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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11. 2021

스승의 날에 선물을 주세요

교단일기(4) -선생님이 스승의 날에 받고 싶은 선물은?

1. 그 시절 그땐 그랬지


  스승의 날 선물이 당연시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지방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에 근무했기 때문에 한 번도 값비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지만 서울 강남에 근무하는 동기 얘기를 들어보니 별의별 선물이 다 있더라. 예를 들어 화분을 선물 받았는데 물 받침대에 깔린 현금이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던가 한 번에 1년 치 화장품을 다 받았다던가 스승의 날 받은 꽃으로 온 집안을 식물원으로 꾸밀 판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만약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아서 좋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NO'라고 대답하고 싶다. 받을 때는 기쁘고 좋지만 선물을 준 학생을 특별 대우해줘야만 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은 기본이요, 교장선생님께 선물 해 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 년 내내 교사들을 괴롭혔다. 특히 부장교사들은 명절, 연초, 연말마다 교장선생님 댁으로 선물을 보내곤 했는데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신규교사였을 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선물을 밝히는 분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명절 선물이 마음에 들면 선물을 보낸 교사에게 감사문자를 보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명절이 지나면 부장교사끼리 모여 문자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서로 물어보는 기괴한 풍경이 벌어졌다. 


  나는 한 번도 교장선생님께 선물을 보낸 적이 없다. 신규로 발령 나서 월급 통장에 190만 원이 찍히던 때 자취생 주제에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첫 발령 기념 떡을 돌릴 때도 돈이 아까웠는데 명절에 그럴싸한 선물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명절 선물 없이 교장선생님께 찍히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연구부장님 덕분이었다. 그 당시 나와 연구부장님이 방과 후에 부진학생을 지도했는데 지도 수당 중 3분의 1을 교장선생님께 헌납했다. 그때는 속상했다. 내가 힘들게 일해서 번 수당인데 왜 그걸 교장선생님께 드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무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고 부장님께서 다독여주셨다. 울며 겨자 먹기로 봉투를 준비했다. 


  교장실로 가서 봉투를 드리려고 하니까 연구부장님께서 그렇게 봉투만 덜렁 드리면 안 되는 거라고 양말이라도 사 오라고 하셨다. 인근 백화점에서 양말을 사 왔다. 

양말세트 안에 봉투를 넣고 교장실로 가려고 하니까 또 연구부장님께서 포장도 안 하고 드리면 안 되는 거라며 직접 포장을 해 주셨다.  


  이번엔 진짜로 고운 포장지에 싸인 봉투가 든 양말세트를 들고 교장선생님께 드렸다. 며칠 후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교실로 찾아와 고맙다고 하셨다. 그 덕분일까. 연구부장님 말씀대로 그 해 나름 꽤 무탈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 그 교장선생님께서는 퇴직하고 흔한 동네 할아버지가 되셨다. 가끔 지하철역 주변에서 마주칠 때마다 모르는 사람 마냥 고개를 돌리고 후다닥 내 갈길을 간다. 그 시절 그땐 그랬지.









2. 기억에 남는 스승의 날 선물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 '손거울'을 선물로 받은 적 있다. 그 선물이 교직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다. 휴대용 손거울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워서 실용성이 꽝이지만 6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아직 내 파우치에는 그 손거울이 들어있다. 그것이 이렇게나 소중한 이유는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다.


"선생님,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을 구경하다가 선생님 생각이 나서 용돈으로 거울을 샀어요. 이 거울로 예쁜 얼굴 보세요."


  고작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됐는데 단 두줄로 심쿵하는 문장을 쓸 수 있다니! 단돈 3천 원짜리 손거울이지만 3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기억에 더 오래 남고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편지가 없으면 기억에서 금방 사라진다. 마음이 담긴 손편지가 있다면 어떤 선물도 금은보화처럼 빛날 수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담임을 맡을 땐 애들이 손편지에다가 선생님 얼굴을 그려서 (모델처럼^^) 책상 앞에 두고 가곤 했는데 6학년 담임을 맡은 후론 손편지가 귀해졌다. 손편지가 뭐람. '선생님, 혹시 오늘 화장 안 했어요?'라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손편지를 받고 싶다.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이라는 식상한 편지 말고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고 싶다. 그리고 선생님 얼굴을 그려줄 거면 좀 예쁘게 그려줬으면 좋겠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학교에서 카네이션 만드는 법을 배웠으면 색종이 2장을 투자해서 카네이션을 접어줬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종이 카네이션도 안주더라. 시크한 6학년 녀석들 같으니. 대놓고 카네이션 접어달라고 말하자니 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이렇게 얘기했다.


'스승의 날 선물 금지인 거 알지? 근데 말이야, 카네이션 접는 법을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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