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버는 연예인입니다만
지나가다가 담임선생님을 본다면 못 본척해주세요.
1. 교사는 학교 근처에서 연예인이 된다.
나는 최근에 심해진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흐린 날에도 큰 선캡에다가 양산까지 쓰고 다닌다. 엄마는 나를 보고 외계인 같다고 했고, 남편은 나를 보고 테러리스트 아니냐고 놀려댔다. 흥! 창피한 건 순간이지만 피부가 아프면 밤새 괴로울 것이기에 남이 보거나 말거나 할줌마스러운 대형 선캡을 눌러쓰고 출퇴근하고 있다.
운전해서 출퇴근하면 창피할 일도 없고 몸도 편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놈의 주차 때문에 선뜻 운전대를 잡지 못하겠다. 남의 차를 긁어먹을까 봐 무서워서 고생길을 자처하는 바보가 바로 나다. 그러나 운전을 못해서 걷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려고 걷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학교까지 걸어간다.
다행히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다. 내가 어떤 복장을 하고 있든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 100m 전방에 들어서면 선캡을 벗고 양산도 접어 넣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엊그제 하필 내가 할줌마 선캡을 쓰고 있을 때 졸업한 제자가 나를 보고 쫓아왔다. 어떻게 뒷모습만 보고도 귀신같이 나인 줄 알았을까.
"선생님? 선생님??"
나는 애써 걸음을 빨리하며 안 들리는 척했다. 미안하다 제자야. 오늘은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할줌마 선캡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000 선생님???"
제자는 나를 끝까지 쫓아와서 인사를 했다.
"어^^ 민수야, 안... 명? 잘 지내지? 햇빛이 참 강하구나 하하하.."
"아... 예..(대형 선캡과 양산에 놀랐음)"
"잘 지내고 있지?"
"아.... 예..."
"응응^^ 그렇구나."
아주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교사는 학교 근처에서는 연예인이 된 것처럼 복장에 신경 쓰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언제 학생이 쫓아와서 인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2. 교사는 어디서든 연예인이 된다.
"선생님, 어제 7시 40분에 00역에서 지하철 타셨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저희 엄마가 선생님 봤대요."
"나를 봤다고? 에이, 잘못 보셨겠지. 내 얼굴을 보신 적 없으시잖아"
"아닌에요. 선생님 맞아요. 엄마가 사진 찍어서 저한테 보여줬어요."
"응?????? 내 사진을 찍어서 너한테 보여줬다고?"
학교 근처가 아니면 안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학생 및 학부모님들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걱정스러운 맘이 생겼다. 또한 내 사진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교사이기에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머리를 하는지 무얼 보고 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덕스러워야한다. 그래도 어쩌랴. 원래 교사는 돈 못 버는 연예인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날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지.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학교로 찾아오는 제자들을 만나면 반갑고 기쁘지만, 밖에서 갑작스럽게 날 알아보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아직도 어색하다. 교직 경력이 8년이나 되었지만 가끔은 그게 너무 불편할 때도 있다. 이런 사소한 일도 불편한 나는 교사 유튜버가 되지 않길 잘한 것 같다. (요즘에 교사 브이로그 때문에 떠들썩한데 브이로그 찍었으면 질타도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소심한 나는 역시나 연예인 할 팔자는 아닌 게 확실한 것 같다.
* 다음엔 마스크로 뒤집어진 피부를 되돌리는 법 (2)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