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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Feb 18. 2021

공무원의 현실; 비품을 분실하면 이렇게 된다.

공무원의 일처리가 느린 이유

1. 스마트패드를 잃어버리다.


"하나, 둘, 셋.... 열 넷...스물. 으잉?"

"이럴 리가 없어. 다시 하나, 둘, 셋... 스물. 악!!! "


큰일 났다. 스마트패드 5개가 사라졌다.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스마트패드를 여기저기 대여했었다. 스마트패드 5개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누가 몰래 가져간 걸까? 난 이제 어떻게 하지?





2. 사라진 스마트패드 찾기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우리 학교에는 스마트 패드가 90개 있었다. 그중 39개는 학생에게 대여를 했고, 15개는 선생님들께 대여했으며, 11개를 영재반에게 대여했다. 그럼 25개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20개밖에 없다. 사라진 5대를 찾아야 한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사라진 스마트패드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스마트패드 반출입 대장을 꺼냈다. 수업 중에 6학년이 수시로 스마트패드를 대여하고 반납했다. 가끔 돌봄 교실에서도 스마트패드를 대여했다가 반납했다.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걸까. 6학년? 돌봄 교실? 아니면 도둑?!!!  

6학년 선생님들과 돌봄 담당 선생님을 붙잡고 스마트패드의 행방을 물었다. 아무도 모른단다. 하. 큰일이다. 


 가동했다. IP주소가 잡히지 않는다. 진짜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망. 했. 다.





3. 혼날 것인가, 숨길 것인가.


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어떡해. 나 큰일 났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 스마트패드를 잃어버렸나 봐. 어쩌지? 교감선생님한테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할까? 아니다. 부장님한테 먼저 말해야겠지? 어쩌지.. 어쩌지?"

"잃어버렸다고 해야겠지? 부장님 하고 상의해봐. 부장님이 베테랑이시니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실 것 같아."

"그렇... 지? 근데 아.. 나보고 물어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학교 돈으로 메꾸겠지. 걱정하지 마. 네가 가져간 것도 아닌데 왜 네가 물어내? 아닐 거야."

"아니겠지? 후.. 근데 그냥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까? 업무 인수인계할 때 솔직히 잃어버렸다고 하고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 되려나?"

"인계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맞아. 나도 마음이 불편해. 솔직히 말해야겠어."




전화를 끊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는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비품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있잖아.. 나.. 스마트패드 잃어버린 것 같아."

"정말? 잘 찾아봤어?"

"응.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이런 경우 학교에서는 어떻게 처리해?"

"내용연수기간이 지났으면 불용 처리하는데 스마트패드는 내용연수기간이 5년이라 아직 한참 멀었을 텐데. 내가 한번 다른 학교 사례를 알아볼게. 요즘 스마트패드 분실 문제가 흔하다고 하더라고."

"알았어. 고마워!"




잠시 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스마트 패드를 잃어버리면 담당자가 물어내야 한대."

"말도 안 돼! 진짜야?"

"응. 내가 알아보니까 옆 학교 선생님이 스마트패드를 분실해서 교육청에 보고했더니 150만 원 정도 사비로 내라고 공문이 내려왔대."

"허걱!"

"그러니까 잃어버릴 스마트패드를 대체할 스마트패드를 사서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아."


오. 마이 갓. 차라리 눈물 쏙 빠지도록 혼나고 끝나고 싶다. 100만 원이 넘는 돈이 공중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내 월급이 260만 원 정도이다. 그러니까 내 한 달 월급의 반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나 이제 어떡하지.




4. 담당 공무원의 사비로 메꿔라?


  밤새 '비품 분실'을 검색했다. 일반 회사에서는 직원 노트북을 분실했을 경우 사유서를 작성하고 주의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노트북, 캠코더, 스마트 패드를 분실하면 담당 교사가 사비를 털어 물어낸다고 한다. 뭔가 억울했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100만 원, 200만 원은 매우 큰돈인데 그걸 다 물어내야 한다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행정실에 근무하는 친구 말로는 급여 담당자가 세금 신고를 잘 못 했을 경우에도 개인 사비를 털어 메꾼다고 한다. 그래서 9급 신규가 그 업무를 하다가 300만 원 넘는 돈을 물어낸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중고 스마트패드 가격을 검색했다. 10만 원이 좀 넘는 것 같다. 5개를 사면.. 80만 원이다! 나는 가슴이 쓰리지만 100만 원이 넘지 않는 거에 감사하기로 했다.



  다음날 대여했던 모든 스마트패드 75개를 모조리 수거했다. 남은 스마트패드라도 잘 관리해야 한다. 만약 남은 스마트 패드를 모두 잃어버리면 천만 원 넘는 돈을 물어내야 할 것이다. 스마트패드에 신경을 쓰느라 아이들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수업을 마치고 스마트패드를 수거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5. 결국...


 스마트 패드를 모두 수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라졌던 스마트패드 5개를 모두 찾았다. 1개는 6학년 선생님이 깜빡하고 제출하지 못했다며 돌려주셨고, 나머지 4대는 학생용 스마트패드를 수거하면서 찾아냈다. 스마트 패드 재대여를 반납 완료로 잘못 기재해서 생긴 실수였다. 수업 중에 불쑥불쑥 스마트패드를 재대 여하고 수시로 반납하기도 하니 정신이 없긴 했었다. 부주의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업을 하면서, 방역관리까지 철저하게 하고, 동시에 스마트 패드 대여까지 정확하게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는 과연 교사인가, 방역요원인가, 전자기기 고객센터 기사인가.




  어쨌든 90대의 스마트 패드를 충전 단자함에 모두 채워 넣은 날, 나는 비로소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무원의 일처리는 왜 느릴 수밖에 없는지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또또 확인해야 사비로 구멍을 메꾸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복잡하고 귀찮지만 절차를 정확하게 지켜야 실수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패드 개수를 세어본다. 스마트패드 사건으로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며칠 뒤 스마트패드 11개가 추가로 들어왔다. 101개로 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1개의 스마트패드는 101마리 강아지를 키우는 듯한 스트레스와 맞먹는 것 같아 과감하게 업무 변경 신청을 했다.




잘 가라 101마리 스마트패드여.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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