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태어나 큰 사랑 주고 간 우주
우주는 세상에 태어나 1년을 알차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다 떠난 고양이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집안에 은하수, 별이, 달이를 들이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내 시골생활도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길냥이 나비가 우리 집 마당에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아 아버지, 어머니, 이모, 삼촌, 조카 등 3대가 모여 사는 모양을 이루었는데, 덩달아 내 삶의 균형도 깨지고 바뀌어버렸다. 생채기도 냈고 깨달음도 준 이 인연들은 내게 무엇일까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저녁, 마당에 있는 강아지 복순이가 유난스레 짖어대길래 혹시 뱀이 나타났나 싶어 나가 보았더니, 장작더미 아래에 나비가 앉아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끼를 내려놓고 열심히 핥아주고 있었다. 몸도 못 가누고 눈도 못 뜬 너무 어린 새끼를 본 건 처음이라 나도 어찌할지 몰랐는데, 조금 있더니 나비가 새끼를 놔두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고, 얼마 후 다른 새끼를 입에 물고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옮겨놓은 새끼가 모두 네 마리이다.
하필 왜 이런 궂은 날씨에 새끼를 옮기는지 알 수 없지만, 새끼들을 이렇게 젖은 마당에 놔둬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비가 나를 신뢰하는 건 알겠지만 함부로 새끼를 만질 수는 없어서 나비에게 맡기고 그날 밤을 보냈다. 나비는 이때가 내가 본 것만 세 번째 출산이었고 매번 한두 달 된 새끼를 입에 물로 내 집 마당에 정착하곤 했다. 나비의 새끼 돌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그나마 덜 걱정하며 밤을 보낸 다음날, 나비는 또다시 새끼 네 마리를 차례로 물로 다시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마 어젯밤에 복순이 때문에 다시 옮겨놓은 거 같았다.
문제는 나비의 태도였다. 전에는 새끼를 데리고 오면 어딘가 꽁꽁 숨겨 놓고 혼자서 밥만 먹고 사라지다가 갑자기 훌쩍 커버린 새끼들과 뒷산과 앞마당, 텃밭을 어지러이 돌아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는 새끼를 내려놓고 내 다리를 비비고 부비고 또 부벼댔다.
'혹시 나한테 돌봐달라는 건가?'
나비는 분명 예전과 행동하는 게 달랐다. 새끼를 데려놓은 곳도 전처럼 남이 못 보는 그런 곳이 아니라 집 뒤편 깨진 시멘트 바닥이었고, 울어대는 새끼들을 옆에 놓고 다리를 쭉 뻗어 기진맥진한 듯 누워있었다. 내가 새끼들 가까이 다가가 앉아도 전혀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새끼들의 크기였다. 같은 시기에 낳은 애들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발육 상태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제일 큰 아이는 젖을 안 먹어도 될 만큼 쌩쌩하니 몸집이 컸고, 제일 작은 아이는 어제 본 그대로 마치 갓 태어난 새끼처럼 작고 여렸다. 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어미가 나타나면 눈도 못 뜬 채 야옹하며 젖을 찾아 어미 몸을 타고 올랐다. 귀도 다 생겨나지 않은 것처럼 작았다.
문제는 그보다 다른 것에 있었다. 나비가 두 번째로 낳은 새끼들 중 하나인 여름이가자꾸 새끼들을 물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여름이는 워낙 경계심이 강해 1미터 이내로 다가오는 일이 결코 없었다. 나비가 새끼들을 데리고 내 앞에 온 걸 보고, 여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불안하게 계속 울어댔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 싶으면 새끼들을 하나 물고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웃긴 건 또 그다음부터다. 그걸 본 나비는 코맹맹 소리로 이힝이잉힝 거리며 여름이 뒤를 쫓아 기어이 다시 새끼를 데리고 오는 거였다. 아마 어제 빗속에서 다시 새끼를 데리고 간 게 여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몇 번을 여름이와 나비의 실랑이를 지켜보다 제일 걱정되는 우주 때문에 밖에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비와 새끼를 1층에 서재로 꾸며놓은 방으로 들여놓았는데, 여름이가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어쩔 수 없이 여름이도 함께 방 안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서재가 나비, 여름, 은하수, 별이, 달이 그리고 우주 여섯 마리의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비의 새끼들은 모두 건강하지 못했다. 일단 나비가 계속 컥컥거리고 눈과 코에 딱지가 자주 앉았다. 무엇보다 새끼 젖을 오래 먹이지 못했다. 젖을 물리다 1-2분 만에 새끼를 놓고 혼자 쉬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아마 젖꼭지가 아파서였지 않을까 싶다. 생후 한 달만 되면 이빨이 나서 어미젖을 꽉 무는 경우가 많다.
새끼들의 건강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은하수만 조금 괜찮고, 나머지 둘은 콧물과 눈곱이 마를 새가 없고, 어미처럼 컥컥 거리는 기침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우주는 자는 건지 쓰러진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늘 엎드려 있고, 나비가 젖을 물리러 올 때만 연약한 다리를 버둥거리며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사실 네 마리 모두 아직은 젖을 찾을 때라 나비 품을 파고드는데 그중에 제일 약한 막내 우주는 당연히 형들에게 젖 쟁탈전에서 밀리니 더 걱정이었다.
다행히 은하수와 별이는 사료를 물에 불려 주면 아작아작 씹어먹기에 그렇게 하고, 달이는 혼자서는 먹지 않기에 무릎에 앉혀놓고 입 안에 넣어주니 쩝쩝거리며 받아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비 젖은 모두 우주만 먹을 수 있게 했더니 나비도 우주도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한 가지!
여름이도 젖을 먹이고 있었다. 특히 우주에게 젖을 먹이고 핥아주는 모습을 보면, 어미라고밖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우주가 여름이 새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주가 저렇게 작은 게 조금 이해될 거 같다. 즉 우주는 여름이가 낳았다. 나비가 먼저 새끼를 낳았고, 얼마 안 있어 여름이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같이 새끼를 돌보게 되자 모성애가 생긴 두 녀석이 모두 자기 새끼라고 생각하고 돌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녀석들과의 동거는 나를 무척 바쁘게 했다. 아침이면 따로따로 밥 챙겨주고 약 넣어주고, 화장실 청소해주고 여름이와 나비를 교대로 밖으로 내보냈다. (길냥이들이라 안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할 거 같기도 했고, 나름의 육아 휴식을 주는 개념이었다.) 저녁에 오면 다시 밥을 주고 약 주고, 잘 노는지 건강한지 확인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놀아준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별이랑 달이가 번갈아가며 컥컥거리고 안 먹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우주는 아주 더디게 자랐다. 언제 기어 다니기를 멈추고 걷기를 할까 매일매일 지켜보았다. 일어나 몇 발짝 걷고 쉬고 뒤뚱뒤뚱거리다 은하수가 툭 치고 도망가면 툭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다른 형제들 노는 게 재미있는지 느린 걸음으로 뒤뚱뒤뚱 쫓아다닌다. 우주는 흰색 바탕에 회색 무늬가 두루 섞였는데, 색 배합이 어찌나 은은하던지 폭신폭신한 담요를 생각나게 했다. 우주가 처음으로 화장실 문턱을 올랐을 때(어린아이가 문지방을 넘는 것처럼)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고 대견하고 깜찍해서 정말 품 안에 꼭 껴안아주고 싶게 만들었다. 우주는 정말...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