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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언 Jan 13. 2023

보고싶은 나의 강아지, 해피에게 3

사랑하는 너에게 매일 편지라도 적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언니가 그렇게 마음이 강하지 않더라.

자기 전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가 울어버려서 잠을 설치기도 하고, 평소같으면 길을 가다가 '다음에 해피한테 보여줘야겠다' 싶은 것들이 보이면 '편지로 써야지' 생각 했다가 또 울게 되더라고.

이렇게 울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긴 했지만, 어른 강아지가 된 독립적인 네가 나 울어도 신경쓰지 않고 자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물론 네 덕분에 웃을 일만 가득한 나날을 보냈지만 말이야.


우리 집 근처에 공사하던 건물이 거의 다 지어졌어.

공사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갑작스레 생긴 소음으로 싫었는데.

비오는 날 우리가 맨날 가는 산책길 있잖아. 그 근처 지름길로 가려고 할 때 공사 차랑 때문에 우리 못 건너가서 다시 나와서 돌아갔던 기억나? 건물 지어진 거 보면서 이젠 안 시끄럽겠다. 해피 네가 누워있는 쪽 창문 열어도 조용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 물론 산책하다 너한테 저기 보라고 해도 너는 관심도 없고 내려놔라 걷겠다 했겠지만...


아빠가 지난번에 술을 마시면서, 너보다 서열 낮은 덩치큰 애한테 너 떠난 이후로 집이 조용하고 아무도 말을 안한대. 그런데 진짜 할 말이 없어. 엄마는 지난번에 김치찜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 잊어버려서, 언니가 방에 있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나와서 껐어. 엄마가 말을 안해도 많이 힘들어서, 불을 켜두고도 깜빡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았어. 사람들이 우울하면 정신 놓은 사람처럼 자주 뭘 잊어버리거나 깜빡한다고 하거든.

근데 얼마 안 있다가 언니가 새로 산 모카 포트를 홀라당 태워버렸어. 너 떠난 이후에 산 거라 너한테 검사도 못 받고 구경도 못 시켜준 건데, 언니가 좋아하는 커피 만드는 작은 냄비 같은 거야. 물을 넣고 커피를 넣고 끓여야하는데, 물도 넣지 않고 커피만 넣고 불을 켰어. 하필 언니가 감기도 걸려가지고 코가 막혀서 냄새를 못 맡았거든? 불을 분명 켰는데 자꾸 삐삐거리는 경고음이 울리더니 가스 불이 꺼지는 거야.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그래서 너무 화가나서 손잡이를 잡았더니 손잡이가 막 불에 녹아서 떨어질라고 하더라. 진짜 웃긴건 이쯤되면 뭐가 문젠지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언니는 뭐가 문젠지도 모르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지난번에 김치찜 때문에 설정해놓은 게 잘못되서 커피도 못 마신다'고 화냈어. 알아... 언니가 잘못했지.


언니는 막연히, 한 5년 뒤에 너를 보내주게 되는 날이 오면 장례식장엔 언니 혼자 너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될 거라고 상상했어.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너의 엄마이고, 언니라서 우리끼리 엄마, 아빠를 아줌마, 아저씨로 호적 정리 해버렸잖아.  언니 스페인에 있을 때 엄마가 너 산책도 시켜주고, 밥도 챙겨주고 둘이서 잘 지냈다고 하지만... 또 언니가 없을 때 너 갑자기 아프면 엄마가 너 병원 데리고 가고 그랬지만...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너한테 돈 많이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김치찜을 태우고, 언니는 모카 포트를 태우고.

교회를 그렇게 좋아해서, 교회 안간다는 언니한테 '나는 천국 가서 해피 만날 거니까 너는 해피 만나지 말아라' 같은 소리나 하는 엄마지만 너 아플 때 본인이 믿는대로 너한테 기도도 해줬잖아.

해피 네 덕분에 언니가 평생,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에게 의지하고, 엄마가 엄마의 방식으로 언니를 챙겨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나는 너랑 평생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떠나니까, 목숨이라는 게 얼마나 바람 앞 촛불처럼 쉽게 꺼질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매순간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길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언니가 우울증이 심하게 온 것 같아.

너랑 살기 전에, 외국에서 지낼 때 너무 힘들어서 창밖을 보면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울던 때가 있었거든. 그리고 너를 만나서, 너 산책 가야하고 너 밥줘야하고, 돈 벌어서 병원 데려가야 하니까 열심히 살라고 조금 노력했었던 거야. 너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언니가 얼마나 집에서 하루종일 지낼 수 있는지 보고 화냈던 기억나지. 강아지 놀아야하는데, 산책가야하는데 이 언니는 뭐지 하는 생각 분명 했을 것 같아.

해피도 떠났는데, 나는 왜 살지,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울다가도, 내가 게으름 피우거나 누워서 꼼짝도 안하면 내 앞에서 표정 굳히고 한숨 쉬던 너를 생각해. 아니 사실 침대 머리맡에 붙여뒀어. 네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 사진을.

사랑이 언니라고, 사랑이라는 귀여운 강아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얼마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 사랑이 보호자님이 그러시더라. '사랑이가 나에게 준 사랑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된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딱 네 생각이 나더라고. 아 해피가 그렇게 나한테 한평생 가르쳐준 게 있는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참 좋아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우리 한참 나중에 만났을 때 언니가 네가 좋아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면 안되잖아. 그 생각하면서 잘 살아볼게.


오늘도 너무 사랑해.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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