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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05. 2024

04 아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2)


교수는 강의장을 나가 사무실로 돌아갔다. 김정서. 교수는 인터넷 창에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김정서 이름의 SNS 계정 여러 개와 김정서라는 인물에 대한 뉴스 인터뷰 여러개가 보였지만 모두 기억속의 얼굴과 일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교수는 인터넷 페이지를 한참 둘러보다가 두 번째 인물인 허경일을 검색창에 써 넣었다.


한기대 허경일. S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자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밟은 인물. 알튀세르 전공자. 최근 들어 알튀세르 이외에도 여러 철학자들에 대한 논문을 투고한 것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많은 강사인건가? 교수는 허경일의 논문 몇 편을 프린트하여 읽었다. 알튀세르에 대한 논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논문은 꽤나 심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심지어 해당 철학자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도 몇몇 논문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내 대학 출신 중 그는 손꼽히는 천재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인재가 고작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니. 학계의 학연은 무시  못하는 것인가. 그는 혀를 끌끌 차다가 그의 메일 주소를 찾았다. 허경일의 논문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고민한 끝에 교수는 겨우 그에게 메일을 보낸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교수가 메일을 모두 작성하고 전송하기 버튼을 눌렀을 때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어있었다. 그제야 교수는 무음으로 맞추어놓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13통. 아내였다.


교수는 거의 뛰듯이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집은 어두웠다. 교수는 조심스럽게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내였다. 교수의 아내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교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늦게 귀가한 것을 사과하기 위해 입을 뗐다. 그 순간, 신발장 천장등에 비친 아내의 어스름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쪼그려 앉아 얼굴을 두 팔과 다리에 파묻고 울고있었다. 교수는 신발장 앞에서 얼어붙었다.


“왜 식당에 오지 않았어?”


교수의 아내가 코를 훌쩍거렸다. 이윽고 교수의 아내가 몸을 일으켜 거실 불을 켰다. 교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내가 단 하루 만에 몹시 늙어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5년 정도는. 뭉텅이로 난 흰머리와 깊게 파인 눈주름이 아내의 원망어린 눈동자보다 교수의 눈을 더 빨리 사로잡았다. 교수의 아내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두 시간을 기다렸어.” 


쭈뼛쭈뼛 교수가 아내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자세하게 더 보고 싶어서였다.


“무슨 소리지?” 

“결혼기념일 선물 대신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잖아.” 


내가 그런 약속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교수는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나랑 한 약속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거야?” 


교수는 미안한 마음에 덥석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 살짝 주름진 손의 가죽이 교수의 손을 스쳤다. 그 감각이 생경해서 교수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며 손을 뺄 뻔 했으나 겨우 가슴을 눌러 태연한 척 표정을 지어보였다. 교수의 아내가 교수의 손을 뿌리치고 손등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나를 이제 사랑하지 않아? 교수는 그 이야기에 거세게 고개를 흔들어보였지만, 교수의 아내는 절망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처럼 서 있다가 콧잔등을 두어 번 찡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냉전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교수는 왜 자신이 아내와의 약속을 잊어버렸는지, 왜 아내는 갑자기 늙어버렸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갑자기 늙은 만큼, 교수의 아내는 예전과 미묘하게 많은 것이 달랐다. 교수의 아내는 아침마다 알 수 없는 약을 먹었고, 더 이상 김치를 먹지 않았다. 양말을 신고 침대 위에 절대 오르지 않았던 아내이지만, 이따금 양말을 신은 채 침대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교수가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집안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똑같이 기울어진 것처럼 몸을 젖히고 있는 아내와 자신의 사진, 못보던 아내의 속옷들, 아내의 요가 복까지. 그것들은 모두 교수의 기억에 없었다. 아내에 대한 기억 일부,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5년 정도의 기억이 교수의 머릿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저자 이름에 아내 이름이 박혀있는 소설책 몇 권을 책장에서 발견한 날, 마침내 교수는 이 모든 일들이 착각이 아닌 자신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아직도 화가 나있다는 것을 알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봐. 미친 소리 같겠지만.” 


교수는 천천히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요가복도, 속옷도, 피사의 사탑도, 김치도, 약도, 양말을 신고 침대에 오르는 아내도 기억에 없다는 이야기가 장황하게 교수와 아내의 앞에 펼쳐졌다. 아내는 교수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 뜨개질을 하고 있다가 점점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장황해지자 뜨개질을 내려놨다. 아내의 미간에 심각한 주름 몇 개가 생겼다. 그 표정만큼은 교수가 기억하는 5년 전의 아내의 표정과 똑같았다. 아내는 늘 교수를 촌스러운 사람이라 매도했지만, 그 촌스러운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교수는 내친김에 자신의 가설 몇 가지도 설명했다.


“이 모든 일은 저번 주에 간 헤겔 철학 학술회에서 허경일이라는 시간강사와 악수를 한 후에 시작되었어. 당신 혹시 김정서라는 학생 아나?” 

“모르는데.” 

“맞지. 당신이 모른다면 나도 몰라야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김정서라는 학생이 머리에 떠오르더군. 허경일 강사와의 악수가 끝난 이후에. 김정서라는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지낸 것처럼. 하지만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나는 당신과 만난 이후에 다른 사람과 노닥거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불가능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설명하기 위해 침을 삼켰다. 어느새 아내는 턱을 손으로 괸 채 교수의 표정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악수를 하는 순간. 나와 허경일이라는 강사의 지식이 바뀐 것 같아.”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교수는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아내가 눈앞에서 눈알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빠르게 여러 번 돌렸다. 그러더니 아주 느리게 슬로우 모션이 걸린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미간에는 심각한 주름들이 머무른 상태였다. 교수는 아내의 표정을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의 표정이라 해석했다. 기억이 나지 않은 5년간 아내가 좀 더 이해심 넘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교수는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듯 끄덕이는 아내를 보니 코가 찡했다. 시간과 믿음의 무게는 그렇게나 아내와 자신의 사이에 두터웠던 것이다. 몇 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이후에도. 역시 아내와 결혼하기로 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맞았다. 교수는 그 생각을 하며 옅게 웃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 다음날 100문항이 넘는 치매 자가 검사 설문지 종이를 가지고 나타났다.


“조발성 치매는 40대에도 온대.” 


아내가 식탁 위에 올라간 설문지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도움 없이는 근거리 외출도 어렵다> 아내가 톡톡 두드린 검지 아래에 글자들이 깔려있었다. 이런 바보같은. 교수는 그제야 아내가 교수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것은 교수의 이야기를 모두 믿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는 그저 교수가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치매가 아니야.” 

“아니겠지. 그렇지만 검사는 해봐야지.” 

“왜 그래야하지?” 

“내가 걱정되니까.”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해야해.” 


교수가 입을 다물었다. 아내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에 힘을 주고 있었다. 교수의 기억 속 존재하는 아내의 모습 중 가장 강경한 모습인 것 같았다. 교수는 한숨을 쉬고 강경한 아내의 태도에 말문이 막힌 채 꾸역꾸역 바보 같은 설문지를 풀기 시작했다. 아내는 눈을 희번득 하게 뜨고 그의 손가락에 들린 펜이 어떤 답을 체크하고 있는지 감시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가 드디어 펜을 내려놓았다. 아내는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그의 손에 깔린 설문지를 낚아챈 후 설문지 답변을 채점하기 시작했다. 스무 개 쯤 치매 가능성 척도가 낮다는 답과 교수의 답이 일치하는 것을 본 아내는 고개를 한참이나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교수는 아내의 혼잣말을 들으며 일단 자신에게 일어난 기묘한 일에 대해 아내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유보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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