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부터의 해방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죽을 듯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원인을 제거하고 아픈 곳을 도려내고 나니, 그동안의 고통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야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한(恨)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이 정확하게는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으나, 그간의 과정을 거쳐 한이라는 것은 극한의 억울함과 슬픔이 답답하게 쌓여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지 않는 상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명치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쿡쿡 거림에서 위경련은 물론이고, 가끔씩은 심장이 아파와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은 곧 죽음의 고통을 연상하게 한다.
숨을 쉬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쇼크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진정하려고 애를 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갑자기 엄습해 오는 불안을 애써 다른 사물들을 보면서 나는 평상시와 같다라고 생각하며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매 순간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울증과 불면의 나날.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1년 동안 12시간씩 공부를 했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풀어 본 문제를 다음날 풀지 못했고, 오로지 정상적으로 잠을 자기 위해서 수면제 처방도 같이 받았다. 한 번에 먹어야 할 약이 15알이 넘었던 걸로도 기억한다.
이혼 이후로는 차차 약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일을 하면서 잠을 잘 수가 있었고, 잠을 자니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남편의 생사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나에게 빚이 더 늘지도 않았다.
마음을 잡을 수 없이 괴로웠던 상황에서 이혼을 하고 타인이 됨으로써 차차 안정을 잡아갔다.
그동안 나에게 가해졌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혼자라도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망하면 혹은 아이 아빠가 신용불량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아이가 나로 인해 대학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이런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고통으로부터 그 끝맺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이혼이라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혼은 오로지 한 사람만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가 동의해 주었을 때는 어이없게도 고맙기까지 했다. 이혼도 안 해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으로는 나만 이 지옥에서 탈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당시, 그는 사업이 너무나 잘된다며 너 없이도 끄떡없다고 자신감을 보였고, 나도 미련이 없었다.
가정 법원의 서류 한 장이면 이 모든 관계가 끝나는 아주 단순한 이벤트인 데도 왜 그렇게 10년이나 끌면서 고통스러워했을까?
이혼이라는 한 사건을 좀 더 단순하게는 볼 수는 없었을까?
처음에 선택의 과정이 두렵고 지난해서 그렇지 막상 모든 서류의 완결까지 끝나고 나면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든다.
이제야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내 인생에 커다란 걸림돌 하나를 아주 힘겹게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