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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명의 삶

<축복과 저주>

여호수아 8 : 24~35

by 봄날의 소풍

<축복과 저주>

여호수아 8 : 24~35

24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

-아이성 사람들도 알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싸우지 않고도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성문을 열어주고 그들과 한 백성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리고성도 아이성 전투도 이스라엘의 역사이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진멸되었으니 이스라엘을 잔혹함과 평화를 깨뜨리는 침략자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묵상 중에 바뀌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 놓으신다. 성경 곳곳에 토박이와 이방인으로 구성되는 이스라엘을 볼 수 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 알았다. 진정한 의는 하나님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며 막무가내로 밀고 가는 이스라엘의 밑바닥에는 그들이 선민이라는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 이스라엘은 분별해야 한다. 더불어 내 안에서, 밖에서, 그리고 나라 안에서 밖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의 주관은 누가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전투와 정복은 '義'다.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율법책에 기록된 것은 축복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많이 치셨다. 율법책에는 축복과 더불어 저주도 있었다. 저주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지 않으며 말씀을 지키지 않고, 교만과 우상이 있을 때 발생한다. 저주를 위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위한 저주라고 하면 너무 역설적일까. 나를 포함해서 많은 크리스천들은 축복만 바란다. 그래서 위로와 복을 주는 설교만 좋아할 수도 있다. 남편과도 이야기했지만 그러 면에서 우리 교회는 군사를 키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바로 봐야 한다. 자녀 교육에 사랑과 원칙이 필요하듯, 말씀에는 축복과 저주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님! 말씀이 아니라 인본주의에 입각한 생각과 판단에 설 때가 많음을 회개합니다.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에 축복과 저주가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늘 품고 살게 하소서, 선택과 집중에 있어서 예수님을 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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