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보물섬』이란 책과 영화를 보며, 나도 어딘가에 있을 보물을 찾으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보물지도 하나쯤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어려서 보물은 보물섬 지도에 나오는 금은보화였다.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될 수 있게 만드는 황금이야말로 가장 갖고 싶은 보물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친구와 나눈 우정 반지, 용돈으로 직접 산 시집, 예쁜 엽서와 일기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수집을 좋아했던 나는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추억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 1호 보물은 일기장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은 지금까지 스무 번 넘는 이사에도 캐리어에 담겨 안전하게 이동을 거듭했다. 또 대학생 때 모은 영화, 연극 팜플렛, 김광석 콘서트 티켓, 여행기록까지, 지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시절만의 디자인과 취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물건들을 고이고이 보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물건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원할 거 같던 삶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걸 경험해서일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고민하게 됐다. 첫 반려묘를 보낼 때도 그랬다. 내 일기장과 추억의 물건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 걸까.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어쩌면 난 과거의 향수에 젖어 오늘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보물은 그 물건들이 아니라 그 시간과 사람이었을 텐데, 이미 가버린 시간과 변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무얼 잡고 싶었던 것일까.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는 일이지 않을까.
나는 좋은 집도 갖고 싶고 돈도 많았으면 좋겠다. 값나가는 물건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없어서인지 언제나 내 보물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것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난 내 곁에 있는, 살아 있는, 숨결을 공유하는, 언제나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온기를 나눠주는 반려묘와 반려견이 지금의 내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