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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pr 23. 2021

교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들

누가 교사를 쉬운 직업이라고 했는가?

교직에 머물면서 가끔은 교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들이 다가오곤 한다. 이번 글은 어떤 때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에 대해 쓴 글이다. 





1. 6학년을 맡으며 깊어진 미간 주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주로 6학년 담임을 맡아왔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6학년 담임을 기피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저학년 담임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도 6학년을 맡고 있다. 6학년을 맡게 될 때 힘든 점은 수업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와... -_-.. 오늘 수업 참~ 재밌네.'

'이거 재미없으니까 하지 마요.'

'하기 싫은데요. 안 하면 안 되나요?'

'아,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6학년 아이들은 솔직하게 평가하고, 말로 내뱉는다. 조금만 지루해도 책상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6학년 담임선생님들은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도록 노력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저음의 목소리와 눈빛으로 학생들의 기를 제압하는데, 수시로 심각한 표정을 짓느라 미간에 되돌릴 수 없는 주름이 생겨버렸다.


가끔 나도 모르게 집에서도 이런 심각한 표정과 말투가 튀어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컴퓨터 앞에서 몰래 과자를 먹고 치우지 않는 걸 발견했을 때 집에서도 선생님 마냥 남편에게 다다다다 잔소리를 해 댄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학생처럼 나를 혼내지 말라고 울상 짓는다. 그리고 거울을 갖다 주며 깊어진 미간주름을 보라고 한다. 황급히 가식의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한번 생긴 주름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나도 하루 종일 화내지 않고 우아하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 교장실 앞에서 벌벌 떠는 나를 발견할 때 


모든 직업을 통틀어 직업만족도 1위인 직업은 바로 '초등학교 교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중고등학교 교직문화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고등학교 교무실에서는 교감의 멱살을 잡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는데 진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초등학교에서는 '상명하달'이 참 잘된다. 교장선생님께서 '에헴, 이거 하세요!' 하면 '알겠사옵니다ㅜㅜ'하고 일이 착착 진행된다. 지금껏 '싫은데요. 제가 왜요?'라고 대답하는 교사는 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교사가 '수업'만 하는 줄 아는데, 우리는 주로 '학교 업무'를 하고 '수업'도 한다.  학교의 온갖 행사, 돌봄 교실, 안전지도, 영재교육뿐만 아니라 CCTV 관리, 교내 무선망 관리까지 교사가 다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결제하는 교장은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이다. 


교감, 교장이 된다고 해서 월급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건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 교감의 경우 부장교사를 맡고 있는 평교사보다 월 19,505원 더 받을 뿐이다. 만약 평교사가 방과 후 학교 강사로 활동하거나 영재수업을 하게 될 경우 교감의 월급을 앞지르게 된다. 교장의 경우 직급 보조비를 월 40만 원가량 더 받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승진하게 위해 바친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크게 월급이 크게 메리트로 작용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 경쟁이 치열한 것을 보면 학교 내에서 왕처럼 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게 분명하다. 

  


어느 조직이든 그러하듯 결제자의 눈 밖에 나가는 일원은 온갖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필자가 처음 교직에 발령 나고 교장의 미움을 사게 되었을 때 거의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퇴짜 맞은 공문을 붙들고 눈물을 훔치곤 했다. 



어떤 때는 교장이 내뱉은 말이 가슴에 비수같이 꽂혀서 한참이 지나도록 치유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떻게 된 게 후배 교사보다도 못해? 부끄러운 줄 알아."

"선생님 교실 주변에는 찬기운이 돌아."

"선생님이 제대로 한 일이 뭐가 있어? 나가!"


쉬는 시간에 교장실에 잡혀서 있는 사이 우리 반에서 폭력사건이 일어났고 화가 난 학부모가 사직하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도 그랬다.

"그만두면 선생님이 그만두는 거지.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때 갑질 신고를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울면서 아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도

"원래 사회생활은 그런 거야. 아빠는 더 심한 일도 참았어. 그저 참고 가만히 있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라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혹시 갑질 사례에 해당되는 건 아닌지 따져본다. 그리고 갑질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면 정당한 이유를 들어가며 교장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신규교사 타이틀을 뗀 후부터 개인의 편의보다는 교육적인 측면을 우선시하는 교장선생님들만을 모셨기 때문에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교장실 앞에 서면 긴장하고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면 스스로 가엽게 느껴진다. 특히 연가나 병가를 낼 때 허가를 안내 줄 까 봐 매우 매우 긴장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는 걸 알았다. '네~네~'하고 살던 내가 입을 다물고 억쎄지는 모습을 보면, 그저 좋은 것만 보면서 온화하게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3. 저녁밥 먹는데 휴대전화가 울릴 때

  

초등학교 점심시간은 전쟁 같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편식하는 애들을 지도하느라 전쟁 같았고, 코로나 이후에는 거리두기를 지도하느라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친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밥을 대충 10분 만에 먹어버리고 소화가 안돼서 끙끙대기도 한다. 


점심은 거지같이 먹었지만 저녁식사만큼은 우아하게 먹으리라 다짐하고 저녁 식탁에 앉는다. 그런데 그 순간 '띵동' 문자가 온다. 


'선생님~ 우리 애가 오늘 숙제를 못할 것 같은데 내일 혼내지 말아 주세요ㅜㅜ.'

'선생님~ 내일 준비물 수채화 도구 맞나요?'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00 이가 우리 아이를 밀쳤다는데요. 잠시 전화통화 가능하세요?'


학교를 벗어나도 다시 학교로 돌아온 기분이 들 때 편안해야 할 저녁식사 시간마저도 전쟁같이 느껴지곤 한다. 나는 언제쯤 이런 사소한 것들마저 짜증 내지 않고 웃어넘기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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