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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May 29. 2023

호저의 가시

* 본 글은 범죄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뉴스젤리'의 "데이터로 보는 시대별 이름 트렌드, 요즘 핫한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온 것입니다.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나를 덮어놓고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심지어 우리 회사 사람들도 피해자와 내가 대신 소통해 주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 역시 피해와 회복 과정의 일부이며 그들의 피해를 상기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른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가 와서 상담을 원하는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니 상담을 원하는데 어렵다는 건 뭐람. 노트와 펜을 챙겨 상담실로 향했다. 피해자를 보자마자 왜 어렵다는 것인지 바로 느낌이 왔다.


경계하는 눈빛, 잔뜩 예민해진 것 같은 태도. 전 연인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은정씨는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명함을 전하고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이런 일을 당한 게 너무 창피하네요. 제가 그래도 업계에서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은정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가끔 피해자들 중에서 유명인을 보곤 한다. 범죄피해에 지위고하가 어딨는가. 아이돌도 젠더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정치인도 협박을 당한다. 피해자들 중 자신이 피해를 당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범죄피해는 누구든 당하면 힘들다. 당연한 것인데 그게 참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은정씨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은정씨도 내내 공격적이었다.


뭘 해주실 수 있죠? 제가 죽으면요? 그게 다예요?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세요? 저 이런 데 올 사람 아니에요.


네, 알죠, 맞아요. 이 말만 두 시간 정도를 반복해야 했다. 너무 무서운데 동시에 약해 보이거나 멍청해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내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드리기였다. 한참 뒤 은정씨가 불현듯 말을 멈췄다. 지금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은정씨, 말 되게 빨리 하시는 거 같은데 숨 안 차세요?  

아 그래요?

네, 숨차 보이세요 심호흡 한 번 할까요 우리. 자 코로 깊게 들이쉬고 끝까지 뱉고. 세 번만 하죠.

습- 후- 습- 후.

이제 우리 집에 못 들어가는 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볼까요?


은정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집도, 직장도 무섭고 너무 창피해요.


호저를 생각한다. 호저를 검색하면 꼭 같이 나오는 사진이 가시가 잔뜩 박힌 강아지들이다. 호저를 알게 된 건 '수의사 오클리:유콘의 수호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거기에서 호저에 대한 설명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호저가 가시를 발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호저는 가시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어요. 사람들은 자기 개가 호저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호저는 개를 쫓아가서 입에 달려들지 않아요. 개가 호저를 쫓아가 공격한 거예요.'


오 나의 피해자들. 나에게 강압적이거나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피해자들은 꼭 그걸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상담실에서 가장 어려운 피해자들은 날카로운 피해자들이다. 간혹 억울하기도 하다. 저는 님의 편이라고요! 호소하고 싶고 싸우고도 싶어 진다. 그럼 뭐 하는가. 나는 또 호저를 공격하는 개가 될 뿐인 걸. '진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호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지만 딱 한 번 두 시간 정도 투자하면 충분히 가치는 있다.


나 역시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싸워야 할 때 호저가 되곤 한다. 모르는 걸 들켜선 안 돼! 내가 약한 걸 들켜선 안 돼! 그럼 손해를 볼 거야! 이런 생각들이 내 엉덩이에 가시가 콕콕 생기게 한다. 가끔은 가시 박힌 개가 되어도 어떤가. 호저는 생사의 기로에 있는데!


호저가 된 피해자들에게 가장 좋은 지원은 안전감이다. 여기는, 지금은 안전하고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래서 임시숙소와 상담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상담실은 여기서는 더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줘야 하고, 임시숙소는 여기서는 내가 뭘 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그런 곳을 찾고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야 한다.


은정씨는 임시숙소에 일주일을 있었다. 집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주차된 검은색 세단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고, 30대로 보이는 키 175 정도의 남성이 집 근처에 보이면 그녀를 얼게 했다. 호화롭지는 않아도 아무도 모르는 임시숙소에서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지냈을까?


이 일을 하면서 나를 움직이는 건,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것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어땠을까? 그럼 좀 내려놓지 않았을까? 근데 어쩌다 한 번씩 되는 걸 본다. 상담이든, 지원이든, 호저든 뭐든.

               

도박, 로또, 복권에 중독되는 이유는 한 번씩 따는데 언제 딸지 모른다는 점이다. 다음엔 될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우리를 매주 복권방으로 이끈다. 100명을 돕는다 치면, 정말 한 번씩 나를 "행복하게 하는 피해자"를 만난다. 너무 쿵작이 잘 맞아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치를 해줄 수 있고 해주고 싶게 하는 피해자.


반면에 많은 경우는 "따뜻한 마음으로 갔다가 뜨겁게 데이는" 피해자다. 열심히 지원했는데 부족하다며 화를 내거나, 경제적 지원만 받고 잠수를 타버리거나, 엄청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그 취지와 다르게 지원을 사용한다든지 등등. 매일 당첨되지 않은 로또를 보는 마음으로 한숨이 푹푹 나오게 하지만 오늘도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 고객님이니까.


https://youtu.be/5NjxaNjbf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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