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으며, 피해자의 이름은 연합뉴스의 22년 9월 11일 기사 "[10년전N] 60년 통틀어 남자·여자 가장 인기있던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왔음을 알립니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다양한 학교폭력을 보여준다. 물리적 폭행도 있고, 성폭행도 있고, 모욕도 있다. 한 인간을 파괴하는 여러 방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폭력적인 콘텐츠였다고 생각한다.
은주는 학교폭력 피해자면서 동시에 성폭력 피해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은주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은주의 엄마는 화가 많이 나보였고, 은주는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미성년자 피해자를 만날 때 가장 큰 원칙은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 한 아이와 1:1로 만나는 것이다. 물론 부모들은 싫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만약 본인이 피해자라면 엄마나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솔직하고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제 가슴을 이렇게 만졌어요, 제 성기에 이렇게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남이 가족보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은주는 외로운 아이였다. 집에서도 혼자고 학교에서도 혼자였다. 그게 힘들어서 학교를 옮겨도 봤다. 은주에게 친구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중요한 존재였다. 은주의 전학은 은주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은주에게는 장래희망이 있었고 나름 열심히 찾은,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학교로 전학을 결정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재밌었고 은주에게는 곧 남자친구도 생겼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은주는 말했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 은주와 유달리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남자애가 생겼다.
시작은 아주 아주 은근하다. 너무 은근해서 눈치도 챌 수 없을 정도로. 즐겁게 웃으며 은주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하고, 어깨를 때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정한 느낌으로 팔을 만지기도 한다. 은주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거부 의사를 밝히자 돌아온 말은, '왜 나를 성범죄자로 만드냐'는 남자애의 원망 섞인 호소였다.
나는 그냥 네가 좋았던 거뿐인데 너 때문에 이상한 사람이 돼서 나는 친구도 못 만들겠다는 말에 은주는 '얼척이 없었다'고 했다.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별것도 아닌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 그 다음은 엄마였다. 엄마도 이렇고 저래서 힘들어.
은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던 엄마가 자리를 비우고 은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좀 괜찮니? 그때부터 은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범죄도 물론이지만 주변이 너무 은주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일들에 대항에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려면 결국 1인분 이상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잘하고 있고, 주변에서 나를 도와줄 거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확신에서 오는 힘 말이다.
가족을 없애줘야 할 느낌이 드는 아이들이 있다. 가족이 아이를 고립시키고, 그 아이들은 귀신 같이 티가 난다. 사랑받고 자란 애들이 티가 나듯이. 꼭 이런 아이들이 나를 자주 만난다.
잘 지내다가 너 또 왜 그러니. 은주는 엄마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은주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전화를
받지 않는 피해자에게는 문자 이상으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문자 답장도 없으면 조용히 안녕을 빈다. 피해자들에게 나의 존재도 어떤 식으로든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나도 고통의 과정 중 일부니까. 그래서 은주를 어떤 식으로든 만나지 않길 바랐다. 간혹 피해자가 범죄자가 되어서 나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 부고를 접할 때도 있다.
1년쯤 지난 후 은주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일은 참 슬픈 일이었다. 은주는 자살을 시도했고, 실패한 덕분에 보호자에게 인계됐다. 은주의 어머니가 내게
다시 연락해 왔을 때 나는 단호해질 것을 요구했다. 여전히 자신의 사정이 많은 은주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지금 생사의 고비에 있음을,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회피와 변명으로 점철된 은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화를 냈다. 절망스러웠다.
은주에게 이 부모가 정말 답이고 최선인가. ‘더글로리’ 속 동은이도 엄마에 대한 기대를 그래도 놓지 않았는데 은주는 어떨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국가가 부모가 돼야 하는가? 그럼 국가가 너무 큰데? 아니 국가는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부터도 사람을 잘 기를 수 있나?
지금도 절망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 ‘조금만 참아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 몇 살이지, 고등학생이니, 금방 어른되겠네. 그러면 환하게 웃는다. 괜히 알바하면서 돈 벌려고도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네 힘으로 너를 먹여 살리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할 때에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부모가 알면 싫어할 말을 해준다. 탈출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조건 만남을 하면서 돈과 애정을 버는 아이들이 있다. 왜 조건만남을 하게 됐는지 보면 신체 정서적 학대를 받았을 때가 꽤 있다.
이때도 이렇게 해서 돈 버는 건 너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조금만 참아보자. 사고 싶은 거 엄청 많지 아는데 조금만 덜 사고 그 돈을 모으면 성인이 됐을 때 조금 더 빨리 나갈 수 있어. 대학 갔을 때 자취방 구할 수 있잖아! 그럼 웃는다. 대학 가면 나가서 살 수 있을 걸? 하면 갑자기 대학 갈래요 하는 아이들도 있다. 절망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뭔갈 선택한 아이들의 손끝만 볼 게 아니라 등 뒤를 봐야 한다. 우린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