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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14. 2021

세상에 이렇게 야할 수가 있나.

교단 일기(6)-유교걸 교사에겐너무 야한 노래들

"오늘은 선생님이 어떤 노래를 알려주실까?"

"선생님! 이번 노래는 뭐예요?"

"우와~ 새 노래다!"


6학년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영어교육을 위해 한 달에 1~2개의 팝송을 알려주고 있다.  고맙게도 알려준 노래를 모두 외우는 학생도 있고 복도를 지나가면서 내가 알려준 노래를 흥얼거리는 학생도 있다.  세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새 곡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감이 하늘 높이 높아져만 갔다.



그런데 새 곡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내 어깨는 왜 더 무거워지는 걸까?




1. 그 노래는 불통(不通)이오~


나는 빌보드 차트 팝송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매달 습관처럼 빌보드 차트를 확인해보고 좋은 노래가 있으면 영어 가사, 발음, 번역문을 출력하여 6학년 아이들에게 소개해주곤 했다. 올해에는 방탄소년단의 Dynamite, 블랙핑크 로제의 On the ground를 소개해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알려줄 만한 팝송을 고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완벽히 통과하는 팝송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멜로디가 좋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며, 교과 내용과 관련 있고, 가사 및 뮤비가 선정적이지 않으며, 욕설이 없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가사 내용일 것'


이러한 기준 중 가장 통과하기 힘든 기준은 바로바로... '가사 및 뮤비가 선정적이 않은 것'이다. 유교 걸 교사 눈에 요즘 유행하는 팝송들은 너무 야하다. 빨간 불빛 아래 파티를 즐기는 것도 야하고, 비키니를 입고 수영장에 풍덩하는 것도 야하다. 여가수들 뮤직비디오는 왜 이렇게 야한 것일까.



한 번은 팝송을 알려주다가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나와서 후다닥 꺼버린 적이 있다. 가사가 건전하고 좋아서 뮤비도 괜찮겠지 하면서 뮤비를 대충 검수하는 바람에 벌어진 실수였다. 빠른 손놀림으로 중간에 화면을 꺼버렸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철컹철컹할뻔했다.   



그 후 노래 가사 및 뮤비를 더욱 철저하게 검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알려줄 마음에 쏙 드는 팝송을 고르기란 하늘의 별따기같이 어렵다. 고심 끝에 저스틴 비버의 baby를 알려줬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모여서 저스틴 비버가 마약을 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가수의 사생활까지 검증해야 하는 기준이 추가됐다. 하.. 이럴 수가...


 

집에서 하루 종일 팝송을 검색하고 있는 나에게 보다 못한 남편이 한마디를 던졌다. 


"뭘 그렇게 고민해? 비틀스 노래 알려주면 되잖아. 헤이 쥬드~ 돈 렛 미 다운~~~~ 헤이 쥬드~~"

"비틀스는 오래된 가수잖아. 나는 현존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노래만 좋으면 됐지. 헤이 쥬드~~ 얼마나 좋아?"

"나는 말이야. 애들이 영어를 좀 더 생생하게 접했으면 좋겠어. 지금 인기를 끄는 가수들의 노래를 알려주고 싶어. 그리고 카페나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팝송을 듣고 '앗! 이거 배웠던 노래다!' 했으면 좋겠어. 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하고 영어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게 내 최종 목표야."

"음.. 그렇다면 어쩔 수없지. 노래 하나 고르기 참 어렵구먼."   


팝송 알려주기. 참 심플하고 간단한 자료 같지만 교육자료로 활용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이게 어디 팝송뿐이랴?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적합한 학습자료를 만들기 위해 교사들은 매번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중이다.    









2. 애들아, 그 노래는 아니 아니 된다. 


 얼마 전 자투리 시간에 팝송 신청곡을 받았는데 6학년 애들이 신청한 곡들 중 일부가 욕설 및 선정적인 가사가 섞인 곡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틀면 흥얼흥얼거리며 들을 순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팝송 신청곡 받기를 중단해버렸다. 


비록 멜로디에 빠져 흥얼거리는 아이들은 노래에 담긴 가사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깜짝 놀라 손을 덜덜거릴 수밖에 없다. 


혹시나 애들이 집에서 유튜브로 이 노래의 뮤비를 시청하는 건 아니겠지? 이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고나 있을까? 걱정이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그러나 앉아서 걱정한다고 해서 세계화의 썰물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이미 팝송은 우리 주변에 깊이 들어왔다. 다만 각 가정에서도 우리 아이가 유튜브로 어떤 팝송을 듣는지 꼭 확인하고 검증해야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다행히 유교 걸 교사 눈에 KPOP은 합격이다. 그중에서도 방탄소년단 노래는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BTS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훌륭한 가수들이 한국인의 감성을 드러내는 멋진 팝송을 더 많이 선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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