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바람

by 혜랑

9월의 바람이 좋다. 새벽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낯선 차가움도 좋고, 뜨거운 햇빛 사이를 가로지르며 날카롭게 부는 바람의 느낌이 좋다. 9월의 바람은 살랑살랑 불지 않는다. 칼을 들고 직진하는 기사의 움직임처럼 햇빛을 가르고 땀을 가른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게 하려는 힘이 느껴진다. 그 바람 앞에 서 있는 게 좋다.


여름내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길을 가라고 등을 떠미는 듯하다 길을 뒤덮던 풀들을 치워 길을 내고 빗속에서 망가져 간 벤치를 말려 잠시 쉬어가라고 한다. 상처 난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단풍든 잎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내 안의 상처도 딱지가 되어 사라지길 바라면서 벌레 먹은 잎을 주워 책 속에 끼워본다.


그늘이 없어도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있으니 나무는 저렇게 잎들을 떨구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꿈을 꾸라고 단풍은 서서히 들며 시간을 보여주는 것일까? 9월의 바람은 그렇게 끝자락에 서 있는 여름의 흔적을 아낌없이 보여주려 내 발길을 밀어낸다. 밖으로 나가 걸으라고. 밖으로 나가 느끼라고. 밖으로 나가 춤추고 노래하라고. 너는 언제나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곳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라고. 바람이 더 차가워지면 바람을 피해 햇빛을 쫓아갈 테니 햇빛과 바람이 적당히 공존하는 이곳에서 모든 걸 느껴보라고.


9월의 바람은 만물을 피워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물을 거두어내기 위해 분다. 언젠가 나도 온전히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외롭지 않으려면 9월의 바람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사라질 것을 알아도 햇빛 앞에 겸손히 물들던 나뭇잎과 바람과 손을 잡고 날리던 나뭇잎처럼 웃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곁에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사람과 함께 걸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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