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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May 19. 2023

홈 스윗 홈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으며, 피해자의 이름은 연합뉴스의 22년 9월 11일 기사 "[10년전N] 60년 통틀어 남자·여자 가장 인기있던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왔음을 알립니다.


이제는 음악 교과 과정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가곡을 배웠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 뿐이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곡은 어쨌든 내 집이 최고다!는 것이 주제로 보인다. '작은 내 집'이라는 가사가 좀 슬프긴 하지만.


집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강간 피해를 당한 최영수씨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늘 그렇듯 피해자를 만날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을 꺼냈다. 잠은 잘 주무세요? 실은 잘 못 자고 있을 것을 안다. 식사는요? 이것도 그렇고.


피해자를 돕기 시작할 때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킹에도 좋다. '날씨가 좋네요' 같은 기능이 있달까.


자는데 자는 것 같지가 않아요.


최영수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수면장애를 호소한다. 자려고 누웠으나 잠에 들기 어려워하는 문제나, 선잠을 자는 것, 악몽을 꾸는 것, 놀라면서 깨는 것, 수면 시간의 단축 등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최영수씨도 이 중 하나를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보면 제가 싱크대에 기대서 자고 있어요.


싱크대라니. 이건 또 뭐지, 몽유병인가, 해리장애는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최영수씨는 쾡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잠이 오지 않아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잠을 자는데 침대에서 자더라도 일어나보면 싱크대에 기대서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며칠을 반복되다 보니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종일 피곤한데 잠은 또 잘 수가 없다고 하였다. 듣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가정폭력에서도 '내 집'은 범죄현장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범죄현장일 때가 있다. 최영수씨도 그랬다. 최영수씨는 자신의 집에서 피해를 당했다. 자신의 집, 자신의 침대 위에서.


가해자는 술에 취한 최영수씨를 강간했고 다음 날 신고한 최영수씨 덕분에 구속되었다. 범죄는 끝났지만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최영수씨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범죄 당시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래도 출근을 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기에 소주를 먹는다고 했고 싱크대 구석에서 깨어난다고 했다.


집에 들어서면 침대가 보이고 그때 생각이 나요.


최영수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집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피해자가 어떤 생활을 하게 되는가를 알게 되었다. 내 집은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내가 속옷만 입고 춤을 춰도 괜찮은 공간이어야 한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그런 곳.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는대로 이사를 갈 계획이라는 최영수씨에게 임시숙소나 쉼터를 가시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거기도 불편해요.


아무리 좋은 쉼터를 피해자에게 제공해준다한들 '집'이란 공간만큼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거주지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범죄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라니. 지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범죄피해를 입고 주거지가 아닌 곳으로 피해야 할 경우에 경찰의 임시숙소, 특정시설, 그외 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시설, 쉼터, 숙소일 뿐이다.


즐거운 나의 집. 홈 스윗 홈.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퇴근 후 집에 돌아갈 때마다 생각한다. 내 집이 최고다. 안전함을 전제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 '즐거운 나의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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