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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12. 2021

시어머니의 김치를 거절했더니.

어머님, 김치 주지 마세요.

평화로운 토요일 오전. 우리 부부는 잠옷바람에 Adele의 신곡 'Easy on me'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남편의 휴대폰이 붕붕 울렸다.

"으잉? 토요일인데 누가 전화한 거지?"

불청객 같은 진동소리에 우리 부부의 시선이 남편의 휴대폰에 쏠렸다.


"어? 엄마네..."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응, 아들아~. 지난번에 준 김치 다 먹었지? 잠깐 와서 김치 가져가라."

 남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나도 남편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엄마 오늘은 피곤한데... 다음 주에 가져갈게요."

남편은 단박에 시어머니의 김치를 거절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서운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잠깐, 잠깐이면 되잖아. 며느리는 안 와도 돼. 그냥 너만 와서 후딱 김치통만 가져가. 너네 주려고 다 준비해놨어."


남편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엄마, 나 어제 늦게까지 회식했어요. 너무 피곤해요. 다음 주에 갈게요"

"여기 김치 냉장고가 작아서 며칠 보관할 데도 없는데 어쩌지... 그럼 내일 올래?"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남편은 난처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하지만 남편이 내뱉은 말은 "네, 엄마. 내일 갈게요."이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내일 나 혼자 다녀올게. 넌 집에 있어."


하지만 남편만 혼자 시댁에 다녀오도록 할 수 없었다. 

"아냐. 내일 나도 갈래. 근데 우리는 김치 사 먹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오빠도 사 먹는 게 더 맛있댔잖아. 우리 때문에 김장하신다는 게 마음에 걸려. 연세도 많으시잖아... 시누들도 김치는 안 가져간다며."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를 항상 애지중지 하셨다. 하지만 시누들도 건드리지 않는 시어머니의 김치를 며느리가 잔뜩 가져갈 순 없었다. 솔직히 김치를 핑계로 시댁에 자주 들락날락거려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 김치를 사 먹겠다고 선언하고 시어머니의 김치와 이별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우리는 다시 평화롭고 잔잔한 토요일 오후로 돌아왔다. 남편이 좋아하는 재즈를 틀어놓고 각자의 취미를 즐겼다. 나는 글을 썼고, 남편은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런데 또다시 남편의 휴대폰이 붕붕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누구야?"

"어? 아빠네..."

시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들아~, 집 앞에 김치 들고 왔다. 너만 후딱 나오너라."

집 앞에 오셨다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떡해! 어떡해! 나 잠옷 차림인데... "

"나만 나갔다 올게. 집에 있어."

"나 지금 옷 갈아입을게. 아버님 그냥 보내지 말고 집에 들어오시라고 해. 알았지?"

"집 안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데 어떻게 모시고와. 김치만 들고 올게."

나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집안에 뒹굴고 있는 쓰레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싱크대에는 그릇까지 치울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때 현관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망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 앞에 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남편 혼자 덩그러니 김치통을 들고 서있었다.

"아, 아버님은? 아버님 어디 계셔?"

"그냥 가셨어. 약속 있다고 가시던데?"

"뭐? 그냥 가시게 하면 어떡해!"


나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면서,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다시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이튿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주말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부모 마음이야. 연세도 많으신데 김치 담그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들이 피곤하다고 하니까 집까지 김치를 가져오시다니... 마음이 너무 짠하네. 집 안으로 모셔오시지 그랬어?"

"그러려고 했어. 근데 갑작스럽게 집 앞에 오셔서 김치 가져가라고 하시니 경황이 없었어. 게다가 선약이 있다고 얼른 떠나셨다는데?"

"에고, 미리 전화하고 찾아가면 며느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얼른 김치만 주고 가셨구나...."


엄마는 가슴이 먹먹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엄... 마? 울어? 왜 그래?"

"자식은 부모 마음을 몰라. 사돈 어르신께서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참 지혜롭고 자애로우신 분들이야. 그러니까 잘해 드려... 알았지?"

"그렇구나... 내가 시어머니의 마음을 몰랐네."


나는 전화를 끊고 냉장고 앞에 있던 시판 김치를 밀어 넣고 시어머니의 김치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릇에 담아 쌀밥과 함께 먹었다. 시어머니의 김치 앞에서 눈물이 핑돌았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시댁에 들르기로 했다. 

'시부모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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