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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r 01. 2021

내가 퇴직 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

세상의 모든 걱정 쟁이를 위하여.

1. 걱정을 달고 살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하고 걱정이 많았다. 초등학교 생떼에도 걱정이 많아서 학교 숙제를 잘했는지, 가방에 잘 넣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친구관계 걱정도 많았다. '소풍날 같이 갈 짝꿍이 없으면 어떡하나.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같이 하교할 친구가 없으면 창피한데 어쩌지'와 같은 잔걱정이 넘쳤다. 다행히 나의 이런 걱정 많은 성격은 나를 바르고 성실한 학생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걱정이 많으면 쉽게 긴장하게 되는 법. 수능이나 임용고시와 같은 중요한 시험을 망쳤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만약 그때 더 시험을 잘 봤으면 내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까. 아마 크게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오직 교사가 되어야겠다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그때 약대에 지원했어야 했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약사는 언제든지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고, 휴직과 복직이 자유로우며, 정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내 성격과 잘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된 후 약사로 진로를 바꿔 볼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첫 학교 우리 반 아이들이 천사같이 예뻐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결혼 후에는 오전 파트타임만 뛰는 약사가 되려고 6년 약대에 다시 도전한다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남편의 조언에 따라 현 상황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든든한 직장도 있겠다. 결혼도 했겠다. 가족 모두 건강하니 내 인생은 그저 핑크빛일 줄만 알았다.







2. 걱정은 끝까지 나를 따라 오더라.


  곧 30대가 된 나의 주된 걱정은 '미래에 대한 걱정, 퇴직 후 인생'이 되었다. 공무원이면 연금도 나오는데 무엇이 걱정이겠느냐 싶겠지만, 공무원연금법이 계속 개정되고 있으니 연금만 믿고 살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퇴직 후에도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셨다. 이제는 자유롭게 푹 쉬시라고 말씀드렸지만 퇴직 후에 일거리가 없어 심심하셨다. 어머니께서도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우울하고 답답하다고 하셨다. 지금으로써는 '정년퇴직'타이틀을 단 사람들이 부럽기만 한데 나도 그때가 되면 다시 일하고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넌 퇴직 후에 뭘 할 거냐?'


  초등교사 출신의 60세 할머니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강사를 생각해보았다. 공부방 선생님도 좋고, 학원 강사도 좋겠다. 미술을 잘하는 특기를 살려 미술학원 원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달콤한 꿈은 잠시. 젊은 학부모들이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60살 넘은 할머니가 가르치는 학원을 선택할리 없지 않은가? 

  주요 과목을 가르친다고 한들 젊고 열정이 넘치는 강사들 틈에 끼어 생존할 수 없을 것 같다. 학원을 세워 원장이 된다 한들 원장은 아무나 하나. '강사 관리와 학원 홍보'는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일일 것이다. 



  그 외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공인중개사? 카페 사장? 하.. 할 수 있는 게 없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치열한 자영업의 세계를 또박 또박 월급 받아 살아온 공무원 나부랭이가 과연 선뜻 도전해 볼 수 있을까. 괜히 기술도 지식도 없이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연금까지 말아먹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럼 '건물주'가 되는 건 어떨까? 글쎄 그건 여유자금이 두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얘기 같다. 오로지 적금밖에 모르는 나에게 그런 꿈은 한참 먼 미래에 꿀 수 있는 꿈같다. 우선 청약이라도 한번 당첨돼 봤으면 좋겠다. (주식은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새가슴이라서...)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어났다. 든든한 직장이 있어도 퇴직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끝까지 나를 따라 오더라. 







3.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이런 걱정병은 내 몸을 힘들게 만들었다. 항상 긴장하고 걱정했다. 하루하루 촘촘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오늘 이렇게 퍼져있으면 퇴직 후엔 뭐 먹고살래? 일어나서 자기 계발해야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은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림을 그린다던가, 영어공부를 한다던가, 교육서적을 뒤져봤다. 그저 지금 당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되는데 미래를 위해 시간을 아깝게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그래서 몸이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인근 학교 '꿈나무 지킴이'로 채용되었다. 매일 3시간. 시간당 수당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동생은 아빠가 그런 일을 하는 게 못마땅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경비원이나 꿈나무지킴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일할 수 있는 기회게 생겼다는 것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에게 되물었다. 

'만약에 퇴직해서 학교 꿈나무 지킴이를 한다면 나 자신이 부끄러울까?'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학원 원장은 되어야지. 아니면 화가나 작가가 되던가. 뭔가 그럴듯하고 멋진 직업을 가져야 되지 않겠어?'



  하지만 아빠를 보면서 내 생각은 틀렸다는 걸 느꼈다. 아빠는 몇백 명의 직원을 밑에 두고 일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일을 시작했다. 아빠는 학생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얼굴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퇴직 후에도 꼭 '그럴듯하고 멋진 일을 해야 한다'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던 거다. 


  최저임금을 받게 되면 뭐 어때. 연금을 보태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난 지금도 검소하게 살고 있지만 늙으면 자연스럽게 더 검소해질 것이다. 좀 못난 대우를 받으면 뭐 어때. 만약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이지 내가 못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 거다.  


  이런 마음을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할만할 일들이 꽤 많았다. 등 하원 도우미도 괜찮아 보였다. 교사 출신이라고 홍보하면 더 경쟁력 있을 것이다. 또 나이보다 젊어 보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정년퇴직 전에는 열심히 연금을 쌓고, 퇴직 후에는 또래보다 젊어 보이는 것. 이것이 포인트다. 그러니까 정년퇴직 때까지 버티려면 건강해야 하고, 또래보다 젊어 보이려면 걱정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며칠 전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퇴직하셨다. 연구대회 1등급을 7번 받으시고, 장학사를 거쳐, 장관상을 여러 번 수상하신 대단하신 분이다. 저렇게 되기까지 고생을 참 많이 하셨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존경하는 분이지만 교장으로 퇴직하면, 어쩌면 퇴직 후에 일거리를 찾기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퇴직 후에도 한자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심해 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진은 고이고이 접어두고 가늘고 길게 가는 교사로 정년퇴직 때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다짐을 더 굳게 세웠다. 



 나는 미래를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퇴직 후에도 무슨 일이든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는 긍정적 마음 가짐을 갖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또래보다 더 젊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해 승진에 얽매지 않고 오늘 하루를 더 게으르게 지내겠다. 이게 바로 내가 정년퇴직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요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만약 내가 퇴근 후 열심히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퇴직을 위한 일이 아닐 거다. 그건 아무런 강박없이 취미를 즐기는 나의 행복한 삶 그 자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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