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 살 때는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면을 수도권에 이사 오고 나서는 수시로 본다.
경상도 노부부는 손을 잡기는커녕 나란히 걷는 경우도 잘 없다. 좀 더 빨리 걸을 수 있는 쪽이 앞에 걷는다. 다리 건강이 안 좋은 쪽이 뒤따라 걷는데, 그들의 애정표현은 앞서 가는 사람이 한 번씩 뒤돌아 보는 정도이다. 잘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웬만해서는 뒤도 잘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걷는 경우도 많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뒤처지는 사람에게 빨리 오라는 호통을 치기도 한다. 그것도 그들의 애정 표현 방식이다. 그런 모습을 일상으로 보고 자란 나는 아직도 손 잡은 노인을 볼 때마다 낯설다. 서양 노부부나 손을 잡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수도권으로 이사 온 2년 사이, 손 잡은 노부부를 평생 봤던 것보다 더 많이 봤다.
왜 수도권에는 손 잡은 노인이 지방보다 훨씬 많은 것일까?
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니까 손을 안 잡고, 수도권 사람은 다정하니까 손을 잡는 걸까?
단순히 지역색이나 성향 차이로만 볼 수 없는 것 같다.
대구, 부산, 울산, 광주, 구미... 어쩌다 보니 직장, 학교, 결혼으로 여러 지역을 옮겨 살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방인이 되어 여행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곳을 살피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지방마다 차이점도 있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로 크다. 확연히 지방과 수도권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점은 ‘노인’이다.
지방의 노인과 수도권의 노인은 다르다.
수도권 노인들은 지방의 노인보다 외관이 깔끔하고, 자기 관리를 잘한다. 청결에도 더 신경 쓰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노인들은 더 활력 있고 건강한 것 같다.( 지방 노인은 지저분하다는 뜻이 아니다. 확률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니, 이 글을 읽고 지방에 사는 분들이 불편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
병원도 수도권이 지방보다 훨씬 많으니, 병이 났을 때 치료하기도 지방보다 간편할 것이다. 병원이 많이 없는 지방에서는 병을 키우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운동할 만한 곳도 수도권이 잘 돼 있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필라테스, 헬스장, 수영장이 부지기수로 많다. 돈을 들여 운동하는 곳뿐만 아니라 돈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나 공원도 수도권이 훨씬 잘 돼 있다. 인구가 많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관리도 잘 된다.
나는 수도권에 이사 와서 밤 10시에 산책길을 걸으면서 깜짝 놀랐다. 운동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아주 많았다. 나가기 전에는 무서울까 걱정했는데, 한낮에 걷는 것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두려움이 싹 가셨다.
내가 살던 지방 광역시는 밤 10시에 사람들과 산책 등 운동할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지방에는 운동이나 병원 접근성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수도권에 비해 훨씬 적다.
수도권 사람들은 젊을 때부터 자기 관리에 익숙한 환경이다.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개인이 노력하는 것은 더 힘이 든다. 병원도, 운동할 만한 곳도 많이 없는 시골보다 수도권 사람들이 자기 관리가 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업도 서울 및 수도권은 사무직이 많다. 지방은 제조업 기반의 공장이 많다. 농사를 짓는 인구도 거의 지방에 몰려 있다. 평생 몸을 쓰면서 일했던 사람과 사무직으로 일했던 사람은 노인이 되면 외관이 확연히 달라진다. 농사나 제조업으로 평생 일했던 사람들은 몸의 체형이나 관절이 많이 상할 수밖에 없다. 지방에는 산업 재해로 사고를 입은 사람도 많다. 장시간 노동으로 허리는 구부러지고, 관절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지방에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을 치료할 좋은 병원은 모두 수도권에 있다.
문화적으로도 지방 노인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는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동네마다 있다.도서관뿐만 아니라 각종 공연, 강의도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울산에 살 때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으로 가곤 했다. 부산에도 공연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수도권에는 공연이 넘쳐난다. 무료 공연이나 저렴한 공연도 많아서 누구나 공연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 수도권 노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생활을 많이 누릴 수 있다. 문화적 혜택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과 직결된다.
수도권은 노인이 몸과 마음을 젊게 관리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다.
수도권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관리를 하던 것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 노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 다정한 성향과 상관없이 주변 환경이 다정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함께 다정하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수도권이 더 많고, 노년에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는 병원도 수도권이 훨씬 많다. 노인이 되어도 함께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며 젊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때문에 수도권에는 손 잡고 걷는 노인이 지방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시골이 아닌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 노인이 되었다면, 손잡고 다닐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손잡고 걷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안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