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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영 Aug 18. 2020

"나라면 우미영씨를 뽑을 겁니다"


“나라면 프랜시스를 뽑을 겁니다."


권위를 자랑하는 비즈니스 잡지 <비즈니스 위크>가 제너럴모터스(GM)의 다음 CEO를 지목해달라고 피터 드러커에게 묻자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우던 그가 주저하지 않고 추천한 사람이 바로 ‘프랜시스 헤셀바인'이었다.


1990년, 제너럴모터스의 CEO가 물러나고, 과연 누가 GM의 후임 CEO가 될 것인가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던 때의 이야기이다. 


피터 드러커가 당대 최고의 리더로 인정한 프랜시스 헤셀바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의 이름으로 간단히 구글링만  해 보아도 이 리더에 대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찬사와 수식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스물 세 개의 명예박사 학위증을 가졌으며, 50세가 넘어서야 정식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강하던 70, 80년대에 미국 걸스카우트 연맹의 CEO로 오랜 기간 동안  활약했다. 게다가 100세가 넘은 지금도 기업의 수많은 리더들이 프랜시스의 조언을 듣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터 드러커가 프랜시스를 CEO로 추천했을 때 프랜시스의 나이가 75세였다는 사실이다. 


2019년 7월, 새 회계년도가 시작되면서 나에게 기업고객사업부가 맡겨졌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여 맡았던 파트너사업부를 잘 이끌어왔고 회사에서는 당연히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부사장이 지금까지 잘 해왔고 그래서 회사에서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겁니다.’ 기업고객사업부장 자리를 제안하면서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회사의 제안을 수락해서 기업고객사업부를 이끌기로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새로 맡게 된 부서의 조직과 비즈니스를 익혀나고 있을 즈음 갑자기 회의가 들었다.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3년 열심히 하면 현재 조직이 갖고 있는 문제들도 해결되고 비즈니스도 커지겠지. ‘IT 업계에서의 다섯번째 직장, 30년의 직장생활에 다시 3년의 경력이 보태어지겠고, 그 때쯤이면 안락한 은퇴를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무난히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마치 궤도를 관성항법으로 비행하는 인공위성처럼 주어진 일과 일상을 공전하고 있을 그 즈음, 친한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지사장 자리가 비어 사람을 찾고 있으니 추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널리 알려진 글로벌 기업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회사인데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 만한 회사이다. 워낙 평판이 좋은 회사라서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준비와 수고로움이 따르겠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고 2개월간의 긴 인터뷰 과정이 시작되었다. 인터뷰는 회사가 제시하는 리더십 덕목을 내가 어떻게 발휘하면서 일해왔는지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는 리더십 관점에서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틀에 박히지 않은 방법으로 조그만 기회를 큰 사업기회로 만들어낸 경험, 가능성을 믿고 인재를 키워냈던 경험,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낸 경험, 촉박한 시간에도 옳은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 등,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나는 지난 30년의 커리어 동안 마주했던 상황들을 기억으로부터 소환해내고 정리했다.


총 일곱번의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거치면서 나는 그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동안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하프타임 경력기술서를 작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측에서도 나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는 지원했던 자리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이전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 만큼 공을 들여 인터뷰를 한 뒤 떨어지고나면 실망이 큰 법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 자신을 깊게 대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욕심 많고 남들한테 지기 싫어하고, 그래서 일을 위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30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용기있게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며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공전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추진력을 얻은 것 같다.  남들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야 정식 커리어를 밟기 시작한 프랜시스에 비해 나는 30년이나 먼저 커리어를 시작했고 아직 내 나이는 그녀가 정식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때 즈음이지 않은가.


50세가 넘어서야 정식 커리어를 밟기 시작했으나 75세의 나이에 피터 드러커 교수가 GM의 CEO로 추천할 만큼 탁월한 리더십의 경지에 도달한 프랜시스 헤셀바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나는 그저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을 해나가면서 배웠습니다.”


그녀가 일을 대하는 방식은 마치 내가 지난 30년간 일을 해 온 방식과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녀는 계획하지 않았지만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들을 직접 실행해 나가면서 배워갔다. “집에 뭔가 들고 가려면 바구니를 들고 와야죠.”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뭔가를 가져가려면 마음을 활짝 열고 있으라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가슴을 부풀게 한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내 삶에서 ‘일을 어떻게 써 나갈지'를. 다만, 프랜시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새로운 경험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런 태도와 시선으로 104세의 프랜시스도 현업으로 자신의 일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내 일을 써 나가고 싶다. 누가 알겠는가? 한 20년 쯤 뒤에 어느 경륜 높은 사람이 “나라면 우미영 씨를 뽑을 겁니다"라고 추천의 말을 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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