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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07. 2024

06 이건 큰 문제가 될거예요!


“잘 지냈나?” 


허경일과 김재이는 그들이 두 번째로 악수를 했던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 허경일은 잊지 않고 자릿값을 결제하기 위해 커피 두 잔을 샀다. 김재이는 커피가 준비되었다는 진동벨이 울리자 쪼르르 달려가서 커피를 가져왔다. 어쩐지 본인이 만나자 제안한 주제에 김재이는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한 손의 손톱으로 다른 손의 손톱 주변에 난 거스러미를 계속해서 잡아떼고 있는 것이 허경일의 눈에 보였다.


“네 교수님. 잘 지냈습니다. 교수님은요.”

“잘 지내다마다.”

“좀 달라지셨어요.”

“내가?”

“네.”

“어디가?”

“그냥요.”

“싱겁긴.”


허경일은 코웃음을 친 후 자신이 어디가 달라졌는지 팔짱을 낀 채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난 지도 6개월이 넘게 흘렀다. 그 사이 허경일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고, 그 성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글을 썼다. 이제 허경일이란 사람은 세상 속에 알려지기 직전의 단계를 밟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큰 변화였다. 허경일의 입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김재이가 허경일의 표정을 바라본 채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허경일은 김재이의 어색한 표정을 보며 잠에서 깨어난 야생동물처럼 살짝 기지개를 켰다. 김재이는 아직 자신의 의도를 털어놓지 않았다. 왜 만나자고 한 것일까. 협박하기 위해? 무엇인가 얻어내기 위해? 그러나 김재이는 아직 허경일이 능력을 쓰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래서. 눈앞에 이 기회일지 위기일지 모를 소식을 가진 존재는 또 어떤 비밀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가.


“그래서 할 말이 뭐지?”


김재이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서서히 김재이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상체가 조금 부풀었다 쪼그라 들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김재이가 숨을 골랐다.


“교수님, 능력 말입니다.”


김재이가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총 몇 번이나 사용하셨나요?”


능력! 허경일은 김재이가 사용한 ‘능력’이라는 용어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능력’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김재이는 허경일도 지식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김재이가 이미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목이 조금 타는 것 같아 허경일은 큼큼 하는 소리를 냈다. 허경일은 바로 답변하지 않고 커피를 홀짝하고 들이키며 김재이의 얼굴을 살폈다. 김재이는 여전히 조금은 초조하고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허경일은 김재이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야할지, 아니면 대충 꾸며내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허경일은 능력을 처음 깨달은 날 이후 거의 매주 능력을 사용했기에 숫자로 따지면 20번 넘게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제자 앞에서 스무 번이나 능력을 사용했다고 말하기에는 영 모양이 빠졌다.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타인의 기억을 슬쩍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김재이도 허경일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내가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저도 이후에 몇 번 써봤거든요.”

“그랬나?”

“네. 실수였지만요. 교수님 말고는 딱 한 명에게만 사용했어요. 교수님까지 모두 합해서 세 번 사용했죠.”

“한 명에게 두 번이나 능력을 사용한 건가?”

“실수로 빼앗은 기억을 돌려줘야 했었어요.”


지식을 순순히 돌려주는 것도 가능했던 것인가. 허경일은 그 방법을 물어보려고 입을 뗐다가 다시 닫았다. 어차피 그 방법을 안다고 해서, 이미 악수를 해버린 사람들에게 지식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았다. 아내의 기억을 돌려달라며 메일을 보낸 교수에게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교수의 아내에 대한 지식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으니까. 이런 미스테리한 능력을 가진 후에 고작 세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니. 허경일은 김재이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자네를 포함하여 다섯 번 능력을 사용했네.”


김재이가 순간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아주 옅은 미소를 얼굴에 지어보였다. 


“다행이네요. 역시 많이 사용하시진 않으셨군요.”

“다행인 일인가.”

“그렇죠 교수님. 이건 말이죠….”


김재이가 자세를 낮추고 손을 가슴께에서 팔락팔락 흔들었다. 손동작에 맞추어 허경일이 김재이와 마찬가지로 자세를 낮춘 채 고개를 내밀었다. 김재이가 큼큼 하는 소리를 냈다. 사실은요. 은밀하고 낮은 목소리가 김재이 입에서 나왔다. 이 능력은…


“전파가 되거든요.”

“전파?”

“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사용하면, 상대방도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교수님이 저랑 악수한 이후에 다섯 번이나 능력을 쓸 수 있었던 게 말이 안되는 일이죠.”


허경일은 곰곰히 김재이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이 모든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식을 교환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전파되는 속성을 가진다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허경일은 김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경일이 악수를 한 사람은 25명이 넘었으니, 지금쯤 수백명, 아니 재수가 없으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허경일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대단한 기회라 생각한 능력이 개나소나 다 갖게 된다니,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저는 이 일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있어요.”


김재이가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김재이는 서둘러 가방 속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허경일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아이패드에 X, 과거에 트위터로 불렸던 SNS가 떠있었다. 이 일을 알리고 있다니. 그게 무슨. 허경일이 김재이 손에서 서둘러 아이패드를 낚아챘다. 김재이는 순간 깜짝 놀라 애벌레처럼 몸을 뻣뻣하게 폈다가 다시 몸을 움츠렸다. 허경일이 아이패드 속 스크롤을 내리자 김재이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보였다. 대부분 X에서 인기를 끈 글들에 댓글을 단 것들이었다.     


[지금 당장 막아야 합니다. 타인과의 악수를 삼가고, 소중하거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록해두십시오. 한 순간의 악수로 기억을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복사 붙여넣기 되어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지식 교환 같은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보였다. [악수를 하면 기억을 도둑맞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허경일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며 김재이가 쓴 X의 글들을 살펴보다가 계정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32명. 김재이가 만든 <기억절도를 조심 하세요>라는 닉네임을 가진 계정 팔로워 수였다. 허경일의 수업을 듣는 학생 수와 거의 비슷했다. 허경일은 다시 여유를 되찾으며 김재이를 보고 웃어보였다.


“무슨 글을 썼나 해서.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네.”


김재이가 불안한 눈초리로 허경일에게 아이패드를 받아 가슴에 들었다. 그들 사이에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김재이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입꼬리를 내린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마치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혹은 무언가 그들을 둘러싼 기시감을 돌아보기라도 하는 듯.


“교수님.”


이윽고 김재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큰 문제가 될 거예요.”

“…….”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점점 잊게될 거에요.”

“왜지?”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그런 일이니까요.”


허경일의 머릿속에 어제 확인한 교수의 메일이 떠올랐다. 교수도 그 메일에 자신과 아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렸다고 썼던 것 같았다.  


“그래서 뭘 해야 하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해요. 악수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이 능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주시고요. 물론 교수님도 능력을 안 쓰셔야겠죠.” 


“그들이 거절한다면?” 


“최대한 설득해봐야죠.” 


허경일은 김재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식 교환 능력을 많은 사람이 가지게 된다면 매우 곤란해지는 것은 맞을 것 같았다. 개인정보나, 지적재산권 같은 것이 세상엔 존재하니까. 그렇지만 허경일의 머릿속에는 곧 겨우 걷고 말하게 된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는 겨우 두 해를 살았고, 허경일네 집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아내와 허경일은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처지였다. 베이비시터라도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지식인의 손바닥 속으로 떨어지는 돈은 학문적 성과, 그리고 그 학문적 성과가 얼마나 유명해지는지에 따라 달려있었다.


허경일은 일주일에 몇 번 수업할 기회조차 없는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일,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스스로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일에 대해 곱씹었다. 아주 많이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허경일은 분명 능력을 얻고 막 몇 발자국을 뗀 상태였다. 마치 그의 작은 아이가 “아빠!”하고 종종걸음을 걸으며 다가오는 것처럼. 능력에 대해 폭로하는 것은 겨우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인생을 스스로의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넣는 일과 다름없었다. 


어차피 증거는 없으니까. 조금 더 치밀하게 능력을 사용하면 될 일이었다.  


고작 만으로 두 살인 아기가 뛰어나와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을 생각하자 허경일의 입이 주책 맞게 김재이 앞에서 씰룩거렸다.


“약속해 주시겠어요?”


김재이가 손을 내밀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편 채 김재이의 손이 뚱하게 허경일의 초점에 잡혔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는 일. 하!하는 웃음소리가 허경일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허경일은 그 손가락을 무시했다.


“유치하긴.”


민망함에 머리를 긁는 김재이를 보다가 허경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페를 나갔다. 김재이는 구태여 허경일을 붙잡지 않았다. 그의 뚱한 표정이 허경일의 뒤통수를 천천히 따라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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