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갖고 돈을 모으게 되면서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을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며 부족했던 추억을 채웠는데 두 아이의 행복과 육아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나의 도장 깨기는 잠시 잊게 되었다.
2020년 11월
내 생일을 앞두고 나는 무조건 타자기를 하나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오랜만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았기 때문에 나는 타자기를 많이 좋아하게 될 게 분명했다.
설레는 맘으로 '타자기'를 검색했더니 '타자기 사용자 모임'이라는 타자기 카페가 하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타자기 사용자 모임 이라니! 카페이름만 봐도 두근두근 했다.
열심히 게시글을 볼 수록눈만 높아져 안 되겠다일단 하나 먼저 사보자! 하는 마음으로 중고나라에서 택배 가능한 하얀색 영문타자기를 구입했다. 갑자기 왜 타자기를 샀냐 물으면 '영어 공부하려고'라는 비루한 변명을 해야지 생각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 속 나의 첫 타자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크고 묵은 먼지냄새가 나서 실망했다. 타자기 카페에서 본 대로 케이스를 열어보니 내부에 먼지와 머리카락 등등 지저분한 것들이 많아 물티슈와 면봉, 알코올스압 등으로 보이는 곳은 최대한 열심히 닦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새 리본(타자기용 잉크)을 교체했다. 리본 교체 방법은 유튜브에서 타자기 리본 교체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했는데이런 간단한 것도 처음 해보니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지저분한 타자기를 닦으며 생각보다 큰 크기에 실망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드디어 내 타자기를 맘껏 타이핑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흥분만 남았다. 어떤 글을 제일 먼저 타이핑해 볼까!!!!
타자기 각 부분의 명칭과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나는 서둘러 첫 타이핑을 준비했다. 빨리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내가 글쇠를 누르면 활자가 움직이며 종이에 바로 인쇄가 되던 그 순간을, 그때의 설렘을 다시 만끽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