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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pr 29. 2021

교사도 급식 먹는 재미로 살아요

교단일기(2) - 교사도 급식 시간을 기다리며 삽니다.

1. 오늘은 뭐가 나올까? 


아침 6시. 삐비 비빅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알람이 울린다. 평소에는 6시 30분쯤 일어나는데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왜냐하면 아침 8시 20분부터 교문 앞에 나가 등교 거리두기를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침밥은 건너뛰고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간다. 

다행히 학교에 8시 전에 도착했다. 쌍방향 수업이 있는 날이라 컴퓨터, 카메라, 마이크, 헤드폰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PPT까지 띄워놓은 다음 교문 앞으로 나간다. 


"뛰지 마세요. 천천히 걸어 들어와요. 거리를 두세요."


우쾅쾅쾅 뛰어오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잔소리에 살금살금 걷는다. 친구들끼리 손잡고 오다가도 선생님을 보고 화들짝 놀라 꼭 잡았던 손을 놓는다. 호랑이 선생님 표정을 짓고 있긴 하지만 4월 마지막 주의 따스함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1교시 시작시간이 거의 다 되어 교실로 황급히 들어온다. 아침 거리두기 지도를 하고 나면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  교사는 오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 직업이다. 그래서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왔어야 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급해서 아침밥을 챙기지 못했다. 3교시쯤 되면 본격적으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괜스레 급식 식단표를 열어본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


어느 학교든지 학교 급식 메뉴는 영양교사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고, 급식 맛은 조리장의 입맛에 따라 달려있다. 떡을 좋아하는 영양교사를 만나면 급식 메뉴에 떡이 수시로 나온다. 떡볶이, 떡국, 송편, 조랑 떡 잡채 등등 매주 떡이 나왔다. 퓨전요리를 좋아하는 영양교사를 만나면 동남아 요리 느낌이 나는 반찬이 등장한다.


우리 학교 영양교사는 튀김과 면요리를 좋아하시나 보다. 밀가루와 모든 인스턴트 음식을 끊은 나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밀가루를 끊은 지 6개월 정도 되니 이젠 튀김 한입만 먹어도 속에서 구역질이 난다. 먹고 싶은데 참는 게 아니라 너무너무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튀김과 밀가루가 주요리가 된 날에는 보온 밥과 삶은 계란을 들고 간다.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남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나 싶어 대놓고 먹는다. 다행히 투명 가림막이 있고 거리두기를 하며 앉아서 다들 내가 뭘 먹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급식이 최고다. 급식이 없으면 따뜻한 국물을 절대 먹을 수 없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초 코로나로 인한 휴업에서 한 달 내내 배달음식을 시켜먹어 봤는데 급식만큼 가성비가 좋은 건 없었다. 그래서 급식 메뉴 때문에 삐죽 내밀었던 입을 다시 집어넣고 점심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2. 역시 애들은 애들 입맛이지.


6학년 여자애들은 떡볶이를 참 좋아한다. 나도 어릴 때 떡볶이를 좋아했던가?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한 번은 집에 오면 떡볶이만 먹어서 걱정이라는 상담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남자애들은 죽으나 사나 라면을 외친다. 남학생 여학생 둘 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돈가스다. 돈가스 나오는 날에는 돈가스를 두 번, 세 번 가져다 먹는다. 아이들 입맛이 이러다 보니 학교 급식도 일반 회사 급식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 급식은 가끔 내 입맛에 안 맞을 때가 있다. 


우리 남편 입맛은 애들 입맛이다. 딱히 편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병원밥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학교 급식을 먹고, 나는 병원 급식을 먹으면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직접 음식을 해 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음식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급식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급식 만족도 조사를 해보면 6학년 아이들은 급식에 형편없는 점수를 매긴다. 이 점수를 볼 영양교사들은 얼마나 기운이 빠지고 실망스러울지 상상하기 힘들다. 6학년 애들을 키우는 학부모들도 밥상 앞에서 터져 나오는 이 불만 덩어리 사춘기 청소년들의 볼멘소리를 감당하기 어렵겠지. 


애들도 나도 급식을 보고 입이 삐쭉 나오지만, 급식을 먹기 시작하면 걸신들린 듯 입에 아구아구 집어넣는다. 역시 급식 앞에선 어른이나 애들이나 똑같다.      






3. 원어민 선생님의 급식은.


우리 학교에는 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이 있다. 원어민 선생님은 급식을 드시지 않고 손수 만들어온 도시락을 드신다. 모두가 급식실에서 있는 사이 원어민 선생님은 조용히 연구실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식사를 마친 후에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매번 그 냄새가 너무 불편해서 원어민 선생님이 자리를 뜨자마자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려졌다. 미침 냄새가 너무 강하다고 투덜대고 있는데 지나가던 학년 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일한다고 생각해봐. 그들도 우리가 싸온 김치 냄새를 맡고 불편해한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타지에 와서 일한다는 거 자체도 힘든데 말이야."


그 순간 속좁게 냄새난다고 불편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음식에는 개인의 성향뿐만 아니라 문화도 깃들어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음식이라고 해서 투덜대는 불만 불평은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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