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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pr 28. 2021

월급 루팡 교사가 될 순 없나요?

교단일기 (1)- 대표 공개 수업

2021년 4월 28일


1. 두근두근 대표 수업은 누가 하게 될까?


4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5월이 다가왔다. 4~5월은 공개수업의 계절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부모 공개수업과 동료장학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부모님을 교실로 모실 수 없으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동료 장학만 진행하고 있다. 비록 학부모 공개수업을 따로 하고 있진 않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쌍방향 수업 내내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동료장학은 학부모 공개수업보다 100배 더 부담스럽다. 동료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선생님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부담스러운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학부모 공개수업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학부모님들은 자녀의 학습태도와 발표력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학생 발표 위주의 수업을 구성하면 된다. 그러나 동료장학은 느낌이 다르다. 참관하는 교사들이 수업자의 수업 스킬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학습 모형과 학습 자료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올해는 교장선생님께서 학년별 대표수업자의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싶다고 하셨다. 이 소리에 주변 선생님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하... 정말 부담스럽다.


"그럼 우리 학년에서는 누가.. 대표 수업을 하면 좋을까요?"

".....(정적)..."


오 마이 갓.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결국 뭐 내가 하게 되겠지. 왜냐하면 나는 이 중에서 가장 막내니까^^. 어쩐지 며칠 전부터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정말 운이 없구나. 올해는 어떻게 수업해야 하나. 수업은 둘째치고 일단 청소부터 빡빡해놓아야겠구먼. 벌써부터 교장 교감선생님 눈에서 '아이 씨유 아임 와칭유' 하면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이고 머리야. 


정적을 깨고 옆반 선생님께서 입을 떼셨다.
"지원자가 없으시면 제가 할까요?"


마음속으로 '오예! 오예~!'를 외쳤다. 기쁨의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가슴을 쓸어리며 다시 10년은 젊어진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다들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정말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옆반 선생님께서 대표수업을 하시기로 했다. 대표 수업자가 아니라고 해서 공개수업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대표' 타이틀은 없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나도 언젠게 쿨하게 대표수업을 자진하는 멋진 선배교사가 되고 싶다. 





2. 월급 루팡(도둑) 교사는 없다.


대표수업은 아니지만 다른 동료 선생님들께서 내 수업을 참관하실 것을 감안해서 열심히 수업자료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교단에 선지 8년이나 됐지만 수업 베테랑의 길은 멀고도 멀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교과서 교육내용이 몇백 년 전부터 쌓여 온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편하게 수업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수시로 개정되기 때문에 매년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새로운 교육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블랜디드 러닝이라고 해서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수업 방법이 핫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 원격 수업에 적합한 동영상 자료 제작 및 편집, 쌍방향 수업 놀이를 개발과 같은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정말이지 교사는 단순노동과 거리가 먼 직업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 작업을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 있네. 아이들 이름표나 미술자료를 만들 때 수십 번씩 똑같은 가위질을 하는데 그때는 정말 멘털이 저 세상으로 나갈 것 같다. 이런 육체노동 빼고는 거의 모든 수업 및 업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된다. 만약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이 적성에 잘 맞지 않는다면 교사보다는 행정직 공무원으로 진로 정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교사에게 요구하는 기술이 부쩍 많아지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방역을 철저하게 하면서, 친구들과 얘기하지 않게 하면서, 서로 만지지 않게 하면서, 수업은 재밌으면서,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고, 유의미하고, 적절하게 영상도 잘 만들면서, 편집도 잘하고, 예산은 최소로 사용하면서, 임팩트가 있는 수업 만들기


어렵다 어려워. 일한 것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싶은데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볼 때마다 왜 눈물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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