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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06. 2021

청소하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닌데요..

교단일기(3)-청소가 이렇게나 중요했던가.

1. 나 홀로하는 재미없는 교실 청소


(하교를 알리는 학교 종소리가 울린다. 딩동댕동~)

"자, 이제 집에 가자 애들아. 자, 주변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자. 미나야, 책상 밑에 쓰레기 있다. 준범이도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세요. 아니 아니 쓰레기에 우르르 몰려가면 어떡해! 거리를 둬야지. 몰려있지 말라니까! 그게 아니라고~~~ "


(집 갈 생각에 들떠 애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 웅성웅성)

"누가 떠들어? 친구랑 얘기하지 마세요오~~~ 아니 이이 조용히하세요오~~~~ 그렇게 하면 집에 안 보내 준다? 쉿!"


(선생님이 뭐라고 하건 말건 끼리끼리 모여 히히덕거리는 소리)

"아 선생님 집에 빨리 보내 주세요. 학원 가야 돼요."


 -_-.. 으응 그래 애들아 잘 가라. 그냥 가. 내가 치우지 뭐.


애들은 집에 가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밖으로 나간다. 후... 의리 없는 짜식들. 교실 청소를 몽땅 나에게 맡기고 나가버렸다. 원래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각자 1인 1역을 맡아서 다 함께 청소를 했는데 청소를 하다 보면 거리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아서 교실은 내가 다 청소하기로 했다. 애들하고 같이하면 15분 만에 끝날 청소도 혼자 하면 두 배, 세 배가 걸린다. 그래도 성격상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꼴을 볼 수 없어 매일매일 빗자루 질을 한다.


청소를 하다 보면 이따금씩 현타가 온다. 꼭 쓰레기를 틈에 쑤셔 박는 애들이 있는데 작은 틈에 박혀버린 쓰레기를 떼어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주 미세한 쓰레기는 빗자루로 잘 쓸리지 않아서 새로 장만한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꺼내 든다.  


위이가 잉~~ 굉음을 울리며 교실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가 진공청소기 전원이 나간다. 왜냐하면 청소기 줄이 책상에 걸려 꼬였기 때문이다. 교실은 넓은데 책상이 많으니 청소기 줄이 머리카락 마냥 뒤엉켜버리기 십상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 집에 있는 샤오미 무선청소기를 들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비싼 청소기를 교실에 들여놨다가 며칠 만에 고장나버린 사례를 듣고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귀찮지만 빙빙 엉킨 청소기 줄을 풀면서 다니는 수밖에.  


큰 쓰레기들을 담고 먼지를 털어낸 뒤 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바닥에 얼룩덜룩 얼룩이 있다. 좁은 틈에 쑤셔 박힌 쓰레기는 그나마 상전이다. 한번 남은 찐득한 얼룩은 아무리 물걸레질을 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말이야. 우리 집도 이렇게 청소를 안 하는데 말이야. 이것들은 도대체 뭘 했길래 이런 얼룩을 남기고 가냔 말이야!'


구시렁대면서 바닥을 닦는다. 고무장갑을 장착하고 칠판도 닦고 창틀에 앉은 먼지도 털어낸다. 애들이 버린 쓰레기도 내가 혼자 갖다 버린다. 매일 30명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 무시하다. 낑낑대면서 쓰레기까지 모두 갖다 버리면 오늘의 청소 미션은 끝이다.


만약 거리두기에 대한 경각심을 잊은 채 코로나 이전처럼 지낸다면 어떨까. 만에 하나 우리 반에 확진자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교사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얼마 전 확진자가 발생한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교내 감염이 발생했을 때 그 죄책감이 얼마나 큰지,  거리두기를 잘 지키지 않았을 때 교육청으로부터 어떤 문책을 당하는지 듣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하아. 코로나 전에 학생들과 함께 청소하던 그때가 그립다.










2. 계단 손잡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면 그 책임은 교사가?


교실 청소 외에 반마다 정해진 청소구역이 있다. 저학년은 청소구역 배정에서 제외되고 주로 6학년에게 계단청소, 교문 입구 청소, 화단 청소 등이 주어진다. (참고로 요즘 애들은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화장실 청소도 했었는데 정말이지 끔찍했던 기억이다. 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는 애들 때문에 변기를 청소하느라 비위가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청소구역이 배정되었으나 사실상 청소지도는 거의 불가능했다. 담임교사가 청소 지도를 한다고 교실을 떠나면 교실에 남은 애들이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면서 거리두기를 무시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도구를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것도 찜찜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 번 애들을 시켜보다가 교사가 청소하게 되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교내 코로나 안전 계획에 각 구역 청소 담당자가 방역 담당자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겁지겁 문서 등록대장을 찾아봤다. 분명히 읽어본 문서인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던 거다. 동료 선생님께서 질본 청과 교육청에 문의해 본 결과 계단 손잡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면 그 구역 방역담당자가 책임을 진다고 했단다.



이제 교실 청소를 넘어서 고학년 선생님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각 청소구역을 매일 방역하면서 다녀야 할 판인 거다. '이제부터 방역 물티슈를 들고 구석구석 닦으러 다녀야 하는 건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결국 고학년 선생님들께서 교무실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방역담당자를 정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 회의를 거쳐 방역 담당자를 새로 지정했는데 그냥 넘어갔으면 매일 방역 티슈와 소독액을 들고 청소하러 다닐 뻔했다.


이번 계기를 통해 다음부터는 문서 등록대장을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 불공정한 일이 생기면 바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초임교사도 아닌데 학교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은 왜 이렇게 새로운 건지 모르겠다.


또한 학교가 이고 있는 방역에 대한 책임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이미 인근 학교에서 확진자가 우르르 발생해서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판에 우리 학교만 간신히 등교 수업을 이어가고 있어 긴장감이 더 커졌다.


요즘은

청소와 방역이 수업보다 중요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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