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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Aug 15. 2024

부끄러운 광복절에 다시 펼쳐 본 책

김동진,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으로 부끄럽고 소란스러운 광복절입니다. 그 소란의 와중에 소란의 원인을 제공한 임명권자는 "먹고 살기 힘든 국민에게 무슨 도움 되나?" 하는 말로 또 한번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의 염장을 질렀습니다. 이 소란의 와중에 '밀정'이란 표현도 등장했죠. 대혼란의 환장 파티란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뉴스도 기념식도 외면하며 광복절을 보내다, 떠오르는 책이 있어 여기에 남기는 것으로 나름의 광복절 기념식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소개하려는 책은 영화 <밀정>의 모티프가 된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입니다. 일제강점기 무장 투쟁으로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의열단의 투쟁 중에서도 당시 경성에서 벌였던 김상옥의 종로서 폭탄 투척 사건과 미수에 그친 대규모 폭탄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되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이들의 무장투쟁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액션 영화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가장 안타깝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김상옥 의사 (출처: 김상옥의사 기념사업회)

   이 책의 주인공 김상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며 독립투쟁의 기틀을 닦아나갔습니다. 영덕철물상회를 운영하며 여유롭게 살 만한 재산을 모았지만 아낌없이 독립 운동을 위해 내놓으며 자신도 혁신단에 가입하여 독립 투사로서의 활동을 해 나갔죠. 당시 그는 무장투쟁만이 일제에게 우리의 독립의지를 천명하고 민중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의 일생은 조선 독립운동의 변천사이기도 하다는 이 책의 설명처럼 그는 "애국계몽운동  일화배척 물산장려운동  3.1만세운동  혁신공보 발행  암살단 활동  상해임시정부활동  의열단"을 거칩니다. 20대 초반에 시작된 그의 독립투쟁은 34살의 나이로 자결한 1923년까지 이어졌죠. 그의 일화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 사건은 바로 모제르 권총에 얽힌 이야기였습니다.


   1920년 암살단 사건 직후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그 중 연인 사이이자 동지였던 24살의 여인 장규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 달여 간 온갖 고초를 당한 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풀려났습니다. 1921년 군자금 모금을 위해 잠시 국내에 잠입한 김상옥이 그녀를 상해로 데려가 돌봐주었지만 1922년 5월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죠. 이때 임정 동지들이 장례를 준비하고 백범이 장례비를 보내주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관 대신 총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때 구입한 총이 바로 모제르 권총이었습니다. 종로서 사건으로 경찰에 쫓기던 김상옥은 이 권총과 다른 총 한 정을 장충동 부근 눈밭에 흘립니다. 몸이 온전치 않았던 그는 교회일로 알게 된 지인 이혜수의 집에 숨어 들어가 그녀에게 총을 되찾아 오라고 부탁을 하는데 모제르 권총 한 정만은 다행히 되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곳도 얼마 못 가 발각되어 결국 이 총으로 최후까지 싸우다 탄환이 세 발밖에 남지 않자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자결했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우연히 지켜본 중학생 구본웅은 해방 이후 이 장면을 펜화로 그리고 자작시까지 함께 담아 그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그 작품입니다.


구본웅이 그린 김상옥 의사의 장렬한 최후


   이 책에 담겨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은 의열단이 주도한 경성 폭탄거사인데, 여기에는 미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김시현과 황옥, 몽골의 슈바이처라 불린 이태준, 헝가리 출신의 폭탄 기술자 마자르의 대담하고 엄청난 활약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건을 준비하던 약산 김원봉-의열단 단장, 영화 <암살>의 주인공-은 강력한 폭탄과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던 중 이태준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마자르를 만나 고성능 폭탄을, 신채호 선생에게 '조선혁명선언'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은 당시 무장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독립투사들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사상적 무기였죠. 그의 선언문을 통해 의열단원들은 더욱 강하게 마음을 다잡고 당당하게 투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이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고등계 형사였던 황옥은 독립 운동의 열망을 간직한 채 은밀하게 독립투사들을 돕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이분이 의열단 검거 차 중국에 파견되어 약산 김원봉을 직접 만나고 폭탄 일부를 국내로 들여온 것이죠. 이분 외에도 독립을 열망하는 많은 지사들이 기지를 발휘해 폭탄을 들여오는 장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막힌 작전에도 불구하고 몇몇 밀정에 의해 거사가 발각되고 맙니다. 이 사건이 미수에 그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폭염 속 이런저런 논란으로 피로하던 광복절 저녁, 시원하게 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정치적 목적으로 숭고한 독립운동가들을 함부로 언급하고 폄훼했던 온갖 저열한 말들을 모두 씻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쓴 모든 분들의 영혼이 평안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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