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열하일기』는 학창시절에 몇몇 조각으로 만났다가 성인이 된 후에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완역이 아닌 편역본으로 읽다가 30대에야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완역본을 만날 수 있었죠. 수능이나 논술에 단골로 등장하는 연암의 글들을 공부를 위한 책이 아니라 재미를 위한 책으로 재발견하게 된 것은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의 영향이 컸습니다. 선생의 책들 중 특히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과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는 연암과 열하일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열하일기』는 돌베개 출판사와 보리 출판사에서 완역본이 나와 있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한 권으로 추려 엮은 책 중에는 현암사에서 펴낸 책을 추천합니다.
현암사에서 펴낸 『열하일기』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연민 이가원 선생이 박지원의 초본과 후손 박영범에게 기증받은 원본, 첫 활자본인 박영철 본을 모아 엮은 판본을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 편집한 것으로 열하일기 입문자가 읽기 적합한 책입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는 정약용, 최고의 문인은 박지원이라고 하는데 『열하일기』는 바로 그 조선 최고의 문인 박지원의 사상과 문학적 성취가 총망라된 작품입니다. 당대에는 불순한 잡문으로 취급되어 정식 출간조차 하지 못한 채로 문체반정의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명작의 생명력은 쉽게 꺼지지 않아 현재까지 고고하게 이어지고 있죠. 이 책과 연암의 위대함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유의 넓이와 깊이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은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물든 조선에서 오랑캐라 멸시하던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배우려는 열린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청나라 길가에 뒹구는 기왓장 한 장, 똥덩어리에서도 이용후생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용이 있은 연후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후에야 정덕이 될 것이다. 대체 이용이 되지 않고서 후생할 수 있는 이는 드물지니,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 마음을 바로 지닐 수 있으리요." - 〈도강록〉 중에서
고미숙 선생이 언급한 것처럼 연암에게 이용과 후생은 정덕으로 가기 위한 교량이었습니다. 즉, 부와 편리는 정덕으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삶의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은 부와 편리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이죠. 역사책에서 연암을 이용후생의 실학자라고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고, 이를 달달 외운 이들에게 실학은 유학에 대한 안티테제처럼 인식될 수도 있지만 실학은 유학과 별개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실학은 유학 또는 성리학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대체로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연암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유머입니다. 하인이나 북학파 친구들, 제자들과도 우스갯소리를 하며 유쾌한 대화를 자주 나눈 모습이 『열하일기』에서도 여럿 발견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는 노론 명문가 반남 박씨 가문이었고, 처가도 전주 이씨 가문의 노론학통을 잇고 있는 산림처사 이보천의 명망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장인 이보천과 그의 동생 이양천은 연암의 스승 노릇을 하기도 했는데, 장인과 사위의 케미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연암은 과거에 응시하기 전부터 문장으로 명성을 얻은 터여서 조정에서는 연암이 응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암은 응시하지 않거나 시험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나오거나 답안지를 제출하기 않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만약 사위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장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보통은 딸의 고생문이 훤하다며 사위를 불러다 혼쭐을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암의 장인은 사위만큼이나 남달랐습니다.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하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서지간입니까!
연암이 과거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시대를 아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붕당의 폐해가 극에 달해 있었고, 지배층은 헛된 이상을 좇으며 변혁의 기운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시대였죠.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언제나 뒷전이었고 예의도 염치도 상실한 지배층에게 예와 덕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이런 조정에서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흔히 지식인을 일컬어 '탄광 속 카나리아', 또는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만큼 예민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느끼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농담과 글쓰기로 시름을 달랬던 연암도 누구보다 시대의 아픔을 예민하게 인식한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중년 이후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 없어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즐겁지가 못했다."
이처럼 그의 유머는 고미숙 선생이 평한 것처럼 세상에 대한 비판이자 혼란하고 위태로운 정치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던 것이죠. 그는 이 책에서 <호질>을 어느 상점 벽 위에 쓰여진 기문을 베껴 쓴 것이라 말하며 그 이유를 묻는 주인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하고 답합니다. 위선을 떠는 양반이 똥구덩이에 빠져 호랑이에게 혼쭐나는 꼴을 보며 한바탕 웃어보라고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러한 장치를 만든 이유가 양반의 신분으로 대놓고 양반을 풍자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이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베껴 쓴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준엄한 비판보다 유머가 때로는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웃음은 팽팽한 긴장감을, 경직된 시스템을, 수직적인 관계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세 교회에서는 웃음을 금지했고 아직까지도 권위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곳에서는 웃음을 삼가도록 하는 것일 터입니다.
한편 연암의 글에서는 매우 넓고 깊은,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도강록>에서는 책문에 들어서며 주눅이 드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의 좁은 견문을 탓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중국 변두리에 불과한 책문에서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석가여래의 혜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핀다면 어느 것이나 평등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모든 것이 평등하면 저절로 시기와 부러움이 없어질 것이다." -<도강록> 중에서
그리고 잠시 후 지나가는 소경을 보고는 "저이야말로 평등한 눈을 가진 이가 아니겠느냐."하고 말합니다. 이러한 그의 평등론은 인간 사이의 평등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호질>에서는 "대체 천하의 이치야말로 하나인 만큼 범이 진정 몹쓸진대 사람의 성품도 역시 몹쓸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할진대 범의 성품도 역시 착할지니"하며 인간의 성품과 범의 성품을 동등하게, 혹은 범의 성품을 사람보다 우위에 두고 있죠. 이는 백탑파의 일원이었던 담헌 홍대용의 인물균 사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인물균(人物均) 사상이란 사람과 금수 및 초목이 모두 동등하다는 사상인데 마치 현대의 생명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사상의 원형을 보는 듯합니다. 연암은 <일야구도하기>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의 절정을 드러냅니다.
"아, 나는 이제야 도(道)를 깨달았다.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아져서 큰 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소리와 빛은 모두 외물(外物)이다. 이 외물이 항상 사람의 이목(耳目)에 누(累)가 되어, 보고 듣는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것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강물보다 훨씬 더 험하고 위태한 인생의 길을 건너갈 적에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치명적인 병이 될 것인가?” -<일야구도하기> 중에서
고미숙 선생은 연암을 유쾌한 노마드라 칭합니다. 고미숙 선생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상당 부분 들뢰즈-가타리의 개념들을 분석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리좀, 기계, 주름, 코드화와 탈코드화 등등의 개념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연암의 사고가 얼마나 현대적인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들뢰즈-가타리 철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많은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해설이 오히려 연암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몇몇 부분에서는 과한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텍스트 간의 연결을 통해 연암의 글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며 연암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선생의 독서법은 부러울 뿐입니다.
연암 박지원 글의 매력에 빠진 뒤에 소위 북학파, 백탑파라 불리는 이들의 글들도 찾아 읽다 보니, 책장 한 칸이 그들의 책으로 채워져버렸습니다.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이들의 우정과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들이 남긴 저작만큼이나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 관련 소설을 여럿 출간한 이가 김탁환 작가입니다. 『열하광인』, 『방각본 살인 사건』이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열하일기』에 관심은 있지만 좀 더 재미있게 연암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소설들부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뒤에는 아마도 연암을 비롯한 백탑파의 책들을 거쳐 동시대의 정약용과 이옥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책들이 넘쳐 나는 바람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입니다.