' 그렇지만 당신은 특별히 더 늙어 버렸다 생각하며 서글퍼진다. 


75세 너무나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 여기저기 아픈 탓에 끌고 다니다시피 하는 몸, 단지 당신만 늙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잠깐의 위안이라도 받고 싶으셨을까. 그런 푸념이 바로 "별 수 없네"였다.


육체도 정신도 곱게 늙고 싶은데 욕심인가. 나역시 점점 거울 보기가 싫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화면이 셀카로 바뀌면서 내 모습이 보일 때면 화들짝 놀란다. '아이 깜짝이야. 머리라도 좀 해야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배웠다...

마음은 내가 어떻게 변해가든지 나의 존재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가 아프고 나이 드시는 모습을 오랜동안 보면서 사실 많이 두려운 것 같다.


'아프지 않은 게 어디야' 우리 엄마는 정말 끝없이 아프기만 했다. 사십 대부터 갑상선으로 시작해 임파선까지 계속 호르몬계 질환을 앓으셨다. 그럼에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고 간혹 혼자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뭘 했던 거야, 국민학교 2학년이나 됐으려나'



엄마의 몸은 내가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많이 부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엄만 작은 키, 225 발 사이즈에도 체중이 꽤 나갔었다. 정확한 병명들을 만나기 전에도 일하고 돌아오신 엄마는 밤이 되면 다리가 퉁퉁 부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벌써 옛날부터다. 잠이 와도 엄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거나 엎드린 엄마를 밟아 드려야 했다. '이제 그만 되었다' 하셔도 그 뒤로 30분은 더 주물러 드리고 싶었던 어린 내 마음은 엄마가 진짜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었.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이라서였다.


당뇨천식이 있으시고 나이 드시면서 일찍이 무릎이 좋지 않아서 연골주사 라고 하는 스테로이드 성분 주사 통증을 덜기 위해 주기적으로 맞으셨다.  일을 앞두고는 마음이 벌써 병원부터 찾아야 했다. 요즘은 부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 대신 히알루론산 성분의 주사를 쓴다고 하던데 아무튼 엄마는 오랫동안 맞은 주사 때문인지 '쿠싱증후군'그런 게 왔다.


아주 처음엔 엄마가 드시는 것도 없는데 살이 찌신생각했다. 살이 아니라 피곤해서 계속 붓는다고만 생각했다. 아니면 물만 먹어도 찌는 사람. 육식을 못하시는 엄마가 탄수화물과 채소류 생선류 만으로도 살이 찌시는구나. 탄수화물 비중이 많나 생각하며 멀리서 지켜보았고 체질이 그러시려니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의 뒷목이 거북이 등처럼 높이 솟아있는 걸 발견하면서 너무 놀랐다. "엄마 이거 왜 이래?" 놀라서 찾아보니 쿠싱증후군 같았다.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복용한 경우 등의 원인으로 인해 부신피질에서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만성적으로 과다하게 분비되어 일어나는 질환이라고 한다.) 


쿠싱증후군 환자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둥글게 되고, 비정상적으로 목 뒤에 지방이 축적되며(물소혹), 배에 지방이 축적되어 뚱뚱해지는 반면 팔다리는 오히려 가늘어지는 중심성 비만을 보인다.


오래도록 엄마는 원래의 엄마보다 무거운 몸을 감당하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도 그때 몰라보게 달라져 버렸다. 눈은 부은 듯하고 조금 돌출된 듯도 하고 얼굴은 볼살이 처지며 점점 하회탈 같아졌다. 길을 가다가 오래전 지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아이고 얼굴이 왜 이리 변했어요" 소리만 수없이 들으셨다고 한다.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졌을까. 그보다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혼자 병원 다시시던 엄마는 "애들이 아직 어려요. 저 벌써 죽으면 안 돼요" 그렇게 의사 선생님께 울며 간절하게 매달리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 해.'


그즈음에 엄마는 밖에 나가는 것도 좀 꺼리셨다. 그럼에도 집안에서는 대찬 엄마로 살았던 것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힘들었을 일이다. 엄마가 밤마다 시체 같다고 느꼈던 내 어린 기억이 뭔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플 때 의지할 사람이 없고 아이들도 어리고 사정은 넉넉지 않다는 것. 나로서는 견디지 못할 일인데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신 걸까. '아빠, 당신은 도대체 무얼 하며 사셨나요. 우리에게도 아버지 같지 않았고 엄마에게도 지아비 같지 않았고 왜 그래야 했나요.'


쿠싱증후군을 알고 나서 다시 상담받고 병원도 옮겼다. 그리고 조금씩 좋아지셨지만 근본적으로 아픈 곳들은 여전하다. 연골이 많이 닳아서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만성적으로 잠을 못 이루는 통증을 겪으신다.


엄마는 손, 다리, 발이 많이 저리다고 하셨다. 허리도 좋지 않으신 게 분명하다. 또 이제 와서 내가 느낀 것은  엄마에겐 외상 후스트레스장애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 겪은 사고도 있었고 결혼 생활 중에도 몸을 다치시고도 했고 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간단한 수술도 했고 그때마다 잘 돌보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가 엄마를 돌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엄마는 음식과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도 있으셔서 코로나 백신도 거부했었다. 극도로 조심했지만 코로나에 걸렸었고 그때 정말 거의 드시지 못하면서 다시 한번 무기력과 고통을 견디셨다.


엄마의 각종 질환 중에서 작년에 진단받은 새로운 내용은 심장이 비대해졌고 심장에 물이 찼다거였다. 천식 때문에 주기적으로 다니시던 병원에서 정기 검사로 X -ray를 찍고 나서 이상을 발견하고 초음파랑 혈액검사 CT 검사를 해보고 들은 얘기였다. 그동안 계단을 오르거나 조금 움직이시면 숨이 너무 차다고 하셨는데 천식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가 너무 놀랐다.

'아, 우리 엄마 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다행히 약물 치료로 경과를 보자고 하셔서 꾸준히 약을 드시고 있다. 약 성분에 이뇨제들어간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 달에 한두 번 친정을 갈 때마다 엄마의 체구가 점점 작아지신다. 후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다. 어깨도 반쪽 같고, 키도 작게 느껴진다. 팔뚝과 종아리, 허벅지가 늘 부어 있었는데 모든 게 반쪽이 됐다. 사람 속에서 사람 하나가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75kg의 몸무게가 어느덧 55kg이 되었다. 그 흔한 다이어트 몸무게가 급격히 빠지면 살이  하고 쳐진다.  엄마는 양팔을 들고 팔뚝 피부 가죽을 늘어뜨린 채 "희야 이봐라. 여기가 이렇게 돼버렸다." 하신다. 마치 고무 옷을 걸치고 계신 듯하기도 해서 또 속상했다. '아이고 우리 엄마, 어쩌면 좋아.' 나는 엄마의 피부를 손으로 조물 거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징그러웠고 믿기지 않았다. 칼로 잘라내 드리고 싶었고 그 칼은 또 내 마음을 긁었다. '우리 엄마 어디로 갔지' 

"징그럽지야. 별수 없네. 이렇게 돼버렸다."


엄마를 달라진 사람으로 만든 것. 음식을 잘 못 드시고 살이 급격히 빠진 것은 치아도 큰 원인이 되었다. 잇몸이 많이 상해서 임플란트 릿지도 다 불가능 판정을 받았고 치아를 발치하고 틀니를 하시고부터는 정말 하회탈이 되셨다.


틀니를 빼고 앉아 있는 엄마는 전혀 엄마 같지가 않다. 슬퍼서 보기가 힘들다. 엄마도 사위와 손녀가 놀랄까 봐 "아차 내 이" 하며 얼른 들어가 틀니를 끼고 나오신다. '너무너무 속상하다' 원래도 비위가 약해 음식 드시는 것이 힘드신 분인데 치아까지 이래야 하나. 이젠 김치도 제대로 못 드신다니 그동안 나는 무얼 했고 엄마는 또 무얼 하고 살았던 걸까. 해드릴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엄마가 안쓰러워 한동안 친정을 못 가겠더랬다. 엄마 생각하면 가슴이 멎고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그럴수록 가까이 챙겨드려야 하는 걸 알면서도 못했다. 지금도 가까이 가서 챙겨드리지 못하고 손님처럼 찾아가는 친정이 아픈 가시 같다.


꿈 많던 영애는 어딜 가고,

우리 엄마는 또 어딜 가셨나.

엄마, 어떻게 하지.

난 왜 이제야 엄마가 보이지.

그 어린 날에도 알았던 것들을

난 왜 무심히 지났을까.

엄마가 아파온 오랜 시간동안에도

우리의 지붕이고, 빛이고, 바람막이인 엄마에게

우린 왜 아무 힘이 되어주질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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