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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Feb 15. 2024

뜬금없이 떠오르는 잊지 못한 그 맛은 뭘까?

소울푸드

서양 음식 때문에 상한 비위는 내 집의 평범한 집밥만 먹으면 금방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시뻘겋고 맛이 진한 비빔냉면을 먹으면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다음날은 나물에다가 고추장을 넣고 시뻘겋게 한 대접을 비볐다... 그래도 한번 덧난 비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마침 그때 원주 토지 문화관에서 택배로 김장 김치를 부쳐 왔다. 박경리 선생님이 작년에 담아 산에 묻어둔 김장독을 헐었다고, 문화관 직원이 생전의 선생님이 하시던 대로 나에게도 나눠준 것이다. 나는 허둥거리며 그 김장 김치를 썰지도 않고 쭉 찢어서 밥에 얹어 아귀아귀 먹었다. 들뜬 비위가 다소 가라앉으면서 선생님 그리는 마음이 새삼스럽게 절절해졌다. - 박완서 산문집 (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중에서




음식이 가진 그리움과 치유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껏 느낀 참이었다. 뇌리와 오감에 새겨진 맛. 음식에 대한 향수는 얼마나 진한 것인가를 나이를 먹어가며 느낀다.

군고구마는 외갓집 화덕에서 외할아버지가 구워주신 것이 가장 맛있고 옥수수는 친가에서 밭을 헤치며 바로 따서 낸 것이 가장 맛있었다. 외숙모댁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갑오징어 조림은 간의 조화가 남다르고 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웬만하면, 아니 절대로 내가 만들지 않는다. 결코 그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신을 했을 때 친정 엄마가 해주시던 고등어조림이 당겼다. 비린 음식인데도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내가 해 먹으면 역시나 비리기만 할 뿐이고 고등어살 역시 퍽퍽하고 단단하기만 하다. 엄마표 고등어조림은 그렇지 않았다. 고등어 살뿐만 아니라 함께 들어있는 무도 입에서 사르르 녹아버릴 정도의 부드러움과 촉촉함을 가졌다. 다른 반찬 필요 없이 갓 지은 밥에 엄마표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서 혼났다.  엄마의 손맛은 맛있는 고등어를 사러 일부러 먼 시장까지 버스 타고 나가는 수고로움과 정성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내가 흉내 낼 수 없다. 엄마를 위해 기껏 쿠팡에서 주문을 넣겠지...


엄마가 안 계시면 엄마의 음식들은 엄마보다 그리운 것이 될 것이다. 다시는 먹어볼 수 없는 맛, 나의 오감으로만 느끼는 맛, 아무리 비슷하게 흉내 내어도 절대 같을 수 없는 맛, 그것이 엄마의 손맛이다.


붕어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마들렌과 홍차는 내게 김치전과 식혜같은 것일지도...


엄마의 손에서 나온 음식이 아닌 것으로 엄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붕어빵이다. 어쩌다 시장에 가시는 엄마를 따라붙을 때면 값도 싸고 푸짐한 붕어빵부터 살폈다. 사실 나는 붕어빵 보다 더 촉촉한 국화빵을 더 좋아하긴 다. 어쨌거나 붕어빵 정도는 거절 없이 내 입에 물려주셨다. 도넛도 그중 하나이지만 내겐 더 귀한 간식이다. 그 쫄깃거리는 옛날 맛을 요즘은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다. 호떡의 그 뜨거운 꿀맛에 데어보지 않은 사람은 호떡을 말하지 말라.  모두 천 원의 행복을 선사하던 음식이다.



딸과 다이소에 행복쇼핑을 하로 가곤 다. 붕어빵만큼이나 부담이 없는 우리의 문구류 쇼핑성지라 할 수 있다. 자주 가는 다이소 앞에 붕어빵 가게가 있다. 금상첨화다. 붕어빵을 입에 물고 있으면 나는 어김없이 어린애가 된다. 내 딸과 나를 전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꼭 그때만큼 마음이 부다.


그런데 요즘은 붕어빵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어쩌다 보여도 가격이 상당히 달라져 있다.  "나 때는 말이야 붕어빵이 천 원에 5마리였어. 인심이 좋으신 분들은 함께 구운 붕어빵을 덤으로 마저 담아주시기도 했다고". 요즘 붕어빵은 천 원에 두 마리, 한 마리 그 이상의 특화된 붕어빵들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아는 붕어빵이 아니다.  비단 비싸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허기를 달래주던 붕어빵의 정체성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은 서운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붕어빵은 또 묘하다.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눈에 잘 보이다가 진짜 먹고 싶어지면 보이지 않는다.


요즘도 밤에 TV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생각나는 붕어빵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붕세권 앱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 시간에 붕어빵을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고 먹고 싶은데 꾹 참게 되는 순간이 참 힘들다.


임신했을 때라면 내가 아니라 아기를 위해서라며 어디든 출동했을 것 같은데 의지가 부족하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쉽게 먹지 못하니 아이까지 덩달아 붕어빵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나도 옛날에 자려고 누우면 '찹쌀떡~' 하고 외치던 소리가 들려와  침을 꼴깍꼴깍 삼켰었는데... 아이가 지금 붕어빵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안다. 그래도 조금 애태워도 좋을 그리움이라 생각하기에 달려 나가지는 않는다. 붕어빵, 풀빵, 호떡만큼은 배달앱에서 절대 만나지 않았으면 싶다.



 76세의 엄마에게 잘 밤에 뜬금없이 떠오르는 그 맛은 뭘까?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어릴 때  외할아지가 당신의 소주 안주인 마른오징어를 고생하는 큰 딸 주머니에 몰래 찔러 넣어주곤 하셨단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중년 나이셨을 때 마른오징어를 좋아하셨었지. 그 배경을 이제야 안다. 지금은 이가 안 좋으시니 이젠 생각이 나도 드시지 못하게 된 음식이지만 1순위로 떠올린 사랑이 담긴 음식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팥칼국수도 분명 어떤 추억이 있는 음식이겠지. 엄마가 드실 수 있는 한정된 음식들을 계속 찾아보고 있는데 가짓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속상해지는 참이다.


by 열쇠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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