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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08. 2024

07 감자탕집의 비밀 (1)


허경일은 김재이와 헤어진 후, 다시 혜화역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내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미래는 아이가 크면서 마주할 일들, 자신이 그 전까지 쌓아나가야 하는 명성과 부, 그리고 그것을 위한 지식 교환 능력 따위의 것들이었다. 김재이에게 능력이 전파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받은 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 협박도 아니라 약속을 하자니. 하!하는 웃음이 허경일의 입에서 다시 새어나왔다.


김재이가 수업시간에 느릿느릿 발을 끌면서 걷는 것을 봤던 순간이 떠올랐다. 김재이답군. 허경일은 이내 말끔히 김재이에 대한 생각을 비우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언젠가 이 능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능력을 통해 얻게 된 수많은 철학자에 대한 지식이 실은 오랜 학습을 통해 쌓아올려졌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했다. 아니면 자신이 대단한 천재가 맞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능력을 통해 남들의 지식을 슬쩍 도둑질한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도둑질.”


그가 혜화역 계단 하나를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도둑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가 몹시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도둑질에 불과했던 것인가? 허경일은 계단에 우뚝 서서 혼자만의 고민에 미끄러지고 있었다. 무가치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잽싸게 악수를 하고, 그 사람의 지식과 나의 무가치한 지식을 바꿔치기하는 능력. 자신이 지난 6개월간 했던 일들을 천천히 복기해보자 이전보다 더더욱 이 모든 일이 도둑질에 불과한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나와 악수한 교수들은 다 어떻게 되었지? 허경일은 뒤늦게 자신이 그것을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것은 몹시 껄끄러운 사실이었다. 


당분간은 이 능력을 사용하는 건 보류해야겠어. 한 발자국을 다시 디디며 허경일이 생각했다. 이 모든 능력이 수면 위로 등장할 시기가 머지않았다면, 더 많은 악수를 하는 것보다 그 미래에 잘 대비하는 것이 필요했으니까. 그는 다시 긴장을 풀기 위해 어깨를 높이 올렸다가 일부러 힘을 빼 툭 하고 내려놓았다. 허경일은 아직 젊고, 먹여 살려야하는 식구들이 있었다.


지식을 교환하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과 적당히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기도, 여전히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두 살 남짓한 허경일의 아이가 배를 밀며 기어 다니다가 걸어가는 법을 배운 것처럼.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도 천천히 그 모든 것을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생각에 빠진 허경일의 시야 멀리,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영역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얼마 전에도 구걸하는 사람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허경일은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지저분한 장발을 한 남자의 손앞까지 다가갔다. 그는 쪼그려 앉은 채 머리를 땅에 박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허경일은 지갑을 열었다. 마침 오만 원짜리 한 장에 지갑에 보였다. 허경일은 망설임 없이 오만 원을 꺼내 남자의 손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았기에. 도둑질이라는 기분 나쁜 단어를 밀쳐버리고 싶기라도 한 듯 허경일은 억지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엎드렸던 남자는 살짝 고개를 들더니 오만 원이라는 액수에 놀랐는지 입을 살짝 벌리고 허경일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허경일은 자신을 ‘사장님’이라 부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다. 대학 시간강사, 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빠졌다. 교수, 라고 하기에는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구걸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우스운 일인 것 같기도 했다. 허경일은 다시 표정을 가다듬은 후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허경일은 아주 간략하게 자신이 하는 일을 간추려 설명해보이고는 남자를 보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훌륭하십니다. 남자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입 안쪽에는 썩어서 검게 변한 어금니 몇 개가 보였다. 허경일은 남자의 썩은 이를 보고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기고자 발을 뗐다.  


“저는 고양시 근방에서 감자탕 집을 했었죠.”


한 발자국을 옮긴 허경일에게 남자가 눈치 없이 말을 덧붙였다. 허경일은 이제 혜화역 계단을 지나 개찰구 쪽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남자의 말을 무시할 만큼 충분히 모진 사람이 되지 못해 다시 발을 멈추었다.


“금주의 음식. TV 프로그램 아시나? 거기에도 나왔어요. <대박 맛집의 영업 비결> 이런 제목으로요.”

“들어본 것 같아요.”

“네. 장사가 잘 되어서 피크시간에는 웨이팅이 한 시간씩 있던 곳이었어요. 감자탕을 먹으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적지 않은 곳이었으니까요. 내 인생,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거라 추호도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나 그런 날도 오더군요.”


남자의 얼굴에 회한 같은 것이 묻어 조금 축축해졌다. 허경일은 추억에 빠져버린 이름 모를 남자의 이야기에 영혼 없이 반응했다. 빨리 집으로 가야지 퇴근시간이 겹치지 않을 텐데. 허경일은 남자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조금 초조했다. 그러나 이미 눈앞의 사람의 곤란한 얼굴은 알바가 아니었던 남자가 또 자신만의 추억을 허경일에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김성길. 그 새끼가 문제였어요.” 

“그랬군요.”

“제 동업자였습니다. 저는 요리 말고 경영은 잘 몰랐어요. 김성길 그 새끼가 사업을 확장하자고 하더군요. 감자탕을 밀키트로 만들어 배달을 시작해야 한다면서요. 프랜차이즈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었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가봐야 합니다.”

“그 새끼에게 들어간 돈이 자그마치 8억입니다. 8억. 밀키트도 감자탕도 프랜차이즈도 다 시작도 못해봤습니다. 그 새끼가 돈을 들고 날랐으니까요.”

“…….” 

“경찰과 법은 무능하더군요. 김성길을 잡지도 못했습니다. 해외로 도피해 버린지 오래였으니까요. 김성길에게 돈을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구걸하는 처지가 된 거고.”


흔하디 흔한 비극이었다. 허경일은 일부러 팔을 들어 시계를 보는 제스쳐를 취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걸을 하게 되기까지 경위를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경일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듣다가 구두로 지하철 계단을 톡 톡 하고 건드렸다. 그제야 남자는 허경일의 굳은 표정을 발견한 것인지 일순간 말을 꾹 그쳤다. 그의 시야에 톡 톡 하는 허경일의 갈색 구두가 보였던 것이다.


시종일관 감자탕 집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던 그가 머리를 치켜올려 허경일을 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지저분하게 긴 수염과 눈썹 사이로, 어쩐지 조금 기민한 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허경일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건 궁지에 몰린 이후에도 긍지만은 잃지않은 어떤 야생동물의 눈동자 같아보였다. 허경일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어쩐지 등에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가 상체를 일으킨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무어라 허경일이 반응하기도 전, 남자는 마치 오래 전부터 그런 몸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튀어올랐다. 제멋대로 자라고 까만 떼가 군데군데 박힌 남자의 손톱이 눈에 보였다. 그 손톱이 돋아있는 손이 덥석 하고 허경일의 손을 잡았다. 허경일은 남자의 기민한 움직임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붙잡을 수 있었다. 허경일은 인상을 찌푸린 채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데 실패한 까닭이었다. 허경일은 남자의 더러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 후 손을 놓았다. 드디어 남자에게서 벗어난 허경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허공으로 발을 뻗었다.


그 순간, 아주 이질적이지만 아주 익숙한 현상이 허경일의 몸을 감싸쥐었다. 허경일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감자탕. 감자탕이 허경일의 머리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고기를 삶은 후 꼭 똑같은 시간만큼 뜸을 들여야 감자탕의 고기가 보드라워질 수 있었다. 들깨가루는 꼭 강원도 지역의 들깨가루를 써야 하고, 고기는 귀찮더라도 매일 아침에 직접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맛집의 비결은 꼼꼼함과 성실함에서 나올 수 있었다. 김성길은 감자탕이 끓어오르는 옆에 서 있다가 가장 먼저 간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동료였다. 그런 그가 돈을 가지고 튀었다. “없는 번호입니다.”김성길에게 수차례 통화시도를 하다가 결국에 그런 수화음을 들었다. 그 짧은 통화 안내 멘트에 남자는 무너졌다. 끓고 있는 감자탕 앞에서 그는 쪼그려 앉아 팔로 얼굴을 감쌌다. 이미 그의 아내와 자식은 그를 떠난 상태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눈앞에서 끓고 있는 빌어먹을 감자탕밖에 없었다.


허경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의 기억이 너무나도 비극적인 기억이었던 탓이다. 하마터면 허경일은 손을 올려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닦을 뻔 했다. 그의 정신을 깨운 것은 남자의 또 다른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지식을 훔친 남자는 아주 기민하게, 허경일을 스쳐 지하철 바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허경일은 그의 꽁무니를 보고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모든 익숙한 기시감이 허경일의 예측과 동일하다면, 지금 혜화역 바깥으로 뛰어오르는 남자는 허경일의 지식-무엇인지 이미 알 도리가 없어졌지만-을 훔쳐 달아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허경일은 덩달아 뛰어올라 가까스로 남자의 때탄 항공점퍼 끝자락을 거머쥐었다.


“이 도둑놈!”


허경일이 항공점퍼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몸이 기우뚱 하며 젖혀졌다. 막 혜화역 지하철을 빠져나가려던 남자가 허우적거리다 바닥에 뒤로 쳐박혔다. 허경일도 남자의 위로 쓰러질뻔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곧바로, 허경일이 남자의 위로 올라타서 남자의 멱살을 흔들었다.


“이 도둑놈! 뭘 훔친 건지 당장 말해!”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허경일의 말을 무시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는 일부러 지나다니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허경일과 남자가 뒤엉켜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뭘 훔친 건지 빨리 말해!” 

“아이고, 교수가 사람 잡는다!” 

“빨리 말하라고!”

“살려주세요, 아무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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