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집', 무엇을 기억하려는 걸까?

예술 공간이야기


올해는 확실히 예년과 다르죠.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달라진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게 가장 큰 차이 같아요. 집은 ' with 코로나'를 계기를 다목적 공간이 되어서, 앞으로는 집에서 하게 될 잠재적인 일들을 고려해서 집의 구조나 인테리어 방향도 달라질 테고 그 안에는 작지만 녹색 정원을 만드는 분들도 늘어가겠죠. 저도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짧게라도 자주 산책을 가려고 하는데 이래저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집안 여기저기에 놓인 꽃과 화분들을 보면서 눈의 피로를 덜곤 합니다. 화분은 부모님이 관리하시고 저는 가끔씩 꽃 시장에 가서 몇 종류의 꽃과 그린을 사 와 소분해서 꽂아두는데 원래가 예쁜 애들이라 툭툭 놓아도 그 자체로 기분 전환이 돼요. 꽃 시장이 멀다 보니 빨리 시들지 말고 오래오래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 달라고 마음속 바람을 가득 담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오늘은 특별한 집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코로나로 휴관만 하지 않는다면 개인 방역 잘 챙겨서 다녀오셔도 좋을 곳입니다.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집이지만 이 계절엔 사람들을 거의 마주치지 않을 곳들이기도 하거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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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전경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작품 이미지 출처:<류하>https://news.joins.com/article, <선소운> 국립현대미술관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집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입니다. 남정藍丁 박노수朴魯壽(1927-2013) 화백은 1955년 당시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서 <선소운仙簫韻>이란 수묵채색화 작품으로 첫 대통령상을 받았고, 이후 전통의 답습보다는 간결한 운필, 청아한 색채와 구도를 사용해 현대적인 미감과 시적 심상으로 가득 찬 자신만의 한국화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죠. 이 집은 박노수 화백이 1973년에 구입한 후 2011년 말까지 40여 년간 생활하며 <고사>, <월하취적>, <달과 소년> 등 수많은 대표작을 창작한 공간으로, 2011년에 미술관 설립을 위해 그림 500여 점과 490여 점의 고미술과 고가구를 종로구청에 기증한 것을 토대로 2013년, 서울시 1종 등록 미술관인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됐습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건축물과 앞마당, 정원, 뒷동산이 조화로운 이 집은 1938년경에(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기준) 지어진 절충식(서양+한옥) 가옥으로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1호로 등록(1991년) 되어 있습니다. 원래 친일파 윤덕영(1873-1940)이 딸을 위해 지은 주택으로 보화각(現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박길룡(1898-1943)이 설계했죠. 윤덕영은 일제로부터 받은 재산과 지위로 옥인동 일대의 땅을 사들여 자신의 별장을 지었고 그 주변에 일가들을 위한 집들을 지었는데 이 집이 그중 하나입니다. 이 사연 많은 집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가 결국 박노수 화백과 인연이 닿았는데요,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 같았던 이 집을 그가 하나하나 정성 들여 가꿔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구조와 외관을 갖춘 이러한 집들을 흔히 문화주택이라 부르는데, 1층은 빨간 벽돌, 2층은 흰색으로 외벽을 칠했고 건물 입구의 아치형 포치 porch, 서까래가 보이는 지붕, 목조의 붉은 칠 창틀, 박공지붕 위로 솟은 여러 개의 굴뚝이 놓여 묘하게 인상적입니다. 집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아요 구석구석.


미술관은 원래의 내부 구조 즉, 1층의 응접실, 거실, 안방, 주방 2층의 화실 겸 서재, 공부방, 다락방, 욕실을 그대로 8개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공간이 넓지 않아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수가 많진 않지만 깨알같이 회화·자료·영상 등을 설치해서 작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작지만 기념품 숍도 있어요.) 1,2층이 온돌방과 마루방 구조라 잘 닦인 마루와 계단을 걸어 다닐 땐 '살짝 삐걱거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게 되더라고요. 내부 사진 촬영 금지라 이미지로 보여드리진 못하지만 밖에서 안을 보는 풍경도, 안에서 밖을 보는 풍경도 모두 고즈넉하고 좋습니다. 집을 둘러싼 정원과 동산, 외부의 소박한 석조 연못? 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고요, 낮은 뒷동산에 올라 조망하는 풍경도 썩 괜찮습니다.

단지 작품 수가 적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소품이다 보니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고 뭔가가 너무 많이 설치된 느낌이라 좀 빽빽하고 답답한 느낌도 있어요. 그래도 원화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산책 삼아 다녀오기에는 괜찮습니다. 통인시장 후문과 수성동 계곡의 중간지점에 있어 볼거리 먹을거리도 충분하고요. 미술관 관람표: 3천원(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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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누하동, '청전 이상범 가옥'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도보 10분 미만 거리엔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 가옥이 있습니다. 청전 이상범은 전통회화 계승자로 조선 말기 화단의 거목인 오원 장승업(1843 - 1897)을 사사한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제자입니다. 심산 노수현(1899-1978)과 함께 스승 안중식으로부터 그의 호인 '심전 心田'이란 글자를 하나씩 나눠 받은, 애제자죠. (이 둘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경훈각景薰閣 벽화 제작에도 참여했어요.) 이상범은 1933년 경 자신의 효자동 자택에 회화 교육을 위한 '청전화숙(靑田畵塾)'을 개설했고 첫 제자인 배렴(1911- 1968)과 정종여(1914 - 1984)부터 박노수 등 다수의 제자를 배출한 교육가이기도 합니다. 또, 1936년 동아일보에 사진부 기자로 근무하던 당시 독일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게재한 당사자이기도 하죠. 이 때문에 구속 취조는 물론 동아일보사에서도 해직되었어요. 안타깝게도, 이런 행보와는 상반되게 일제 강점 말기 그가 행한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있어요. 그 때문에 그의 가옥 보존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죠. 모든 일에는 공과와 명암이 공존하니 안 좋은 역사라고 모두 없애거나 묻어버리는 게 최선책이 될 순 없잖아요, 하지만 "어떻게 보존해 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좀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설명판에는 너무 좋은 면만 대대적으로 부각되어 있어 뭔가를 놓친듯한 기분은 듭니다.

그럼에도, 그는 '청전 양식'이라는 독자적인 수묵 산수화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했고 그의 작품이 여러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는, 미술시장에서도 자주 거래되고 있는 우리 화단의 거장입니다.


청전 이상범 가옥은 골목에 위치해있는데 골목 입구에서 정면의 파란색 대문이 잘 보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정면과 측면으로 대문이 두 개예요, 개방은 하나만 하고 있지만요. 국가등록문화재 제171호인 이상범 가옥과 화실은 1930년대 누하동을 비롯해서 경복궁 서쪽 지역에 형성된 문화예술인의 도시형 한옥 건물로 그가 43년간 거주한 곳이죠.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 의하면 가옥의 건립은 1929년, 화실은 1938년으로 시대 추정하고 있어요.

현재 가옥은 서울시가, 화실은 종로구가 관리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가옥에 설치된 설명판에는 1942년부터 1972년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되어 있는데 다른 곳엔 43년을 거주한 곳이라고... 설명이 정리 및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이럴까요, 대체.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가옥 안에 화실이 있는 형태라 저런 불분명한 설명은 정말 도움이 안 되거든요.

어쨌든 그가 생활했던 이 주택은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근대 도시한옥이지만 부엌에 찬마루가 있는 드문 케이스라고 해요. 공간마다 청전의 그림이나 포스터를 걸어두어 그가 살았던 곳임을 강조하지만 그 때문에 방이 더 좁아 보이고 살짝 정신없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공간은 예쁩니다. 박노수 가옥과는 또 다른 멋이 있죠.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옛날 가전제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여러 방을 거쳐 가장 깊숙한 곳에 다다르면 그의 화실이 드러납니다. 그의 작품들과 도구, 서적, 자료 등과 생활공간답게 구석구석 살림용품들이 그대로 섞여 있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곳엔.


매번 느끼는데, 늘 관리가 문제입니다. 성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지원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매해 세금을 들여 유지하고 보수하면서도 정작 이 집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은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화실 안에 전시된 그림만 해도 제대로 장황을 해서 그림 성격과 공간에 어울리게 걸어두거나, 작품 인쇄물을 원화로 대체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청전 양식의 산수화를 한 점이라도 제대로 보고 갈 수 있게 하면 참 좋을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서촌이라는 동네 해설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곳인데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기에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리고, 청전 이상범 가옥 오른편은 천경자 화백이 살았던 한옥 집터라고 해요. 옥인동에 터를 잡고 9년 정도 살다가 오래 정착한 곳이 '누하동 176번지'로 이상범이 살던 집과 바로 이웃해 있었다고 하죠. 현재 어떤 표식도 되어있지 않지만 고증이 되는대로 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역시 우리 화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대표성을 지닌 화가니까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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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 전경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세 번째 소개드릴 집은 '이상의 집'입니다. 이상의 집은 방송에서도 여러 번 소개되었고 서촌 지역 중에서도 비교적 진입로 쪽에 위치해 많은 분들이 오가며 보셨을 거예요. 통인시장 후문 부근으로 이상범 가옥에서 5분 내외 거리에 있습니다.

이상의 집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이상 李箱(본명 김해경, 1910-1937)이 20년 넘게 살았던 집터 일부에 만들어진 문화공간입니다. 후사가 없던 큰아버지 김연필이 두 돌(1913년)이 지난 이상을 데려와 20년 넘게 공부시킨 곳이라고 하죠. 300평에 달했던 김연필의 집 '통인동 154번지'는 이후 여러 필지로 나뉘어 팔리고 154-10번지에 남았던 도시 한옥 건물도 헐릴 위기에 처했던 것을 지역 사회가 지켜내었다고 해요. 이 집이 이상이 사망한 뒤 지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어 등록문화재 지정 취소가 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결국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2009년 매입해 이듬해 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고, 노후화로 인해 2014년 리노베이션, 2018년 편의시설을 늘려 개보수한 후 재개관하여 현재에 이르렀죠. '이상의 집'이라는 현재의 명패가 걸리기 전인 2012년에는 '제비다방'이란 간판을 걸었는데 이는 1933년 이상이 종로 부근에 차렸다는 '제비'다방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살았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2018년 재개관 당시 그가 최초로 발표했던 서적과 인쇄본 등 156점의 지면 자료들을 아카이빙 서고 형태로 설치해두어, 그의 문학적 성취는 공유할 수 있습니다. 내부는 아담한 2층 구조로, 1층에는 아카이브, 편의시설, 안뜰이 있어요. 아카이브 옆 벽면에는 극사실주의 작가 정중원이 23세 건축사 시절의 이상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가 있고, 그 앞 기둥엔 화가 구본웅(1906-1953)이 1935년 무렵의 이상을 모델로 그린 <친구의 초상>이 표지로 인쇄된 '문학사상' 창간호(1972년 10월)가 걸려있죠. 안뜰에는 19세 즈음의 이상의 모습을 조각가 최수앙이 만든 흉상으로 재현해 놓았고요. 구본웅은 계모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을(사별 후 김환기 화백과 재혼)을 이상에게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1층의 아카이브와 정원을 다 본 후 육중한 철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마치 소설 '날개' 속 '나'의 방을 연상시키는 좁고 캄캄한 계단을 통해 작은 테라스로 연결됩니다. 내려올 때는 이상의 일대기를 간략히 소개하는 영상물도 볼 수 있고요.(올라갈 때 보셔도 됩니다~)

원래는 해설을 제공하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듣긴 힘들 거예요.

모쪼록 길가 쪽으로 나있는 창가에 앉아 그의 기록들을 천천히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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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창덕궁 5길(원서동),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 전경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네 번째 소개할 집은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입니다. 우리나라 첫 서양화가인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1886-1965)의 집이죠. 창덕궁 돈화문을 마주 보고 왼쪽 담장 따라 쭉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동네가 원서동인데요, 마을버스가 있긴 하나 슬슬 대로를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서 가장 왼쪽의 빨간 담장 앞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그곳이 바로 고희동 가옥,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입니다. 등록문화재 제84호로 지정(2004) 되어있는 고택이고요, 고희동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에 직접 설계하여 1949년까지 거주한 집이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마당이 나오는데 고희동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고 그 맞은편에 전통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 형태의 집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어요. 2000년대 초반 헐릴 위기에 처했던 이 집을 북촌 주민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보전 후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죠. 2008년 종로구에서 부지를 매입하고 복원 보수 공사를 거쳐 2017년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 자료관으로 등록했다가 2019년 종로문화재단이 위탁운영을 맡으면서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어요.


지상 1층 건물로, 사랑채, 화실, 안채로 구성되었는데 사랑방 옆에 화실을 따로 둔 것과 채와 채 사이를 오가기 편하도록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입니다. 높낮이도 달라서 다닐 때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구간도 있어요. 안마당도 내려가 보고 싶었는데 항상 개방하는 공간은 아닌 듯 보였어요 문을 걸어뒀더라고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집이고 내부 정리도 잘 되어 있는데 이곳 역시 미술관으로 부르기에는 전시.... 형태가 너무 엉성하다고 해야 하나... 좀 아쉽습니다. 고희동이 그린 잘 알려진 그림들은 대부분 다른 소장처에 있다 보니 인쇄 형태로 걸려 있는 작품들도 많고 그나마 있는 작품들도 그렇게 눈에 잘 들어오게 전시가 되어 있진 않아요(조명 탓이 큼), 미술관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그럼에도 이곳은 화가로서도, 미술행정가로서도 활발한 행동을 했던 그를 기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 많은 분들이 찾아가서 보셨으면 합니다. 공간이 좋기도 하고요, 주변 입지도 괜찮아요.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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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전경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은 그가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의 성장기를 보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조성된 기념관입니다. 백남준이 유년기를 보냈던 집터에 남아있는 1960년대의 한옥을 매입하고, 2016-2017까지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새롭게 조성된 전시공간으로 2017년 3월에 개관했어요. 역시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나름 알차게 상설전과 기획전을 운영하고 있고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도 갖추고 있죠. 카페 내부에는 백남준 관련 도서도 비치되어 있고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구성도 운영도 가장 안정적입니다. 전시도, 집도 다 눈에 잘 들어오거든요.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있긴 하지만 경기도라 마음먹고 가야 되다 보니, 저는 종종 동대문이나 창신동을 지날 때 이곳을 들리곤 해요. 멀지 않은 곳에 제가 좋아하는 매운 족발집이 있기도 하고 동묘나 동대문 완구 시장 등지는 제가 가끔 색다른 것이 보고 싶을 때 가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공간이 크진 않아 많은 작품을 볼 순 없지만, 입구부터 설치된 미디어 아트와 전시 자료들을 통해 이곳이 백남준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백남준 관련 내용이 텍스트 패널로 제작되어 있어 쭉 읽어보기만 해도 대략적으로 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이곳은 사전예약 없이 현장에서 QR코드, 체온 체크만 하고 들어갈 수 있으니 근처 지날 일 있을 때 들러보세요. 창신동은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외에도 가수 김광석이 살았던 집 등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니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서울시나 구청에서 진행하는 도보 해설 투어에 참여해서 함께 둘러보세요. 집이라는 건 현재의 삶 외에도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분명 지루하진 않으실 겁니다. (관람료 무료)


12월 3일은 수능일이죠. 언제 봤었는지 기억도 까마득하지만 수능을 치렀던 학교 앞을 가끔씩 지날 때면 문득문득 그때의 쫄렸던? 감정들이 떠오르긴 하더라고요 ㅎㅎ

뉴스에선 '부모의 마음으로 수험생들을 위해서 방역에 잘 동참'해 달라 하는 요즘, 믿기 힘들겠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가끔 노 마스크인 상태로 길도 묻더라고요 제게. 할 말은 정말 많지만... 기본적인 도리는 좀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 면에서.


어쨌든! 수험생분들~고생한 만큼 꼭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고요

시험 끝나고 집에서 그동안 못 잔 잠들~ 늘어지게 자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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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parkns01

https://www.ohseoul.org/2020/programs/%EB%88%84%ED%95%98%EB%8F%99-%EC%9D%B4%EC%83%81%EB%B2%94-%EA%B0%80%EC%98%A5%EA%B3%BC-%ED%99%94%EC%8B%A4-2/event/172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gohd01

https://sema.seoul.go.kr/ex/exDetail?exNo=524&glolangType=KOR&searchDateType=CURR&museumCd=ORG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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