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한 가지씩 얻은 게 있습니다. 저는 수동타자기라는 아날로그 기계에 빠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고 아이는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얻었습니다.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던 시기 아이가 너무 심심할까 봐 페파피그 대본집 세트와 페파피그 에피소드 음원MP3파일을 넣은 USB와 예쁜 라디오를 선물해 주었고 아이는 맘에 들었는지 음원을 틀어놓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영어 시작 후 늘어난 음원 MP3 (22년에 듣던 것들)
처음에는 돼지들이 킁킁 거리는 소리가 재미있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킁킁 거리는 소리를 따라 하고 웃느라 하루 종일 까르르, 킁킁 거리는 통에 저는 정신 사나웠던 기억입니다. 알아듣지 못해도 재미있나 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다음날 눈 뜨자마자 페파피그 음원을 틀어두고 하루 종일 끄지 않았습니다. 집중해서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놀 때도 동화책을 읽고 있을 때도 끄지 않길래 책 읽는데 방해되지 않아? 하고 껐더니 다시 키라고 난리를 치길래 다시 켜줬습니다.
그날부터 아이는 잠들 때까지 페파피그 음원을 켜두고 생활했습니다. 잠이 든 걸 확인하면 제가 라디오를 껐는데 우리 집은 그 시간만 고요했습니다. 아침잠도 없는 아이가 새벽같이 일어나자마자 침대 옆에 둔 라디오를 켰기 때문에 "I'm Peppa Pig 킁킁! This is my little brother George 킁킁! " 하는 소리가 모닝콜이 되었습니다.
일하느라 거의 매번 새벽에 잠드는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돼지 킁킁 소리와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이 괴로워 왜 저런 것을 사줬냐며 저를 원망했지만 남편도 저도 곧 집안에 아기 돼지 소리가 들리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아이는 하루에 최소 12시간 이상을 페파피그 에피소드를 (BGM 삼아) 틀어놓았고배경음악처럼 깔아 뒀던 음원을 아이가 정말 제대로 듣는 것 같고 심지어 알아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음원을 들은 지 한 달 반, 두 달 정도? 페파피그의 대사들을 따라 하기도 하고 제게 등장인물의 행동이 웃기다고 얘기해 주길래 이 이야기는 제목이 뭔지 알아? 물으니 바로 이야기해 줍니다. 혹시 책 찾아올 수 있어? 했더니 책도 바로 찾아옵니다.
어라! 얘가 이거 대충 알아듣는 모양인데? 갑자기 킁킁거리던 돼지소리가 아름다운 세레나데로 들릴만큼 사랑스러워졌습니다!
그 뒤로 저는 매일 일정 시간 넷플릭스로 페파피그를 원어로 보여주었고 '스마트 파닉스'라는 문제집 세트를 사서 조심스레 같이 풀었습니다.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면 몇 달 쉬었다가 다시 시도해 보았습니다. 대문자와 소문자 모양이 다른 것을 헷갈려했을 때 같이 타자기로 타이핑을 하면서 대, 소문자를 놀이처럼 익혔습니다.
그리고 같이 책을 만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표지는 아이가 그리고 제목도 따라 써보게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희 아이가 스스로 매일 배경음악처럼 영어 음원을 듣고 두어 달만에 귀가 트인 것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저 어릴 때 'AFKN 6개월 틀어두고 보면 영어 잘한다'는 말이 이런 거였나 보다 싶었습니다.
'관심 있는 이야기는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아이구나'를 파악한 뒤로 저는 아이의 덕질을 무조건 응원했습니다!!
디즈니 Cars 시리즈, My little pony라는 유니콘 말 시리즈, 겨울왕국 등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생기면 음원과 대본을 구해 페파피그 때 했던 것처럼 책 만들기를 했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페파피그 여러 에피소드를 외워서 말하게 되고 책을 만들며 익힌 단어들을 점점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후의 귀는 쉽게 열리고 반복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또 보고 싶어 하면 질릴 때까지 보게 해 주세요! 같은 걸 또 볼 수 있는 아이가 영어 학습하기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입니다.
최근 배우 한가인 님의 두 아이가 영재원에 입학할 만큼 아주 똑똑하다는 것을 연예 뉴스와 배우님 유튜브를 보고 알았습니다. 한가인 배우님의 자녀도 영어를 집에서 스스로 잘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영어음원이 배경음악처럼 계속 틀어져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