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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Aug 14. 2024

누구나 알지만 읽은 사람은 드문, 『햄릿』

   오늘 이야기할 책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드문 책의 대표작, 셰익스피어의 『햄릿』입니다. 기초적인 분석은 챗GPT손을 빌렸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복수와 복잡한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비극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배경 및 등장인물**:
   - 덴마크의 왕국, 엘시노어 성.
   - 햄릿: 덴마크의 왕자.
   - 클로디어스: 햄릿의 삼촌으로,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인물.
   - 거트루드: 햄릿의 어머니이자 클로디어스의 아내.
   - 오필리아: 햄릿의 연인, 폴로니우스의 딸.
   - 폴로니우스: 왕의 고문.
   - 호레이쇼: 햄릿의 친구이자 충실한 동맹.
2. **줄거리**:
   - **시작**: 햄릿의 아버지인 왕이 갑자기 사망하고,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르며 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햄릿은 이 상황에 크게 실망하고 괴로워합니다.
   - **유령의 등장**: 햄릿은 성에서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게 되는데, 유령은 자신이 클로디어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유령은 햄릿에게 복수를 명령합니다.
   - **햄릿의 계획**: 햄릿은 자신의 복수를 계획하기 위해 미친 척하며 행동합니다. 그는 이로 인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지며 갈등이 격화됩니다.
   - **오필리아의 비극**: 오필리아는 햄릿의 행동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결국 물에 빠져 죽습니다.
   - **극적인 대결**: 햄릿은 클로디어스와의 결전을 준비하며,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죽음이 일어납니다. 햄릿의 계획은 결국 클로디어스와의 대결로 이어지는데, 이 대결에서 햄릿,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그리고 여러 명이 사망합니다.
   - **결말**: 최후의 결투에서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죽이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햄릿의 죽음 이후, 덴마크 왕국은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게 됩니다.

햄릿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비극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저는 이 작품을 아래와 같이 테마 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습니다.


선과 악


"악행은 천길 만길 파묻어도 사람 눈에 발각되리." -햄릿, 31p

"한 방울의 악 성분이 종종 고귀한 본질 모두를 말살시키고, 치욕을 불러온단 말일세." -햄릿, 39p


   1601년 쓰여진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선과 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권력과 육욕에 눈멀어 살인을 저지르고 왕좌를 차지한 클로디어스는 악인,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타락을 지켜봐야 하는 햄릿은 그에 맞서 싸우는 선인이죠. 그런데 간단할 것만 같은 선악의 구도가 점점 혼란스러워집니다. 양심(혹은 분별력, 의식)은 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텐데 "그리하여 양심(conscience)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비겁자가 되어버리고, 그럼에 따라 결심의 붉은빛은 창백한 생각으로 병들어 버리고, 천하의 웅대한 계획도 흐름이 끊기면서 행동이란 이름을 잃어버린다."라는 햄릿의 대사에 이르면, 햄릿의 고민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양심은 특히 자살 금지에 대한 당시의 종교적 관습을 뜻하는 것이죠. 햄릿의 문제는 그에게 닥친 상황이 일종의 딜레마 상태라는 것입니다.




복수


"듣고 나면 복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유령, 43p

"있음이냐 없음이냐(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햄릿, 94p

"살인에 정말 성역이 있어선 안 되고, 복수에 한계는 없어야지." -클로디어스, 169p


Hamlet, Horatio, Marcellus and the Ghost (Shakespeare, Hamlet, Act 1, Scene 4)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했던 것은 이 할 듯 말 듯한 복수 때문이었습니다. 대체 햄릿은 복수할 생각은 있는 건지, 아버지의 혼령이 간절하게 부탁한 이 복수를 왜 질질 끌면서 우유부단하게 굴고 있는지 말이죠. 그런데 덴마크 왕자이자 꽤 이성적이며 도덕적이었던 햄릿에게 복수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혼령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환각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영혼이 맞는 것인지... 그러나 여럿이 함께 보았고 클로디어스의 행동을 지켜보며 곧 확신하게 됩니다.


   또 다른 원인은 복수에 대한 윤리적 판단 때문입니다. 햄릿은 온국민의 사랑을 받는 왕자였죠. 당시 (17세기 초) 덴마크는 복음루터교가 이미 국교였으며 작가 셰익스피어의 영국도 1534년 로마카톨릭에서 분리하여 영국국교회가 성립됐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의 사회였다고는 해도 종교의 영향력이 적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갈릴레오와 동갑이었다는 것만 떠올려봐도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죠.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복수는? "하느님이 말씀하시되, 복수는 나의 것이니, 내가 갚아주리라.(로마서 12장 19절)"에서 볼 수 있듯, 오직 신만이 복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인내하고 순종하며 신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죠. 이것이 기독교적 선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시대의 축소판이요 짧은 연대기이기 때문이오." -햄릿, 85p


   그런데 17세기는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새로운 기운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바로 16세기에 절정에 달한 르네상스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문정신이 부활해 계몽주의를 잉태하던 시대였죠. 어느 해설서를 읽어보니 어떤 학자는 셰익스피어가 영역된 세네카의 비극들을 읽고 영감을 받아 햄릿 이야기에 바탕을 둔 비극을 창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세네카의 영향이란 것이 뭘까요? 먼저 그의 비극에 나타난 처절한 복수라고 합니다. "보복하라, 철저히 보복하라, 그대가 당한 억울함에 대해"라는 대사에서 보듯 세네카는,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문정신은 햄릿에게 당한 만큼 철저하게 보복하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영향은 차분하고 금욕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라 합니다. 이러한 성격을 햄릿이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복수로 돌아가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이유, 아니 복수를 결심하고도 지연시켰던 원인은 기독교적 윤리와 인문주의의 충돌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것은 기독교적 선의 영역이고,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것은 세네카적(르네상스적) 선의 영역인 것이죠.  물론 지연이 아니며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에 의한 행동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복수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다가 재미로 구글 북스 엔그램 뷰어에서 1600년부터 2010년까지 복수, 용서, 정의, 사랑의 빈도수를 검색해 봤습니다. 구글 북스 엔그램 뷰어는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로 된 구글의 말뭉치에서 1500년부터 2019년 사이 인쇄된 책에서 발견되는 단어나 구절의 사용 빈도를 추출해 그래프로 나타내 주는 온라인 검색 엔진입니다.



   검색 결과 '사랑'이 압도적으로 많이 검색되지만 1600년대 초반에는 오히려 '자비(용서)'보다 적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1630년 경 '사랑'의 출현 빈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특이했는데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수'는 언제나 가장 하위권이지만 1630년 경 정의를 추월하기도 했습니다. 복수, 자비, 정의는 서로 업치락뒤치락하며 비슷한 양상을 보이다가 17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서열이 분명하게 정해집니다. 정의-용서-복수 순이죠. 이는 17세기 후반에 시작돼 18세기에 꽃핀 계몽주의가 자리잡으며 종교적 선의 관점인 자비(용서)보다 근대적 이성 또는 선의 관념인 정의가 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관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로다" -햄릿, 25p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은 여성혐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왕비 거트루드는 타락한 여자의 전형으로, 오필리어는 판단력 또는 이성이 모자란 여자의 전형으로 등장하죠. 유혹에 약하고 비이성적이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도 없는 이들이기에 우위에 있는 남성들의 철저한 보호와 통제에 따라야 하며, 사회악의 근원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그저 전근대적이며 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마초이즘 소설이죠. 물론 이는 셰익스피어 개인의 여성관이라기보다 당시 사회의 여성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2년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고전을 읽을 때 오늘날의 잣대로 옛 작품을 마구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 고전의 의미가 그 시대와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먼저 살피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와 한계가 있는지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고전의 관점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연의』는 당대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뛰어난 문학성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고전이지만, 독자들이 권력 획득이나 성취를 위해 폭력과 권모술수마저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이 책을 해악 도서로 꼽는 이들도 있죠. 저는 이런 논란을 마주할 때마다 비판적 이해가 배제된 독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비판적 이해가 전제된다면 어떤 작품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비판적 이해가 부족한 독자, 특히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가치 판단력과 도덕성 발달이 진행 중인 어린이, 청소년에게 고전 독서가 반드시 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관


"빌어먹을, 자넨 날 피리보다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무슨 악기로 불러도 좋아. 허나 나를 만지작거릴 순 있어도 연주할 순 없어." -햄릿, 119p


   셰익스피어는 수많은 캐릭터를 창조한 천재라고 평가합니다. 그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고 하죠. 이 작품에서는 문제적 인물 햄릿과 탐욕의 화신 클로디어스, 비운의 오필리어 등이 특징적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햄릿은 이성적이며 철학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들의 귀감이지."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이 흘러넘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사는 절망적입니다. "헌데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난 인간이 즐겁지 않아-여자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웃으면서 반대하는 것 같지만."


   2막 2장에 나오는 이 장면은 유령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왕과 왕비 앞에서 연극 공연을 하기 직전 상황입니다. 형을 죽이고 그의 재산과 아내를 차지한 인물이 자신의 삼촌이자 의붓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바닥까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나 햄릿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냥 정신줄을 놓아버리지 않았습니다. 치밀하게 확인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치밀한 계획이 실패할 땐 무모함이 가끔 큰 도움이 된다면서 인간이 일을 벌리면 마무리는 하느님이 하신다고 말합니다. 또 왕이 영국으로 보낸 밀서를 바꿔치기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이 보살폈기 때문이라 하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정리해 보면 햄릿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인문주의자에서 부친 사망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고,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신의 힘, 또는 운명이라는 순리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닐까요?


"네 명의 부대장이 햄릿을 무사답게 단상으로 운반하라. 왜냐면 그가 만일 보위에 올랐더라면, 참다운 왕이 되었을 테니까." -포틴브라스, 208p


The Death of Hamlet


   어린 시절에 읽은 『햄릿』은 뻔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신파극 같았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거듭할수록 드라마의 탈을 쓴 인간성 탐구 보고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의 충돌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햄릿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답하고 우유부단하게만 보였던 햄릿의 행동들이 이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며 행동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좋은 책의 조건이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야말로 이 조건을 넉넉하게 충족시키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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