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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ug 11. 2021

화이자를 맞아도 아픈 교사입니다

코로나에 무릎 꿇다

1. 백신만 맞으면 다 잘될 줄 알았다. 


"며늘아가, 교사는 언제 접종한다냐?"

"네 아버님, 8월 중에 접종 완료할 거래요."

"어이구, 다행이네.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구먼.^^"


7월 말. 전국의 모든 교원이 8월 중에 접종을 마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 심지어 시부모님까지 내 일처럼 기뻐하셨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산더미 같았지만 무조건 접종하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이기적으로만 내 몸만 생각하자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백신을 맞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서 당연히 접종해야 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백신 접종일 및 접종시간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개학 전에 2차 접종까지 끝낼 수 있도록 화요일에 바로 맞자. 시간은 오전 9시가 낫겠어. 대체로 9시간 뒤에 발열이 시작된다고 하니까 오후 3시에 열이 펄펄 나도 대학병원 교수님께 진료받을 수 있어. 6시 이후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봤자 교수님들도 다 퇴근할 테고 전공의만 남잖아. 무조건 오전에 맞자.'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접종하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예약을 했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 일찍 일어나서 하루 종일 피곤했다. 그래도 밤 12시에 예약하려고 했다가 새벽 2시 반까지 접속이 지연되느라 잠을 꼴딱 샜다는 1, 2학년 선생님보다는 백배 나았다. 


"휴.. 예약부터 힘들었다."



점점 접종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극심해졌다. 그리고 백신을 맞기 전에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매일 5시에 일어나 이만보씩 걷고 밤 10시 전에 잠들었다. 커피, 유제품, 밀가루도 입에 대지 않았다.  



접종 당일 우려했던 대로 면역반응이 강하게 나타났다. 3일간 38도까지 열이 났다. 팔은 9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온종일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춥고 무기력했다. 살이 2kg이나 빠졌다. 

2차는 얼마나 더 아플지 너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백신만 맞으면 모든게 다 잘 될 줄 알았다.









2.  심리적 면역 항체는 생기지 않았다.


2차 접종일에 대비해서 '매일 5시에 일어나 이만보씩 걷기. 밤 10시 전에 잠들기. 커피, 유제품, 밀가루 먹지 않기'를 실천했다. 그 와중에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는 나날이 많아졌다. 


교내 여름방학 캠프는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갑작스러운 온라인 전환으로 학교는 또 난리가 났다. 원어민 선생님께 영어캠프를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지 마자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들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 '여름 영어캠프를 취소하고 겨울에 몰아서 하자.'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달 전부터 준비했던 등교 수업용 영어캠프 자료를 모두 날리고 며칠 안에 온라인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할 원어민 선생님에게 '안된다. 교육청과 학교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밉고 미안했다. 


학생들에게도 급히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안내문을 보냈다. 안내문을 읽지 않은 학부모가 있을까 봐 열심히 확인 전화도 돌렸다.  


난 잘 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미안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1차 백신 접종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면역항체는 생기지 않았다. 


 






3. 아프고 아프다.


지난 9일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면서 네이버 공문*이 뜨길 기다렸다.

(*네이버 공문: 교육부에서 발표하는 모든 학사 일정은 학교를 통하지 않고 기사로 터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4단계에서도 등교를 하게 하겠다는 게 주내용이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하겠다. 이번에도 그렇군. 횟집에서 부르는 게 시가인 것처럼 말이야.'


네이버 공문을 모두 읽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데 교무부에서 카톡이 왔다.


'교사 백신 일정이 2주 더 늦춰졌습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쿠브앱에 들어가 2차 접종 일정을 확인했다. 9월로 미뤄졌다. 


'어쩌지. 9월이면 이미 개학한 후인데. 2차 접종일은 화요일인데. 내가 아프면 우리 애들은 누가 봐주지. 학교 선생님들이 전부 공가를 내면 누가 보결해주지.'


입안이 바싹 말랐다. 교사는 하루 병가 내는 것조차 어려운 직업이다. 누구는 공무원들은 마음대로 병가도 내고 공가도 낸다고 알고 있겠지만 교사는 그렇지 않다. 아파도 병가를 내지 못하고 급한 일이 있어도 연가를 내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애들은 누가 대신 돌보나. 보결 선생님들이 들어온다 한들 그분들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병가는 절대 안 돼. 접종일정을 얼른 바꿔야겠다.'


급히 보건소에 전화했다. 대기시간이 한참 걸렸다. 애가 탔다. 무조건 바꿔야 했다. 


"보건소죠? 접종일정을 바꾸려고 하는데요."

"네, 바꿔드릴게요."


다행히 접종일정을 당겨 금요일 오후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악! 이게 뭐야! 접종일이 왜 다시 미뤄진 거지?"


애써 당겨놨는데 접종일이 3주나 더 미뤄졌다. 귀신에게 홀린 듯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게 머선일이고...


다음날 9시가 땡 하자마자 보건소에 전화했다. 접종 간격이 5주 이상 되도록 위에서 일괄적으로 재배치했단다. 원래 날짜로 돌려줄 순 있으나 당기는 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네.. 그럼 밀려나도 좋으니 금요일 오후로 해주세요... 화요일은 안돼요"


그렇게 금요일 오후로 다시 접종 예약을 잡았다. 보결담당은 교감선생님의 업무인데 내 업무 마냥 하루종일 걱정이 된다. 2차 접종을 하지도 않았는데 무기력하고 머리가 아프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심리적 항체는 도대체 언제 생기는 걸까. 언제쯤 적응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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