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았던 아름다운 여행을 마치며
새 학년을 바삐 시작하는 2월 중순부터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2025년도 3월 4일 아침이 되니 참 낯설었다. 가벼운 눈이 흩날렸다. 아파트 위에서 책가방을 메고 삼삼오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얘들아, 너희들의 한 해를 응원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해주었다. 아주 신나게 큰소리로 말이다. 시작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해 주는 눈 같았지만 사실 온 세상이 나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는데 여전히 학교 주위를 맴도는 나를 발견한다. 역시나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데 처음엔 언제나 낯설고 적응이 안 된다. 동네 초등학교 앞을 지나며 새 학년을 기대와 피곤함으로 시작할 이름 모를 선생님들을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연구년이 시작되었다. 선물 같은 1년의 첫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구덩이’ 그림책은 주인공이 열심히 구덩이를 파는 그림이 나온다. 주인공은 자신이 판 구덩이 안에서 하늘을 본다. 동그랗고, 파랗고, 높다. 그 위로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는 꼭 ‘나’ 같았다. 연구년의 시간도 나에겐 그 하늘을 보는 시간이었다. 혼자 또 같이 지냈던 모든 시간들이 봄 햇살처럼, 여름의 녹음처럼, 가을의 단풍처럼 푸르고 아름다웠다.
앨리스 멜빈이 그린 그림책 ‘숲의 시간’에서 첫 페이지를 열면 숲의 지도가 나온다. 연구년의 모든 시간들을 나는 마치 그 숲의 지도를 누비듯 다녔다. 자유롭고 행복했으며 모든 장소들은 아름다운 숲이었다. 평소 같으면 바삐 출근했을 그 오전에 즐겁게 걸었던 동네 산책길이 벌써부터 그립다.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았던 연구년 선생님들이 귀했다. 워크숍 때마다 발표해 준 각자의 연구 내용은 신선하고 커다란 배움들이었다. 정책분과 2-1조 선생님들을 낯설게 처음 만났던 날도 기억한다. 학교급도, 연구분야도, 성격도 사는 곳도 모두 달랐던 그들과 1년을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처럼 지냈다. 함께 웃고, 먹고, 이야기하고, 연구하고, 여행했던 시간과 장소들이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젠 날개를 활짝 편 말처럼 악보 위를 훨훨 날기를 축복해 본다.
선물 같았던 이 여행의 끝이 서서히 보인다. 내년이라는 시간이 벌써부터 낯설다. 그새 익숙해졌나 보다. 연구년 첫날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을 열면’ 그림책에서 나오듯 나를 만날 아이들을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연다. 우리 엄마가 그랬지. 여행이 아름다운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