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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24. 2021

동료와의 수다 시간이 어려운 내가 살아남는 법.

나는 수다가 너무 어렵다.

1. 나는 왜 수다 시간이 어려울까.


"어제 펜트하우스 봤어요?"

"당연히 봤지. 그거 보느라 내가 화요일만 기다린다니까."

"결말 어떻게 될까요? 스포가 있던데."

"아, 나 그거 들었어. 설마 그렇게 될까?"

"에이 설마. 그럼 나 진짜 실망할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TV를 전혀 보지 않으니 동료들끼리 하하호호 수다를 떨어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나에겐 드라마, 연예인, 정치, 재테크, 승진 모두 관심 밖의 일이다. 뉴스는 모바일 신문만 본다. 유튜브는 자주 시청하는 편인데 그마저도 비주류 여행 유튜버 영상만 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좋아하는 대화 주제는 '여행, 영어 공부, 미술, 영재'로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동료들과 '업무' 얘기만 하는 편이다.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보고 "너는 어쩜 그렇게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니?"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절대 고지식하지 않다고 딱 잡아뗐었는데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나처럼 재미없고 답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게 어렵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수다 떠는 게 어려우면 하루 종일 수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수업보다 수다가 더 어렵다. 수업에는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다. 교과서에 어떤 활동을 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되어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틈이 없다. 그러나 '수다에는 정해진 시나리오가 없다.' 무슨 화제를 꺼내면 적절할지, 리액션은 어떻게 할지, 대화에 끼어들어도 될지 미리 머릿속으로 계산해볼 수 없다. 


  그나마 수업 중 학생들과의 수다는 편안한 편이다. 심지어 내가 "사실 선생님 나이는 100살이야."라고 실없는 농담을 던져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3학년쯤 되면 거짓말인지 다 알아채긴 하더라.) 또 초등학생들은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방귀 냄새, 발 냄새' 혹은 '치킨, 피자, 과자' 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스토리를 정해 매년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그러나 동료와의 수다는 다른 느낌이다. 동료와의 수다 시간은 항상 어렵다. 가끔은 아무나 만나도 술술 대화를 이어나가는 동료, 능청스럽게 위기를 잘 넘어가는 동료, 유머감각이 좋은 동료, 카리스마가 있어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동료들이 부럽다. 수다가 즐거운 이들에게 직장은 즐거운 대화 장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수다 시간은 뭐랄까. 비즈니스 미소를 장착하고 차를 마시는 '업무 시간'이다.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종류의 업무를 하는 느낌이다. 


  동료들은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인 줄 안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수다쟁이로 변신한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대화의 흐름과 무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막 해도 모두 받아주기 때문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식적인 리액션이 불필요하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대화 주제로만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나의 아집. 가식적인 대화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나의 고지식함. 그것이 동료와의 수다를 어렵게 하고 있던 것이다.  








2. 동료와의 수다시간이 어려운 내가 살아남는 법.


  동료와의 수다가 어려운 나는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나는 '나를 바꾸지 않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나의 아집과 고지식함을 인정하는 편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더라. 대신 수다 시간이 어려운 나 자신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나만의 콘셉트를 잡기 시작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람으로 콘셉트 잡기. 나는 팀이 바뀔 때마다 '원래 말이 없어요~. 집에서도 말이 없어요~ 원래 조용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미리 이런 말을 해두지 않으면 '저 사람은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 우리와 대화하려고 하지 않아.'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말을 걸지 않았다. 특정 사람 하고만 친하게 지내면 '삶을 가려 사귄다.'라는 구설수에 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직장은 일하러 오는 장소로 생각하기. 가끔 직장에서 솔메이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모습을 보면 부럽지만 뒤통수치면서 싸우고 남남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나는 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안전하게(?)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꿋꿋하게 직장은 일하러 오는 장소라고 스스로 세뇌시키고 있다. 자발적은 아웃사이더가 되어 혼자 밥을 먹게 된다 할지라도 '공부하거나 일할 때 밥은 혼자 먹는 게 제 맛이지'라고 생각하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천천히 밥을 꼭꼭 씹어먹는다. 실제로 일할 때 밥을 혼자 먹어야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메뉴로,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일어날 수 있더라. 그리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괜찮아요. 전 원래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절대 자랑하지 않기. 대회에서 수상하더라도, 투자에 성공하더라도, 남편에게 근사한 선물을 받아도 절대 절대 자랑하지 않았다. 말이 적은데 자랑 한 두 개만 해도 '자랑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샘이 늘어난다.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침을 꿀꺽 삼켜가며 자랑하고 싶은 말을 눌러 담았다. 대신 업무와 관련된 하소연은 실컷 했다. 



 비난받을 각오하기. 욕먹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혼나거나 욕먹는 건 한순간이니 짧은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승진에 목메지 않은 이상 그 무엇이 두려울까.



  간식으로 수다에 참여하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하여 빵이나 커피 같은 간식을 나눌 수 없었지만 나는 평소에 동료들을 위하여 빵과 커피를 자주 사놨다. 요즘엔 저렴한 가격으로 음료를 배달하는 카페가 많아서 2만 원선이면 6명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더라. 간식을 자주 갖다 놓으면 말없이 끄덕거리며 듣고만 있을 지라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느낌이 든다. 어떤 선생님은 나를 '말없이 빵을 두고 가는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던데 그냥 '말없는 선생님'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수다시간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잡담은 그 내용보다 잡담을 하기 위해 모였을 때의 소속감이 조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서 매일 1시간 정도의 수다 시간은 비즈니스 웃음을 장착하고 꼭 참여하곤 한다. 


  말이 많아서 미움을 사는 경우는 많으나,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까 동료와의 수다시간이 어려워도 괜찮다. 


이렇게 나는 오늘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길고 오래가는 교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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